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꿈을 찾아서
“일과성 고관절 활액막염입니다.”
축구선수반 입성을 앞두고 축구 연습에 매진하던 아이에게 브레이크가 걸렸다. 어느 날 갑자기 하원하고 집에 돌아온 아이가 도저히 걷지 못하겠다고 하며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놀란 마음을 진정하며 우리는 동네에서 제일 큰 정형외과를 방문했다. 아이의 진단명은 바로 일과성 고관절 활액막염. 나는 이름도 한 번에 외워지지 않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질환이었다. 의사는 아이가 하체를 무리해서 많이 쓴 탓에 고관절에 염증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른 낫기 위해서는 무조건 쉬란다. 그나마 아이는 염증 정도가 심하지 않아 입원을 면했지만 심한 경우 일주일 이상 입원해서 침대에 고정해 놓는다는 으름장도 들었다. 아이는 바로 다음날부터 유치원은 물론 그토록 좋아하는 축구 학원도 중단한 채 집에서 요양했다.
문제는 재발이었다. 다리가 멀쩡해졌다며 유치원을 한번 다녀오면 고새 저녁부터는 다리를 못 움직이는 사태가 벌어졌다. 축구는 고사하고 일상생활마저 어려웠다. 재발이 어찌나 잘 되는지 그 후로는 감기가 걸려도 재발하고, 장염에 걸려도 재발하고. 며칠 면역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여지없었다. 일과성 고관절 활액막염은 아이가 성장하면서 고관절 사이 공간이 좁아지게 되면 재발이 덜하다는 의사의 말에 아이는 결국 축구를 끊게 됐다.
그로부터 1년 후, 아이의 축구 사랑이 그렇게 멀어져 갈 즈음이었다. 마침 우리 집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축구학원이 새로 생겼다. 나는 축구에 대한 자신감도 잃고, 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하는 아이를 설득해 바로 등록해 주었다. 아이가 고관절염에 대한 공포에 매여있기보다는 다시 취미로라도 축구를 즐기며,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 신체활동을 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새로 다니게 된 축구학원은 실력과 상관없이 자신감을 갖고 축구를 배우는 것을 목표로 취미반만 운영하는 곳이었다. 언제든 다리가 불편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부담 없이 쉴 수 있기에 다시 축구를 시작하는 아이에게는 너무나 안성맞춤이었다. 아이는 수업마다 왜 이렇게 잘하냐는 코치의 칭찬을 들으며 또다시 무럭무럭 실력을 키워 나갔다.
그리고 얼마 전, 아이는 올해 봄에 있었던 축구대회에 연이어 두 번째 축구대회에 참가했다. 학원에서 같이 합을 맞춘 친구들과 함께 한 팀을 이뤄 다른 지점의 아이들과 쟁쟁한 승부를 겨뤘다. 결과는 준우승이었다. 나는 평소 승부욕이 넘치는 아이의 특성상 크게 아쉬워하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아이의 곁을 지켰다. 하지만 내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는 준우승에도 크게 기뻐했다. 수비수로 활약해 골을 기록하지 못했음에도 실점하지 않음을 더 가치 있게 느끼고 만족하는 아이의 모습이 참 대견했다. 아이의 키가 큰 만큼 마음도 잘 성장하고 있구나 싶어 감사했다.
“축구공 만드는 개발자가 될래요.”
어느 날이었다. 나는 아이 방을 정리하다가 아이가 작년에 썼던 국어 교과서를 펼쳐 들었다. 한 장 한 장 아이의 생각을 읽어가다 아이의 장래희망을 발견했다. 아이의 장래희망 칸에는 “축구공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혀있었다. 축구선수가 아니라 축구공을 만드는 사람이라니…. 어딘가 의아했다. 그날 저녁 나는 아이의 꿈에 대해 물었다. 아이의 답변은 명확했다.
“내가 축구선수를 하긴 힘들 것 같고, 누구나 골을 잘 넣을 수 있는 축구공을 만들려고!”
나는 보통 아이들이 좋아하는 운동에 있어 선수를 꿈꾸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해 왔기에 막상 축구선수가 꿈이 아니라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아이의 깔끔한 대답에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선입견이 산산조각 났다. 자신은 고관절이 자주 아프고, 자신보다 축구를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꿈을 조금 바꿨다는 아이의 부연 설명에 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적으로 축구선수는 어려울 것 같은 판단 아래 축구와 연관된 직업을 생각하고, 구체적인 꿈을 꾸는 아이의 유연한 사고가 너무도 놀라웠다.
나는 앞으로 내 아이가 어떻게 자라날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 아무것도 내가 제한하고 싶지 않다. 아이의 꿈은 부모의 몫이 아니다. 그저 부모는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서 이미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여러 가지 경험 속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이가 스스로 꿈을 꾸는 시간이 마련돼야 한다. 비록 이는 부모의 시간과 정성, 돈이 들어가는 여정이지만 어떤 것도 결코 아까울 수 없다. 부모는 아이를 위해 여러 가지를 지원하면서 묵묵히 기다려주는 동안 아이는 자유롭게 자신의 꿈을 꾸면 좋겠다. 부모의 못 이룬 욕심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행복을 위해,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그저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것이 부모다. 이것이 부모의 일방적인 희생이라기보단 아이와 동행하는 나에게도 즐거운 가치가 될 것이라 믿는다. 이것이 꿈꾸는 아이와 더불어 꾸는 나의 꿈이다.
일과성 고관절 활액막염이란 대개 3-12세 사이의 소아에 발생하는 비특이성 염증 질환으로서 고관절 통증과 파행의 가장 많은 원인이 된다. 남아가 여아에 비해 2-3배 많이 발생하며, 특별한 치료 없이도 후유증 없이 치유된다. (출처:대한정형외과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