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려놓음

단상(斷想 ) 시와 에세이

by 현루


내려놓으니,

비로소 두 손이

나를 안아주었다

내려놓음


우리는 흔히 두 손 가득 쥐고 살아갑니다.


책임, 기대, 후회, 아쉬움, 욕심….

그것이 꼭 필요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마치 놓아버리면 내가 무너질 것만 같아 움켜쥐고 버팁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손은 무겁고, 어깨는 굳어가며, 결국 나조차 잃어버리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문득, 하나둘 내려놓고 나면 두 손이 비게 됩니다.


비어 있다는 것은 잃어버린 상태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이 머물 자리를 마련했다는 뜻이 됩니다.


무겁게 쥔 것을 놓아버렸을 때, 그제야 두 손이 제 본래의 역할을 회복합니다.


남을 붙잡거나 억지로 움켜쥐는 손이 아니라, 나를 품어주고 토닥여줄 수 있는 손.



내려놓음은 포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를 다시 돌아보고, 나를 온전히 안아줄 수 있는 시작입니다.


외부의 무게로 가득 차 있던 두 손을 비워낼 때, 그 자리에 찾아오는 건 ‘나 자신’입니다.


내가 나를 감싸 안아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세상과의 관계도 달라집니다.

누군가가 나를 대신 안아주길 기다리던 마음도, 내려놓음 속에서 변합니다.


가장 확실하게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이는 결국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두 손을 모아 나를 안아주는 순간, 세상과의 거리는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까워집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용기가, 곧 모든 관계의 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려놓는 연습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작은 것부터 비워낼 때, 우리는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조금씩 단단해집니다.


결국 두 손을 비운다는 건,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다시 만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언제나 따뜻합니다.


비로소 두 손이 나를 안아주었듯, 당신도 지금

이 순간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keyword
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