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로 만나는 작가들
특별할 것 없는 말과 마음으로 누군가의 일상에 스며드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괜찮지 않은 날들이 있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음, 덜 정리된 기억, 스스로에게 조차 외면한 감정들.
이 시들은 그런 날의 조각들을 모은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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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작가의 브런치북 《괜찮지 않은 날의 기록 2》는 현대인의 내면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낸 ‘심리 지도’와 같습니다.
수많은 콘텐츠가 넘쳐나는 디지털 세상 속에서,
이 짧은 제목은 독자의 손가락을 멈추게 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왜냐하면 이 제목은 단순히 ‘일기’가 아닌, ‘보편적인 고통을 정직하게 이름 붙이기’ 때문입니다.
책 소개에 담긴 작가의 문장, "괜찮지 않은 날들이 있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음, 덜 정리된 기억, 스스로에게 조차 외면한 감정들.
이 시들은 그런 날의 조각들을 모은 기록입니다."는 독자에게 ‘나만이 아니었구나’라는 깊은 안도감과 공감을 형성합니다.
우리는 사회적 가면 아래, 말로 꺼내기 힘든 채 가슴에 웅크려 스러지는 수많은 순간을 경험합니다.
작가 여름은 바로 그 ‘외면한 감정들’을 시의 형태로 조용히, 때로는 날카로운 메스로 포착해 냅니다.
이 연재는 단순한 감정의 나열을 넘어, 아픔, 사랑의 균열, 자아의 혼란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관통합니다.
14화 ‘착각’은 이 연재 전체의 감정적 핵심이자, 고통의 클라이맥스 지점에 놓여 있습니다.
이 시는 ‘믿음의 붕괴’와 그로 인한 ‘존재의 낙하’라는 가장 근원적인 인간의 두려움을 다루며, 독자의 마음을 가장 깊이 파고듭니다.
이 리뷰는 그 시를 따라가며, 언어의 구조를 분석하고, 철학적 의미를 해석하며, 이 시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위로와 깨달음의 메시지를 심층적으로 탐구합니다.
시의 서두는 감정의 층위를 반복적으로 쌓아 올리는 언어적 장치로 독자를 압도합니다.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철석같이 그 말만 믿었는데 나만 빼고 다 알더라 나 혼자만 몰랐더라
‘생각했는데’의 반복은 말하는 이가 자신의 무지를 얼마나 강하게 부정하고 싶어 하는지, 혹은 그 무지함이 깨달아진 순간의 충격이 얼마나 거대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마치 해변에 부딪히는 파도와 같아서, 감정의 동요를 리듬감 있게 증폭시킵니다.
이 반복은 단순한 서술이 아닌, 과거의 확신과 현재의 절망 사이의 메아리를 형성하며 독자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듭니다.
쇠와 돌처럼 단단할 것이라 믿었던 그 신뢰가, 실은 깨지기 쉬운 유리와 같았다는 모순이 이 한 줄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만 빼고 다 알더라 나 혼자만 몰랐더라”는 배신의 고통을 넘어선 ‘고립의 절망’을 극한으로 끌어올립니다.
주변의 ‘다’는 이미 진실을 알고 있었는데,
나 홀로만 그 사실로부터 배제되었다는 깨달음은, 배신감보다도 더 아픈 ‘나 홀로의 고독’과 ‘소외감’을 극대화합니다.
이 문장은 독자가 겪었던 ‘말로 꺼내기 힘든 순간’을 정확히 명중시킵니다.
시의 절정은 강력한 비유와 시각적 이미지로 이루어집니다.
나를 지탱하던 세상의 전부였던 믿음의 껍데기가 바람에 쓸리듯 벗겨져 나간다.
그 안에 자그마하게 웅크리고 있던 한 사람이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한없이 곤두박질쳐진다.
‘믿음의 껍데기’라는 비유는 시의 핵심을
꿰뚫습니다.
믿음이 견고한 ‘핵심’이 아니라, 실은 허약하고 얇은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인식.
그것이 ‘바람에 쓸리듯’ 벗겨진다는 묘사는 그 허망함의 속성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강한 힘이 아닌, 무심하고 사소한 ‘바람’에 의해 무너졌다는 사실은 충격의 깊이를 더합니다.
껍데기 안에 ‘자그마하게 웅크리고 있던 한 사람’은 사회적 역할과 확신 속에 숨겨져 있던 말하는 이의 연약한 ‘진짜 자아’입니다.
방어막이 사라진 채 드러난 자아는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한없이 곤두박질쳐진다’.
시인은 여기서 줄의 길이를 짧게 분절하여 시각적인 ‘낙하의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한없이’라는 부사는 이 떨어짐이 끝없이 지속되는 듯한 독자의 실존적 공포를 극대화하며, 긴 설명 없이도 독자를 그 절망의 순간 속으로 끌어당깁니다.
1. 믿음의 탑: 개인적 고백에서 보편적 치유로
시 뒤에 붙은 작가의 해설은 이 짧은 시를 개인적 고백의 차원에서 보편적인 심리적 성찰로 끌어올립니다.
작가는 시에서 사용한 ‘껍데기’를 해설에서 ‘믿음의 탑’으로 구체화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탑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는 문장입니다.
무너짐의 원인이 외부의 배신자나 잘못된 믿음 자체에 있지 않고, ‘너무 단단히 그리고 까마득히 높이 쌓아 올린’ 말하는 이 자신의 태도에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자아 방어 기제’의 구조를 은유합니다.
높고 단단한 탑은 완벽주의, 혹은 지나친 확신으로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자아의 노력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어는 유연성을 잃게 만들고, ‘조금의 균열’에도 전체가 붕괴하는 파국을 초래합니다.
작가 해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 시의 치유적 메시지를 완성합니다.
“어쩌면 무너짐은
오래 고여 있던 생각을 흘려보내기 위한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무너짐을 ‘사고’가 아닌 ‘필연’으로 명명함으로써, 붕괴의 순간을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과정’으로 재해석합니다.
여기서 ‘오래 고여 있던 생각’은 관습, 고정관념, 혹은 불필요하게 짊어지고 있던 타인에 대한 과도한 신뢰 등, 삶의 순환을 방해하는 정체된 에너지입니다.
이 해석은 독자에게 자신의 고통스러운 운명조차 긍정하고 사랑함으로써, 아픔을 영원한 삶의 순환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힘을 제공합니다.
여름 작가의 문체는 구어체의 생생함과 비유의 조화를 이룹니다.
“나만 빼고 다 알더라”의 날 것 그대로의 표현은 독자의 감정 회로에 직접 연결되는 힘을 가지며, “바람에 쓸리듯 벗겨져 나간다”는 이미지 비유는 짧은 시에 깊은 여운을 부여합니다.
특히, 시 전체의 리듬은 ‘낙하의 미학’을 구현합니다.
짧은 행과 짧은 문장은 독자가 숨을 고를 틈을 주지 않고 감정의 낭떠러지로 몰아붙이다가, 해설 부분에 이르러 비로소 산문적 확장과 호흡을 제공합니다.
시와 산문의 이러한 긴밀한 상호작용은 14화의 문학적 완성도를 높입니다.
《괜찮지 않은 날의 기록 2》는 하나의 이야기 곡선을 그립니다.
연재의 구조는 통상적으로 초반 (상실의 기록)
→ 중반 (내면의 갈등) → 후반 (치유의 시작)의 흐름을 갖습니다.
14화는 전체 흐름의 중후반부, 즉 갈등이 극에 달하는 정점에 위치합니다.
이 시는 상실의 아픔(초반)을 넘어, 그 아픔의 근원(믿음의 붕괴)을 직시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을 기록함으로써, 독자는 비로소 ‘무너짐의 필연성’이라는 희미한 빛을 발견하게 되며, 이는 이후 연재될 ‘치유의 시들’로 나아가는 강력한 동력이 됩니다.
관계 중심적이고 공동체적 압력이 강한 현대 사회에서, ‘철석같이 믿었던’ 관계와 시스템에 대한 실망은 개인이 짊어지기 힘든 무게가 됩니다.
14화는 이러한 ‘한국인의 믿음의 탑’이 무너지는 경험을 집단적으로 승화시킵니다.
‘나만 빼고’ 알았던 고립감을 독자들이 겪은 고통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공유를 통한 해방을 제공하고 심리적 치유의 기회를 마련합니다.
여름 작가의 《괜찮지 않은 날의 기록 2》 14화 ‘착각’은 단순히 아픈 날의 기록을 넘어섭니다.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한없이 곤두박질쳐지는’ 순간은 절망의 끝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이 붕괴가 ‘오래 고여 있던 생각을 흘려보내기 위한 필연’ 임을 강조함으로써, 독자에게 이 절망이 새로운 건축의 시작임을 알려줍니다.
다음에 쌓을 탑은 ‘높이’가 아닌 ‘유연성’을, ‘단단함’이 아닌 ‘흐름’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괜찮지 않은 당신에게. 이 시는 당신의 아픈 날을 기록하며, 동시에 그 아픔이 당신을 더 단단한 (혹은 더 유연한) 존재로 재건할 필연적인 과정이었음을 확인시켜 줄 것입니다.
이 책을 펼치고,
당신의 무너짐을 용감하게 응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