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로 만나는 작가들
연구자
밥은 문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문해력 관련 프로그램 기획자이자 개발자로 먹고삽니다. 오랫동안 글이 친구고 스승이고 어떤 면에서는 부모였기에 늘 그 곁에 있고 싶습니다.
책을 읽은 후 내용을 곧잘 말하는데 국어 성적이 안 나온다. 국어 학원에 의지하지 않고는 국어 성적이 안 나온다. 심지어 국어 학원을 다녀도 국어 성적이 안 나온다. 중학 교까지는 국어를 포함해 주요 교과 성적이 잘 나왔는데 고등학교에 가더니 성적이 전반적으로 하락세다.
꽤 많은 학 생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궁극적으로 업무 수행 능력을 좌우하지만, 우리에게 시급한 문제는 흔히 학교 성적이고, 국어 성적이 문해력의 증 거로 여겨지니, 공부에 중점을 두어 말해 보려 합니다. 저는 일찍이 단련한 문해력 덕에 독학에 탁월한(!) 능력이 있고, 문해력 관련 교재 개발과 교육 경력이 대략 20년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문해력을 길러준 제 자식은 공부 시작 3개월 만에(고등학교 내내 공부를 안 하셔서) 국어와 영어 모의고사에서 만점을 받아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이제,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https://brunch.co.kr/@ceniza/23
우리는 성적표를 받아 든 아이들을 보며 종종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느낀다.
“분명 열심히 읽었는데 왜 틀렸을까?”
“다 외웠다고 했는데 왜 응용을 못 할까?”
학교와 학원에서 주어진 텍스트를 성실하게 읽고, 질문에 대해서는 텍스트의 문장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읊어내는 아이들.
그런데 정작 “왜 그렇게 생각했니?”,
“두 정보의 관계는 무엇이니?”라는 근원적인 질문 앞에서는 무력하게 침묵한다.
이들은 기억은 하지만 설명은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단어는 알지만 맥락을 모르고, 문장을 알고 있지만 의미의 관계를 모른다.
리뷰의 대상이 되는 〈기억하지만 설명하지 못하는 아이들 — 문해력을 가로막는 ‘연결’의 세 가지 함정〉(이하 '4화')은 바로 이 지점에서 문해력의 핵심 문제를 포착한다.
20년 문해력 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이 글은 아이들이 텍스트라는 길을 걸으며 넘어지는 가장 흔하고 치명적인 세 가지 ‘연결 실패’의 사례를 분석하며, 우리 시대 문해력 교육의 근본적인 방향을 재조정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한다.
4화는 두 학습자, A와 B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문해력의 함정을 매우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교육 현장에서 흔히 목격되는 현상이며, 독자들이 자신의 자녀나 학생들에게서 느꼈던 답답함을 정확히 짚어주는 날카로운 진단이다.
첫 번째 오류는 ‘비슷하면 같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A 학습자는 ‘항성’과 ‘행성’이라는 단어를 겉모습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동일하게 취급한다.
인지과학적으로 이는 복잡한 개념을 단순화하여 처리하려는 ‘인지적 효율성’ 추구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언어 영역, 특히 문해력에서는 이러한 효율성이 이해를 방해하는 독으로 작용한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놓친 핵심적인 문법적, 의미적 단서들을 정확히 지적한다.
보조사 ‘은/는’이 문장에서 만들어내는 대조의 기능, 문장과 문단의 의미적 분리를 알리는 접속 부사 ‘한편’이 주는 전환의 신호 등이 그것이다.
아이들은 이처럼 텍스트의 구조와 의미를 구성하는 핵심 단서들을 무시하고, 단순히 단어의
‘유사성’이라는 얄팍한 연결고리만을 붙잡는다.
이 오류는 단순한 오독(誤讀)을 넘어, 문해력의 출발점이자 가장 기초적인 능력인 ‘구분하는 능력’의 부재를 명확히 드러내는 지표이다.
구분을 못하면 연결도 불가능하다.
두 번째 오류는 ‘보이는 것만’ 연결하는 선택적 주목의 문제이다.
텍스트는 항성과 행성이라는 다른 두 대상에 대한 정보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음에도, A 학습자는 자신이 주목한 '항성이 움직인다'는 정보에만 갇혀 행성의 움직임 또한 ‘같은 움직임’으로 치부해 버린다.
이는 주어진 텍스트의 전체 구조를 활용하지 못하고, 오직 자신이 이미 알고 있거나 눈에 띄는 단서만을 붙잡고 나머지는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경향은 문해력이 취약한 학생들에게서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늘 “내가 아는 것”으로 텍스트를 재단하려 한다.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며 텍스트가 제시하는 구조에 순응하는 능동적인 행위인데, 선택적 주목은 이를 '내 지식에 맞는 정보의 수집'이라는 수동적인 행위로 전락시킨다.
그 결과, 아이들은 문장의 일부를 기억할 뿐, 전체를 통해 하나의 의미를 구성하는 데 실패한다. 연결은 전체 정보를 균형 있게 수용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가장 다루기 어렵고 통찰력을 요구하는 것이 세 번째 오류이다.
B 학습자의 경우처럼, 선행 지식이 오히려 텍스트 이해를 방해하는 상황이다.
아이는 ‘지구의 공전’이라는 자신의 과학적 지식을 텍스트에 억지로 끼워 맞춘다.
그의 답은 과학적 사실로서는 맞을지 몰라도, 해당 텍스트가 제시한 원인과는 전혀 무관하다.
텍스트가 제공하는 그림과 구체적인 설명은 모두 소거되고, 오직 아이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결론만이 남는다.
이 오류는 단순히 문해력의 문제를 넘어, 지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무엇인가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뇌가 자동적으로 기존 지식과 새로운 정보를 연결해 버리는 경향 때문에 텍스트를 더욱 오해할 수 있다.
이는 지식의 축적이 곧 문해력으로 이어진다는 일반적인 오해를 깨트린다.
작가의 지적처럼, 문해력은 ‘텍스트 안에서 답을 찾는 능력’이어야 한다.
외부의 지식이 아닌, 지금 눈앞의 텍스트가 말하고 있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구성하는 능력. 이것이 세 번째 함정을 극복하는 핵심 열쇠이다.
4화가 던지는 핵심 진단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두 학습자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문장 일부는 기억하고, 단어의 뜻도 알며, 질문에 단답은 가능하다.
그러나 설명은 하지 못한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단편화된 정보 조각들만 떠다닐 뿐, 이들을 논리적이고 의미 있는 하나의 구조로 엮어내는 ‘연결’이 부재하다.
작가는 문해력의 본질을 ‘기억이 아닌 관계 만들기’, ‘단어가 아닌 문맥 읽기’, ‘나열이 아닌 의미의 구성’으로 명쾌하게 정의한다.
이는 오늘날 많은 부모와 교사들이 '노력 부족'이나 '사교육 부족'에서 성적 부진의 원인을 찾는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이다.
아이가 책상 앞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읽더라도, '왜?'라는 질문 앞에서 멈칫한다면, 그 아이는 아직 문해력이라는 길의 초입에 서 있는 것이다.
문해력은 단순한 독서량이나
지식의 양이 아니다.
문해력은 질문에
설명으로 답할 수 있는 능력이며,
그 설명은 오직 적절하고 논리적인 연결에서만 나올 수 있다.
4화는 문해력의 본질을 '기억이 아닌 연결'이라는 키워드로 명확하게 해부해 낸 탁월한 평론이다.
학습자 사례를 통해 제시된 세 가지 오류는 실제 교육 현장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며, 작가의 분석은 과학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하게 한다.
글의 어조는 차분하지만 논리적이며, 사례를 들어 친절하게 설명하지만 그 진단은 매우 날카롭다.
문해력에 대한 기존의 피상적인 이해를 해체하고, '연결'이라는 핵심 개념으로 문제를 재구성해낸 이 장은, 우리 시대 문해력 교육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만한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