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로 만나는 작가들
출간작가
동화작가, 수필가.
시나브로 접었던 나래를 핍니다.
울력걸음으로 어깨 걷고, 윤슬 같은 마음으로 글길을 걷겠습니다.
작은 울림이 서로에게 닿기를.
이곳은 일흔이 훌쩍 넘어 처음 연필을 잡은 어르신들이 모 인 자리입니다.
90세 가까운 분들도, 넘은 분들도 함께 합니다. 한글을 몰라 억울했던 시간과 서글폈던 많은 날들. 그래도 마음을 다독이며 굳게 서서 가정과 자신을 지키신 분 들.
그분들이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쓰시고, 자신의 목소리로 가정사와 세상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이 글은 문해교실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삶을 새로 배우는 어르신들의 울고 웃는 배움의 기록이며, 평범하지만 무엇보다 가치 있는 우리네 삶의 모습입니다.
느리지만 단단한 발걸음으로 삶의 여운을 여미시며 희망과 사랑, 그리움으로 즐겁게 살아가는 참어른들의 모습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https://brunch.co.kr/@doaj/119
겨울 이야기는 언제나 몸의 기억을 먼저 깨운다. 바람의 매서움, 밤의 싸늘함, 찬 공기를 머금은 호흡 속에서 약해지는 몸,
그리고 이 손길은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문해교실이라는 공간이 품은 가장 깊은 온기이기도 하다.
겨울 감기로 고생하는 선생님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 순간 이 이야기가 단순한 수업일지나 일상의 에피소드를 넘어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글은 사실 어르신들이 배운 문자 이전의 문해力, 즉 ‘사람을 읽는 힘’, ‘마음을 읽는 힘’, ‘살아온 시간에서 길러진 삶의 문해력’을 드러내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문해교실은 글자를 배우는 공간이지만, 이 22화는 그보다 앞선, 더 본질적인 문해의 순간을 보여준다.
그들의 말 한 줄, 장바구니에서 꺼낸 사탕 하나, 생강을 직접 갈아 넣어 끓인 차 한 보온병…
그것은 문장으로 쓰기 전부터 이미 완성된 ‘하나의 이야기’였다.
글자를 몰랐던 세월에도, 어르신들은 삶을 읽고, 사람을 읽고, 사랑을 표현할 줄 알았다.
글을 몰랐다고 해서 삶을 못 산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보듬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이,
이 장면들을 통해 증명된다.
22화는 ‘문해력’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학교 공부나 평가 지표에 묶여 있는 우리에게,
다른 종류의 문해력을 보여주는 텍스트이다.
그 문해력은 평생 살아온 사람이 가진 지혜의 발효된 향기이며, 삶에서 길어 올린 언어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22화를 다시 읽으면, 이 글은 단순히 ‘감기 걸린 선생을 걱정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어떤 공동체가 한 사람을 얼마나 진심으로 돌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람을 이해하는 힘의 아름다운 사례이다.
그리고 이 힘은 글자가 아니라 마음에서 배운 것이다.
22화의 핵심은 ‘기침’이라는 단어가 아니다. 핵심은 ‘읽기’다.
상대의 몸을 읽고, 목소리의 떨림을 읽고, 표정을 읽고, 어제보다 더 아파 보이는 기운을 읽고, 그에 맞는 처방을 제시하는 능력이다.
문해교실에서 글을 배우는 어르신들이지만,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사람을 읽는 법을 익혔다.
이 말들은 모두 ‘배운 글’이 아니라 살아온 세월이 만든 문장이다.
문해력은 단순한 읽기 능력이 아니라, 세상을 읽는 능력이라는 것을 이 하나하나의 문장이 증명한다.
어르신의 삐뚤빼뚤한 손글씨와 함께 놓인 손뜨개 목도리는, 글을 몰라 적지 못했던 세월과, 이제야 글로 표현하기 시작한 삶의 축적이 한 조각의 뜨개질로 구현된 것처럼 느껴진다.
이 목도리는 문자 이전의 언어, 글자가 되기 전의 감정, 잃어버렸다 되찾은 자존감의 상징이다.
작품 속 작가는 문해교실의 선생님이다.
선생이란 타이틀은 흔히 ‘돌보는 사람’의 위치에 놓인다.
늘 누군가를 가르치고 챙겨야 하는 역할, 강인해야 하는 사람, 흔들리면 안 되는 사람.
그러나 이 글은 선생의 취약함을 드러내며 그 틀을 깨뜨린다.
감기 한 번에 몸이 무너지고, 밤새 기침 때문에 잠들지 못하고, 목소리가 갈라지고, 일상에서 균열이 생겨 버린 그 순간…
선생 또한 인간이라는 사실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그리고 바로 그 인간적인 틈을 향해 어르신들은 따뜻한 손길을 건넨다.
이때 선생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돌봄을 받는 사람이 된다. 문해교실은 순간적으로 ‘역전된 교실’이 된다.
선생이었던 사람이 배움을 받는다.
학생이었던 이들이 누군가의 건강을 챙기는 지혜로운 어른이 된다.
이 장면을 통해 이 작품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이 글의 가장 큰 힘은 ‘사소함의 미학’이다.
큰 사건이 없다.
누가 병원에 실려 간 것도 아니고, 누가 큰 선물을 한 것도 아니다.
심지어 크게 울거나 부르짖는 감정 표현도 없다.
하지만
– 책상 위 보온병
– 사탕 하나
– 생강향
– 목도리
– “말 그만하세요”
– “우리가 대신 얘기해 줄게요”
문학은 때때로 거대한 서사로 독자를 울리지만,
이 글은 그 반대 방향에서 움직인다.
고요하고 작고 사소한 장면들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주는 방식을 택한다.
어르신들의 말투는 과장되지 않고 담백하다.
하지만 바로 그 담백함이 사랑의 진정성을 드러낸다.
바람이 흔드는 창문 앞에서 선생이 듣는 어르신들의 한마디는, 독자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이 한 문장에 담긴 삶의 깊이는 글자를 알아서 생긴 것이 아니다. 살아서 생긴 것이다.
이 글은 단순한 교실 이야기가 아니다.
문해교실이 한국 사회에서 갖는 상징성과 의미를 은근하게 보여주는 사회적 텍스트이기도 하다.
문해교실은 단순히 글을 배우는 장소가 아니라
이것은 문해교실이 어르신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공간인지, 그리고 그 공간을 지키는 선생님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말해주는 장면이다.
문해교실은 어르신들에게
‘나도 배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존감을 회복해 준 공간이다.
그 공간을 지키는 이가 아프다는 사실은 곧 그들의 ‘배움의 길’이 흔들린다는 감각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더 절박하게, 더 따뜻하게, 더 진심으로 선생을 향한 마음을 표현한다.
이 따뜻함은 결국 문해교실이 ‘학습공동체’이자 ‘생활 공동체’ 임을 보여준다.
이야기 전반은 아주 조용하다.
큰 고조, 큰 절정, 드라마틱한 사건이 없다.
하지만 감정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온기로 유지된다.
조용한 따뜻함, 잔열처럼 오래가는 온기.
글의 구조는 거의 파동이 없다.
하지만 한 구절 한 구절이 따뜻한 숨처럼 이어지며 감정의 층을 쌓아 올린다.
문체는 담백하지만 정서적으로 매우 밀도 있다.
불필요한 수사가 없고, 어르신들의 말투도 실제 말투처럼 담백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마지막 문단의 여운은 이 작품 전체의 방향성을 결정짓는다.
“아픈 시기를 버틸 수 있게 해 준 건 약이나 휴식이 아니다.”
“누군가 나를 살피고 따뜻한 차를 내어주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엄마의 품처럼 다시 되살아난다.”
이 문장들은 ‘돌봄’이라는 주제를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의 진리’로 승화시킨다.
22화는 사실 하나의 겨울 풍경화처럼 읽힌다.
겨울 공기의 차가움
창문을 때리는 바람
건조한 교실
따뜻한 보온병
손뜨개 목도리
낮은 목소리
기침 소리
겨울의 냉기와 어르신들의 온기가 대비되며,
그 둘의 대조가 매 문단마다 깊이를 더한다.
특히 ‘바람이 창문을 흔든다’는 장면은 이 글에서 가장 문학적인 한 줄이다.
겨울이라는 계절적 상황은 선생의 고단함을 더 심각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어르신들의 온기를 더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계절과 감정이 서로 반사되어 독자의 마음으로 들어오는 방식이 탁월하다.
이 작품 전체의 제목은 《나는 이제, 나를 쓸 수 있다》다.
22화는 겉으로 보면 문해 수업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이 화는 제목과 가장 맞닿아 있다.
어르신들이 선생을 향한 걱정과 사랑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순간, 그들은 이미 글을 배우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삶의 문해력을 드러낸다.
그래서 22화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이 텍스트는 그 사실을 가장 아름답게 증명하는 장면이다.
22화는 이 브런치북에서 가장 조용한 편이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 편이기도 하다.
읽고 나면 독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문해력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구나.’
‘글을 배운다는 것은 삶을 다시 꿰매는 일일 수도 있구나.’
‘따뜻함도 하나의 언어이자 문장이다.’
이 글은 나이가 들어도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그리고 그 배움을 지켜내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보여준다.
무엇보다 감기라는 사소한 사건을 통해
삶의 지혜, 공동체의 정, 사랑의 언어, 문해력의 본질을 동시에 드러내는 데 성공한 글이다.
읽고 나면 선생의 몸이 낫기를 바라게 되고,
어르신들의 배움이 더 밝아지기를 바라게 되고,
문해교실의 온기가 오래 이어지기를 바라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깨닫는다.
문해란,
결국 서로를 따뜻하게 읽어주는 힘이다.
『나는 이제, 나를 쓸 수 있다』 22화는 그 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가장 따뜻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