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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_ 명희진

리뷰로 만나는 작가들

by 현루

작가 _ 명희진

소설가


작가소개

소설을 씁니다.

기형도와 최승자를 좋아합니다.

어쩔 수 없이, 한국과 네덜란드, 두 나라를 오가며 살고 있습니다.


기타 이력 및 포트폴리오


2012년 민중문학상 소설 신인상

2025년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상



♡ 작가의 책소개

이십 년째 이름 없는 소설가로 살아왔다.

화려한 수상 경력 도, 인맥도, 독자도 많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매일 같은 시 간에 앉아, 문장을 고르고 또 고친다.

처음엔 희망으로, 다음엔 절망으로, 다시 또 희망으로 매일 썼다.

아이를 학교에 보낸 다섯 시간의 집중이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다음날 또 같은 리듬이 이어진다.

이 브런치북은 그런 나날의 기록이다.

출간 소식과 마감의 초조함, 작업의 기쁨과 침 묵의 피로가 함께 있는 자리.

무명이라도 성실하게, 그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 일기다.



https://brunch.co.kr/@61fe68fc617649a/84


《무명 소설가의 성실한 작업 일지》 21화


리뷰


​끝이 아니라, 가장 빛나는 시작을 위한 영혼의 기록
​처음 이 브런치북을 펼쳤을 때, 나는 누군가의 가장 은밀하고 치열한 일상을 엿보는 듯한 미묘한 감정선에 갇혔다.


'무명 소설가'. 화려한 이름도, 독자들의 떼 지은 환호도 많지 않다고 고백하는 그 담담함이, 오히려 가장 날카로운 진실처럼 가슴을 찔러왔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난 뒤, 문득 찾아오는 짧지만 성스러운 집중의 시간.

원고 앞에 앉아 하루를 견디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다음 날 또 같은 리듬을 반복하는 고요하고 성실한 삶.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내 삶의 가장 고독한 투쟁을 들킨 사람처럼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 일지는 단지 한 작가의 작업 기록이 아니다. 이것은 화려함 뒤에 숨겨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매일 자신과 싸워 이기는 우리 모두의 존재 증명서였다.


세상이 붙인 '무명(無名)'이라는 이름표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쌓아 올린 시간의 성실함이야말로 이미 가장 빛나는, 가장 강력한 이름이었다.


​Ⅰ. 성취의 침묵: 무게 500매, 최선이라는 이름의 고독한 승리


​21화는 우주적 고독감이 느껴지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막을 올린다.


​“어제 장편을 완성했다.”
​단 한 줄이지만, 그 무게를 아는 모든 이에게 이 문장은 단순한 마침표가 아닌, 영혼의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원고지 500매.

이 숫자는 물리적인 양을 넘어, 수많은 밤을 지새운 좌절과 회복, 초고의 불완전함을 찢고 다시 쓰는 고통의 시간을 압축한다.


초기의 설계는 무너졌고, 명확하다고 믿었던 주제 의식은 수시로 흔들렸다.

작가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벼려내고, 일으켜 세우는 고독한 투쟁을 반복했을 것이다.


이 한 문장은 그 모든 외로운 싸움의 종결이자, 작가 자신이 자신에게 바치는 가장 겸손하고 숭고한 승전보였다.


​이어 작가는 숨 막히는 고요 속에서 자기 확신을 선언한다.
​“지금의 나는, 이것이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고백은 그 어떤 찬사보다 진실하고, 어떤 대중적 성공보다 뭉클한 감동을 준다.

'최선'이라는 단어는 무명이라는 냉정한 현실 속에서야 비로소 가장 맑고 단단하게 빛을 발하는 용기의 결정체이다.


세상의 인정 여부나 평가를 떠나, 작가 자신이

자기 작업에 대한 가장 정당한 심사위원이 되는 순간이다.

자신의 한계를 온전히 인정하고, 현재의 역량으로 끌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쳤다는 자기 확인. 독자는 이 문장에서 그가 쏟아부은 시간의 농밀함과 영혼의 밀도를 함께 읽어낸다.


이 작품은 이미 '최선'이라는 가치로 충분히 완성된, 가장 귀한 열매였다.


​Ⅱ. 삶의 좌표: 왕복 16시간,

글쓰기 바깥의 인간적인 닻


​21화의 중반에 삽입된, 장편 완성 직후의 피로가 극에 달했을 때의 여정은 깊은 울림을 준다.


작가는 왕복 16시간을 기꺼이 감수하며 독일에 있는 조카를 만난다.

이 지극히 인간적인 에피소드는 작업 일지라는 기록을 단숨에 삶의 기록으로 승화시킨다.

그 순간, 작가는 원고의 무게를 내려놓고, 누군가의 이모이자 고모라는 근원적인 역할로 돌아간다.


​무명이라는 고독하고 고립된 행위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온기, 인간적인 연결이라는 가장 든든한 닻 덕분임을 작가는 몸소 보여준다.


글쓰기라는 내면의 고립이 지속되려면, 삶의 깊은 곳에 단단한 뿌리가 박혀 있어야 한다.

그 긴 여정을 달려가 만난 조카의 환한 얼굴은, 작가가 생존을 위해 외면하지 않은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상징한다.


글은 삶을 담지만, 결국 삶이 글을 지탱한다.

가장 인간적인 대목은 언제나 독자의 마음을 가장 깊은 곳에서 흔들어 깨운다.


​Ⅲ. 성숙의 선언: 감정의 절제와 시간의 유한성에 대한 깨달음


​이 에세이의 후반부에는 글쓰기만큼이나 중요한, 성숙한 삶의 태도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오래된 관계라 해도 서로를 할퀸다면, 일단은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자신을 갉아먹고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관계로부터 감정의 경계를 세우는 단호함.

무명이라는 외로운 길을 견디는 동안, 작가는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가장 혹독하게 배웠을 것이다.


삶은 무한한 감정 에너지를 허용하지 않으며, 모든 관계를 끌어안을 수도 없다.

이 대목에서 독자는 비로소 성숙이란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는 진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어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고백은, 글 전체의 감동을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아버지는 오십일 세에 돌아가셨다.”

​작가가 곧 아버지의 그 나이에 이른다는 사실은, 남은 시간의 깊은 유한성을 존재적으로 자각하게 만든다.


유한한 시간 앞에서, 작가는 가장 중요한 가치에 집중하는 결연한 의지를 다진다.

​“나는 내가 소비할 감정과 시간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겨두고 싶다.”

​이것은 개인적인 다짐을 넘어선다.


시간의 흐름 앞에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조직하려는, 가장 지혜롭고 숭고한 성인의 고백이다.

의미 없는 감정 소모를 멈추고, 자신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과 자신의 일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이 단호함이야말로, 글을 쓰는 행위뿐만 아니라 인생을 가장 밀도 있게 살아내는 방식이다.


​Ⅳ. 존재의 증명: 쓰는 행위의 숭고함과 '아이'라는 가장 절절한 비유


​작가는 다시 자신의 본질, 쓰는 행위로 돌아와 존재를 증명한다.


​“남들이 직장에 나가 일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나는 글 쓰는 데 쏟았다.”

​이 문장 하나로 그는 모든 외부의 시선과 평가를 초월한다.

독자의 숫자에 관계없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속도와 무관하게, 그저 가장 많은 시간을 자신의 일에 헌신한 사람.

그것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강력한 작가의 태도다.


외부의 잣대가 아닌, 내면의 성실함과 투쟁의 시간으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이 방식은 독자에게 뼈아픈 감동을 준다.
​그리고 그가 완성한 장편 소설을 “아이”라고 부르는 순간, 나는 완전히 무너진다.
​언젠가 서랍에서 꺼내져 세상과 마주하게 해 달라는 작은 기도의 염원처럼.


무명작가의 소설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로 작가의 온 생애와 시간, 고통, 그리고 가장 깊은 사랑을 품고 태어난 '아이'였다.


아이를 포기할 수 없듯, 그 글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글쓰기라는 행위가 단순한 노동이 아닌, 가장 숭고한 생명을 잉태하고 양육하는 행위와 동일선상에 놓이는 순간, 우리는 작가라는 존재가 짊어진 내면의 무게를 절감하며 깊은 울림에 사로잡힌다.


​Ⅴ. 에필로그: 멈추지 않는 길, 당신의 문장은 이미 도착했다


​이 작업 일지는 장편 완성을 약속하며 21화에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쓰는 일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는 장편을 마무리하자마자 단편을 준비하고, 독서 노트를 구상하며, 이미 다음 이야기를 향해 조용히 걷고 있다.


​끝을 썼지만, 멈춘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사람.
​그 조용하고 흔들림 없는 성실함,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그 태도가 마지막 문장까지 이어져 독자에게 깊은 안정을 선사한다.


이 일지의 끝은 하나의 완성이자, 수많은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는 가장 아름다운 쉼표다.


​21화를 다 읽고 난 뒤, 나는 내 마음의 거울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나도 지금, 무언가를 쓰고 있구나.”


​누가 읽든 말든, 언제 세상과 만나든 말든, 내가 나에게 쓰는 일.

그 행위 자체가 자신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가장 강력한 자기 확신이자,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신의 이유를 증명하는 일임을 다시 배운다.


​당신도 지금 무언가를 쓰고 있다면, 그것이 소설이든, 일기든, 메모 한 줄이든 상관없다.

부디 그 소중한 행위를 멈추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당신의 문장은 이미 당신이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마음에 도착해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고독한 과정과 씨름을 지켜본 당신 자신의 마음에 반드시 닿아, 당신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매일 새롭게 증명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쓰는 일은 당신이 홀로 감내하는 고독한 투쟁이지만, 끝까지 성실하게 쓰는 사람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당신의 성실함이 곧 당신의 이름이며, 당신의 문장이 당신의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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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