아이의 꿈을 찾아서
“손흥민이에요, 손흥민! 슛-!”
이른 아침, 아들의 축구 중계 소리가 거실을 뒤흔들고, 침대에서 꿈틀대는 나를 깨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지난밤에 있었던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경기를 찾아보는 아들이다. 마치 캐스터가 된 듯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며 경기 상황을 설명하기도 하고, 토트넘 홋스퍼 감독이 된 듯 선수들을 향해 잔소리도 늘어놓는다. 이미 지난 경기인데도 아들은 생생한 리액션을 선보이며 박진감 넘치게 축구를 즐기는 모습이다. 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팀의 선수들 이름과 포지션을 외우는 것은 물론 현재 근황과 상대 팀 전력까지 줄줄이 읊을 정도로 방대한 축구 지식을 자랑한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규칙은 축구 도서와 전문 유튜브를 찾아보며 축구를 알아가는 열정마저 대단하다.
이렇게 아들이 축구를 사랑하게 된 것은 유치원의 영향이 컸다. 아이가 6살 때, 나는 아이가 운동을 배웠으면 하는 마음에 유치원에서 체육활동으로 진행하는 태권도를 본격적으로 배워보길 권유했다. 하지만 상대에게 주먹질하고, 발길질하는 무술이 아이에겐 스포츠로 느껴지지 않았나 보다. 평소 조심성이 많고, 얌전한 성향의 내 아이는 태권도를 무서워하고, 싫어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축구였다. 축구는 활동량이 워낙 많은 데다 팀 스포츠였기에, 운동을 시키고자 하는 내 욕구와 낯 가리는 아이의 성향까지 보완해 줄 더없이 좋은 활동이었다. 나는 주변 동네까지 수소문해 아이 성향에 맞을 만한 축구학원을 찾았고, 친절한 감독님의 수업 일정에 맞춰 아이를 태워 다녔다.
그렇게 축구학원을 다니게 된 지 두 달쯤 됐을 때, 때마침 유치원에서는 축구대회가 열렸다. 반별로 토너먼트를 진행, 학년별 우승 반을 가리는 축구대회는 아이의 축구 사랑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당시 유치원 담임 선생님은 반에서 유일하게 축구학원을 다니는 내 아이에게 무한한 기대와 관심을 쏟아주었다. 아이는 나름 축구학원에서 배웠던 것을 토대로 반 아이들의 포지션을 나누고, 축구 규칙을 알려주며 축구대회 준비에 힘을 쏟았다. 곁에서 지켜보기에 유치원 축구대회가 이렇게 큰 대회인가 싶을 정도로 자나 깨나 아이에겐 축구 밖에 없던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맞이한 축구대회 당일, 풋살화에 축구 양말까지 야무지게 챙겨간 아이는 결승골을 넣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아이는 집에 와서 나에게 종알종알 축구대회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아이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다음 해에도 진행된 유치원 축구대회 역시 아이는 준결승전과 결승전에서 멀티 골을 기록하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축구대회 이후 한동안 나와 내 아이는 길에서 마주치는 같은 반 아이의 학부모에게서 우승시켜 줘서 고맙다는 감사 인사를 들었다. 아이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어깨가 한껏 올라갔다.
“볼 컨트롤이 섬세하고, 정확해요. 잘 키워보고 싶습니다.”
유치원 축구대회에서 두 번째 우승을 거머쥔 무렵, 축구학원 감독은 아이에게 더 이상 취미반이 아닌 선수육성반으로 옮길 것을 권유했다. 스피드가 빠르지 않지만 공을 다루는 기술이 또래에 비해 섬세하고, 정확해서 이 정도로 기본기를 탄탄하게 쌓아나간다면 충분히 선수로서 잘 성장할 수 있다는 평가였다. 나는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의구심이 점점 쌓여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평생 스포츠와 담쌓고 살아온 남편과 스포츠는 그저 앉아서 보고 즐기는 게 다였던 나를 뒤돌아봤을 때, 아이에게 과연 운동 DNA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아무래도 선수반 정원을 늘리기 위한 영업용 제안이 아닌가 나름 합리적인 의심을 했다.
사실 내가 봐도 아이는 감독의 말대로 공을 잘 다루고, 슈팅 정확도가 높은 편이긴 했다. 감독의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니지 싶었다. 하지만 내 아이는 조심성이 많아 몸싸움을 하기보다는 수비수들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모습이 자주 보여, 선수가 되기에는 성향상 어려움이 많지 않을까 노파심이 일었다. 게다가 아직 겨우 일곱 살인데, 벌써 운동선수로 진로를 정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인 점이 마음에 크게 걸렸다. 아직 어리기에, 부모로서 최대한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제공할 시기라고 생각됐다. 한편 내 곁에서 감독의 제안을 들은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종알종알 선수반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미 선수반을 다니는 것이 확정된 것 마냥 아이는 들떴다. 하지만 선수반 합류의 꿈은 며칠이 지나 사그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