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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_ 최순옥

리뷰로 만나는 작가들

by 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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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_ 최순옥

공무원


작가소개

아름다운 고향의 풍경과 가족과의 소중한 추억, 평범한 일상 속 따뜻한 순간들을 글로 기록하며, 읽는 이에게 작은 위로와 행복, 그리고 마음 깊은 울림을 전하고자 합니다.


기타 이력 및 포트폴리오


아버지를 곁에서 돌본 세월,

그 20년 가까운 시간의 무게와 가족의 이야기.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소박한 일기 같은 기록으로,

제 마음을 한번 나누고 싶습니다.


작가의 책소개

아버지의 의자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집안의 작은 거실 한견, 햇볕이 스며드는 자리에 놓인 의자는 아버지의 체온과 시간의 무게를 고스란히 품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의자는 아버지의 쉼터이자, 가족을 바라보던 창이었고, 때로는 묵묵히 삶을 버텨내는 자리였습니다. 이 연재는 단순히 낡은 의자 하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자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 그 속에서 흘러간 세월과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저마다의 추억과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삶이 빠르게 흘러가고 많은 것들이 변해도, 의자가 지켜온 자리처럼 우리 마음속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풍경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의자를 통해 저는 가족과 기억, 그리고 삶의 본질을 마주하고 싶습니다.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

때로는 아픈 이별의 순간까지 글로 담아내며 독자들과 나누 고자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자신의 가족, 그리운 얼 굴, 혹은 잊고 있던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며 작은 위로와 공 감을 얻기를 바랍니다.


https://brunch.co.kr/@aa931caf128140d/61

리뷰


아버지 의자》 19화


겨울이 끝난 자리에서 피어오르는

사랑의 계절


아버지 의자가 처음부터 특별했던 것은 아니다.


누가 보아도 평범한, 오래된 나무의자 한 개. 거실 한쪽, 햇살이 가장 먼저 닿는 자리에 조용히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목제 결 사이사이 배어 있는 땀냄새,

수십 년을 견딘 나이테처럼 자리 잡은 손때,


그리고 자주 앉던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기울기와 흔적들이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이 의자는

‘아버지 의자’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아버지 의자》라는 브런치북은 바로 이 한 개의 의자를 중심으로,

삶 전체를 비추어내는 서사다.


단순한 사물 묘사를 넘어, 가족의 시간·사랑·생활의 온도·계절의 변화·세대의 흐름이 응축된 기록이다.

그중 19화는 계절의 전환점인 ‘겨울의 끝, 봄의 시작’을 통해 가족의 내면 풍경을 가장 아름답게 드러내는 화다.


얼음이 녹아내리는 소리, 촉촉한 흙의 기운,

새싹이 뚫고 나오는 미세한 떨림, 엄마의 부엌에서 피어나는 냉이 향기, 창가에서 터지는 선인장의 다홍빛 꽃,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스며드는 생명의 기척. 그리고 그 모든 흐름을 조용히 지켜보는 아버지 의자.



글은 자연을 그리면서도, 결국은 ‘사람’을 이야기한다.

‘계절의 섭리’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족의 마음이 피어나는 과정’에 대한 서사다.


1. 겨울의 끝, 그리고 의자에 스며든 시간


19화의 첫 문장인 “겨울은 끝까지 묵묵했다.”는 작가의 문장 감각을 가장 잘 보여준다.


계절을 설명하는 문장 하나인데, 이 짧은 문장 속에는 여러 겹의 감정이 겹쳐 있다.


겨울의 무게, 침묵, 기다림, 지친 숨, 그리고 끝내 말을 아끼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두꺼운 그림자.

아버지 의자 위에도 겨울은 오래 머물러 있었다.


장작불의 온기를 등에 지고 앉아 있었을 그 자리, 아버지가 발끝을 잠시 올리며 길었던 겨울밤을 견뎠을 그 자세, 바깥 눈이 쌓이는 동안 몇 번이고 같은 자리에서 앉아 사색했을 그 마음.

의자는 말이 없지만, 앉았던 사람의 시간을 기억한다.


그래서 19화에서 묘사되는 계절의 변화는 의자의 변화처럼 느껴진다.


겨울이 물러나고 봄이 오는 순간은, 마치 아버지의 마음도 다시 한번 숨을 고르는 느낌을 준다.

아버지가 손에 쥔 것은 다름 아닌 인삼 씨앗 꾸러미다.
그 작은 씨앗을 손바닥에 펼칠 때, 겨울 내내 굳었던 집안의 공기는 조금씩 풀린다.


끝이 흙을 밀어내는 소리, 그 순간 은은하게 올라오는 흙냄새, 동쪽에서 퍼붓기 시작한 봄비의 기척.


이 장면은 자연 현상의 묘사이지만, 독자는

그 속에서 아버지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

‘묵묵하고 서두르지 않는 마음’을 직감하게 된다.

작가는 이 장면을 통해 말한다.


“겨울 뒤에는 반드시 봄이 온다.”


하지만 그 말의 온도는 교과서적이지 않다.


아버지의 의자가 한 계절을 통째로 견디고 다음 계절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사람도 그 의자에 앉으며 계절을 통과한다.

19화가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이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자연처럼 숨고 피고, 묵고 풀린다.


2. 부엌에서 먼저 피어나는 봄

_ 엄마라는 계절


계절이 바뀌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채는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다.
사실 대부분의 집에서 봄은 부엌에서 먼저 온다.

19화 속에서도 봄은 부엌에서 피어난다.

창문을 활짝 열어 먼지를 털어내는 손길, 두꺼운 커튼을 걷어내고 대신 얇고 투명한 커튼을 걸어놓는 모습,


냉이와 달래를 삶는 냄비 뚜껑 사이로 올라오는 봄기운.
연둣빛의 김은 냉이 향과 김치 숙성 향이 섞여 집 안 전체를 휘감는다.

이 장면의 묘사는 글의 감각과 리듬을 한층 따뜻하게 만든다.

엄마가 말한다.


이제 봄이구나… 또 한 해가 시작이네.”


이 말은 단순한 계절 인사가 아니다.
엄마라는 존재가 매년 새로운 마음으로 가족을 맞는, ‘가정의 리셋 버튼’을 누르는 순간이다.

엄마의 부엌은 봄을 준비하는 사람이 가지는 마음의 자리를 보여준다.


부엌이라는 공간은 많은 작품에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살림을 하는 공간이자 생명력을 담는 곳.
특히 ‘냉이·달래·씀바귀’ 같은 봄나물은 생명 부활의 은유로 자주 활용된다.

자연에서 가장 먼저 돋아나는 풀들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도 봄나물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다.
엄마가 가족을 위해 준비하는 ‘계절의 기념식’ 같은 것이다.


겨울 동안 눌러앉은 마음을 들어 올리고, 새로운 기운을 들이기 위한 작은 의례.


그 의례가 엄마의 손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은
“가정의 봄은 엄마로부터 온다”는 메시지를 강화한다.



3. 창가의 200송이

— 선인장이라는 ‘집의 마음’



19화에서 가장 강렬한 상징은 창가의 개발선인장이다.


스무 해 넘게 자란 이 선인장은 매년 봄이 오면 ‘다홍빛 꽃을 200송이 넘게’ 피운다.


숫자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세월의 무게를 드러내는 장치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꽃이 더 많이 피는 나무처럼 살기란 어렵다.
그러나 식물은 가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식물을 보며 마음을 배운다.

엄마가 선인장을 바라보며 짓는 미소는,
그 꽃봉오리가 딱히 대단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함께 나이 들어온 존재가 다시 한번 ‘봄을 증명하는’ 모습에 대한 공감이다.

어느 날 이모들이 와서 묻는다.
“조금 떼어가도 되겠나?”

엄마는 주저 없이 말한다.
“그래, 다른 집에서도 기쁨을 느껴야지.”

여기서 엄마는 자신의 기쁨을 나누는 사랑의 방식을 보여준다.
생명력을 나누는 행위는 곧 행복을 나누는 것이다.


이 장면은 작가의 문체가 가진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선인장은 19화에서 ‘집의 심장’ 같은 존재다.


추위를 견디고, 오래 기다리며, 한 번 꽃을 터뜨릴 때 집 전체를 밝힌다.
이 선인장은 식물 이상이다.

그것은 엄마의 인내, 집의 세월, 가족의 생명력,
반복되는 계절의 순환, 시간을 이기는 사랑을 모두 상징한다.

200 송이라는 숫자가 주는 강렬함은
“이 집은 생명력이 단단하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전한다.

4. 봄 원색을 입은 엄마

— 새로운 계절의 시작


옷장 속 빨간 바지를 발견한 사건은 소소하지만, 독자로 하여금 큰 미소를 짓게 한다.


엄마가 그런 화사한 색을 입는다는 사실 자체가 ‘은근한 감동’이다.

아들이 묻는다.
“엄마, 이 바지 너무 원색 아니야?”


엄마는 수줍게 웃으며 답한다.
"울릉도에 놀러 간단다. 동네 친목모임 여덟 이서."

여기서 우리는 알게 된다.
엄마도 누군가의 친구이고, 누군가의 동행이고, 자신만의 봄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자식이 보지 못했던 영역에서 엄마는 이미 새 계절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들은 빨간 지갑과 다홍 스카프를 선물한다.
그리고 엄마는 얼굴을 환히 밝히며 말한다.

“이건 정말 예쁘다!”

엄마의 웃음은 ‘일상의 반전’을 보여준다.
중년, 혹은 노년의 나이에도 새 계절을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
남이 가꾸는 봄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도 봄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


이 장면은 ‘엄마’를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보여준다.
그저 가정을 돌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취향과 빛을 가진 하나의 객체.

또한, ‘빨간 바지’는 엄마의 봄이 시작되는 은유적 상징이다.
겨울 내내 무채색을 입었던 사람이 선명한 원색을 선택한다는 건

삶을 다시 한번 밝히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19화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따뜻하게 포착한다.



5. 아이들의 웃음

— 봄이 퍼지는 속도


마당의 눈이 완전히 녹자 아이들이 뛰어나오는 장면은, 이 화에서 가장 생생하고 경쾌한 대목이다.

“엄마, 봄이야! 봄 냄새 나!”

이 장면은 글 전체의 무게를 동시에 가볍게 만들어주는 장치다.


앞선 장면들은 성인의 세계,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 어른의 마음을 다룬다면, 이 장면은 봄을 ‘순수한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세대의 세계를 보여준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들판으로 퍼지고, 바람은 그 소리를 실어 나른다.
그 소리를 들으며 아버지는 미소 짓는다.

아이들의 봄과 부모의 봄이 마당에서, 같은 공기 속에서 부딪히는 순간이다.



이 장면은 ‘세대의 연결’을 상징한다.


아버지의 의자 → 엄마의 부엌

→ 아이들의 웃음


이 세 가지 요소가 한 집에서 순환을 이루며 봄을 완성한다.


즉, 이 집의 봄은 모두가 합쳐 만든 것이다.



6. 저녁 햇살이 의자에 앉다.

하루가, 계절이, 삶이 마무리되는 순간


19화의 마지막 장면은 매우 영화적이다.


아버지가 저녁 햇살 아래 의자에 다시 앉는다.
손등에는 햇살이 내려앉고, 손끝엔 흙이 남아 있다.

아버지는 말한다.


이제 또 한 해가 시작되는구나.”

이 말은 단순히 농사철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삶에서 계절 하나가 또 지나간다는 뜻이다.
또 한 해를 가족과 함께 시작한다는 뜻이다.



마당 끝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이,
부엌에서는 엄마의 냉이된장국 끓는 소리가 들린다.

햇살은 천천히 기울며 의자 위에 앉는다.
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자리를 대신 메우는 것처럼.

이 장면은 19화의 테마를 완성하는 핵심 장면이다.


의자는 ‘아버지의 삶’의 상징


햇살은 ‘새로운 계절’


아이들의 웃음은 ‘미래’


엄마의 냄새는 ‘현재’


이 네 가지가 하나의 장면 안에서 조화롭게 교차한다.

그래서 결말이 강렬하다.


7. 이 작품이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


19화는 자연을 그리지만, 실제로 하고 싶은 말은 가족에 관한 것이다.


핵심 메시지 세 가지



1.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가족의 마음도 다시 피어난다.

2. 부모가 보내는 계절과 자식이 맞는 계절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3. 봄은 자연에서 오지만, 진짜 봄은 집 안에서 피어난다.


아버지 의자라는 단 하나의 사물을 중심으로
가족의 관계가 어떻게 존재하고 흐르고 깊어지는지를 보여준다.



8. 독자에게 남기는 결론


19화는 거창한 사건이 없다.
눈이 녹고, 씨앗을 심고, 꽃이 피고, 냉이 향기가 퍼지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햇살이 의자에 앉을 뿐이다.

그런데도 단 한 페이지도 허투루 지나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우리 삶의 실제 풍경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년 이런 봄을 겪으면서도, 정작 그 의미를 곱씹지 못한다.

이 글은 그 잊고 살던 감각을 되살린다.
읽고 나면 마음속에서 작은 꽃봉오리 하나가 조용히 열리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 집에도, 그런 의자가 있지 않나요?


그 의자 위에서도 지금 봄이 피어나고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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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