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로 만나는 작가들
영문학과 문예창작을 공부했음.
2021년 동화시 등단.
동화, 동시, 동화시, 시, 에세이를 자주 끄적임. 더 이상 쓰지 않게 될 그날을 바라 씁니다.
백석 시와 동화시를 좋아하여 시늉을 해 본 것이 작품이 되어, 2021년 동화시로 등단을 하였습니다.
지난 몇 년 간 써 둔 동화시 6편을
묶어보았습니다.
등단작인 < 산골바위네 샘물>, 지역 문예지에 연재했던 <할미꽃 이야기> 외에는 모두초안 단계인데 무모한 방출을 감행하고자 합니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만큼 무겁지 않고, 짧은 시간에 쏙 읽어 내릴 수 있으면서도 하나씩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브런치 공간의 작가님들 및 독자님들과 이 메시지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https://brunch.co.kr/@boonchon/120
이 시는 분명 '동화시'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그 무게는 어떤 심오한 철학서 못지않다.
분촌 작가가 빚어낸 이 작은 샘물 이야기는, 아이의 맑은 눈높이에서 시작해 어른의 고독한 삶 전체를 조명하며 독자에게 거대한 물음을 던진다.
샘물이 흘러가는 단순한 물리적 과정을 통해, 작가는 탄생과 성장, 노력, 고난, 그리고 궁극적인 '귀향'에 이르는 한 생의 완전한 순환을 조용히 접어 넣어 보여준다.
이 시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첫 문장, "샘물은 흘러 흘러 자꾸만 나아갔어"는 이상하리만큼 마음을 저릿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문장 자체는 너무나 평이하고 예측 가능한 자연 현상의 묘사일 뿐이다.
샘물이 흐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러나 이 단순한 서술에서 우리는 '자꾸만 나아갔어'라는 능동적이고 의지적인 동사를 발견한다.
이 동사는 샘물을 단순한 물방울 덩어리가 아닌, 삶을 살아가는 주체로 격상시킨다.
우리는 모두 한때 '재잘거리던 작은 샘물'이었다. 햇살 아래 반짝이며, 주변의 바위와 풀잎 사이를 만나며 까르르 웃던 아이.
세상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고, 흐름에 대한 목적이나 고난에 대한 걱정 없이 그저 순간에 충실했던 존재.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무수한 바위틈과 경사를 만났고, 말없이 흘러야 하는 순간들을 견뎌냈다.
'재잘대던 시절'을 넘어 '말없이 견디는 어른'이 되기까지의 그 모든 변화와 침묵이 이 짧은 문장 속에 녹아 있다.
이 문장은 독자에게 가장 근원적인 위로를 건넨다. 삶의 고비마다 멈춰 서고 싶었을지라도, 불안과 회의 속에서도 우리는 결국 '자꾸만 나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우리의 삶 자체가 멈출 수 없는 흐름이었으며,
그 흐름이 바로 성장과 성숙이었다는 무언의 증명이다.
이 한 문장이 던지는 통찰력만으로도, 이 동화시는 이미 시의 절반 이상을 완수한 셈이다.
분촌 작가는 '동화시'라는 주류 문학에서 가볍게 여겨지기 쉬운 장르를 선택했다.
동화는 대개 쉬운 이해와 교훈을 목적으로 하며, 시는 깊은 은유와 압축된 미학을 추구한다.
이 둘의 결합은 자칫 어설픈 혼종이 될 위험이 있지만, 분촌의 동화시는 그 위험을 뚫고 기묘하고도 강력한 울림을 창조한다.
아이들이 읽으면 '재밌다'라고 웃을 만한 의성어와 의태어들이 어른 독자에게는 이상하게도 눈물을 자아낸다.
아이에게는 이것이 샘물의 놀이의 언어이자, 살아있는 감각의 표현이다.
그러나 어른에게 이 단어들은 단순히 소리를 흉내 내는 것을 넘어선다.
그것은 되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간절한 호출이며, 잃어버린 순수와 천진함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다.
이 단어들은 우리의 유년 시절이 얼마나 활기차고, 말이 많았으며, 또 얼마나 빠르게 우리를 지나쳐갔는지를 상기시킨다.
흔히 동화는 가볍고 희망적이며, 시는 무겁고 사색적이다.
그러나 분촌의 동화시는 이 둘의 경계를 허물고, 읽을수록 마음에 무게가 붙는 역설을 만들어낸다. 단순하고 맑은 단어들이 깊고 복잡한 감정을 응축해 전달하는 것이다.
이는 작가가 언어를 다루는 방식이 얼마나 치밀하고 예리한지를 증명한다.
단어 하나가 울림을 낳고, 그 울림은 독자의 기억과 감정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려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는다.
〈산골바위네 샘물(4)〉은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한 생애를 완벽하게 은유하는 네 단계의 순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구조는 시를 단순한 서술에서 삶의 철학적 지도를 담은 그릇으로 만든다.
'재잘대던 시절'의 탄생
여정은 '산골의 샘물'에서 시작된다.
이는 탄생과 유년의 시기다.
작고 어린 존재, 장난스럽고 재잘거리는 몸짓으로 가득 찬 시간. 이 시기의 샘물은 세상이 무서운 줄 모르고, 오직 '까불거림'과 '즐거움'이라는 순수한 동력으로 흐른다.
이는 삶의 시작점에서 우리가 가졌던 순수함과 무한한 가능성의 은유다.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만남이 경이로운 시절. 부족한 것도 많고 모르던 것도 많았지만, 그 자체로 완벽했던 시기다.
'우직한 흐름'의 청년기
샘물은 이내 말을 멈추고, 조용히 흘러가기 시작한다.
'강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변신이 아니다.
강은 샘물과 달리 무게를 견디는 존재, 즉 어른이다. 흐르면서 부딪히고, 때로는 거대한 돌에 막혀도 포기하지 않고 '돌아서 가야 하는' 인고의 시간을 겪는다.
이 과정은 청년기와 중년기를 관통하는 우리 삶의 우직한 고난과 인내를 상징한다.
작가는 '우직함'이라는 단어를 통해 이 시기에 부여된 무게와 책임감을 드러낸다.
우직함은 밝고 가벼운 단어보다는, 어둠과 침묵에 더 가까운 단어다.
그럼에도 샘물은 '나아간다'. 이 흐름은 독자에게 가장 절실한 위로를 건넨다.
세상의 무게에 짓눌려 흐름이 버겁게 느껴질 때, 시는 속삭인다.
"네가 지금 조용히 흘러가는 건 틀린 게 아니야. 그게 강이 되는 과정이니까."
'노력의 시대'의 숭고한 은유
이 시점에서 작가의 은유는 절정에 달한다.
시는 놀랍게도 '물에 땀이 난다'는 말로 인간의 고군분투하는 삶을 통째로 은유한다.
물이 땀을 흘린다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그러나 동시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문장인가.
물은 본질적으로 땀을 흘릴 수 없다.
그러나 이 비현실적인 표현은 오히려 현실의 가장 깊은 진실을 찌른다.
샘물이 바다로 가기 위해 견뎌야 하는 산의 경사, 강의 물살, 낮과 밤의 온도 변화, 모든 마찰과 증발의 과정을 작가는 '땀'이라 명명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흐름이 아니라, 존재의 절박한 노력과 의지를 시각화한 것이다.
이 한 단어는 시를 단순한 동화적 묘사에서 한 단계 뛰어넘어 인생의 철학으로 밀어 올린다.
모든 성취는 눈물과 땀으로 이루어지며, 우리의 '흐름'이 결코 안이한 과정이 아니었음을 이 단어가 웅변한다.
'완성 그리고 귀향'의 종착점
결국 샘물은 온 힘을 다해 '용처럼, 고래처럼' 힘차게 바다로 들어간다.
바다와의 합일은 단순한 종말이 아니다.
바다는 한 생이 마무리되는 완성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모든 생명의 물이 출발하던 근원적인 자리이다.
샘물이 바다에 들어감으로써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더 거대한 존재, 즉 바다와 하나 됨을 이룬다.
이는 개인의 삶이 끝난 뒤, 더 큰 순환의 고리, 자연의 섭리, 혹은 우주의 근원적 질서로 돌아가는 '귀향(歸鄕)'을 의미한다.
시는 죽음을 소멸로 보지 않고, 원대한 회귀이자 또 다른 시작으로 낙관한다.
이 완벽한 순환 구조는 시의 메시지에 굳건한 안정감을 부여한다.
시의 마지막에 가장 선명하게 남는 문장은 샘물의 부모가 던진 약속이다.
이 문장은 독자의 연령에 따라 완전히 다른 울림을 갖는다.
우리가 세상을 떠난 뒤, 어떤 형태로든 다시 순환하여 새로운 존재로 돌아온다는 윤회적 희망.
먼저 떠나보낸 이들, 헤어진 이들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인간적인 위로와 간절한 바람.
모든 물방울이 결국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오르고 비가 되어 다시 땅으로 돌아오듯, 우리가 흘러온 곳으로 결국 돌아간다는 자연의 섭리.
분촌 작가는 이 짧은 문장으로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조금도 슬픔이나 비탄의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그저 '다시 만남'이라는 가장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언어를 남길뿐이다.
이 낙관은 얄팍한 위로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모든 고난과 역경을 겪고, 그 모든 흐름을 오래도록 바라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깊고 단단한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샘물은 햇살에 은빛 비늘처럼 빛나는 얼굴이 있고, 그 얼굴에서 땀이 난다.
샘물에게는 부모가 있고, 자신과 함께 흘러가는 형제가 있으며, 돌아가야 할 고향이 있다.
이러한 의인화는 단순한 문학적 기교를 넘어선다.
분촌 작가는 샘물에게 인간의 모습을 덧입힌 것이 아니라, 본래 인간에게 내재된 샘물의 얼굴을 돌려준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근원적으로 '흘러가는 존재'다. 정체하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를 겪는다. 흘러가며 상처받고, 부딪히며 배우고, 땀을 흘리며 노력하고, 결국은 더 큰 존재와의 합일을 향해 나아간다.
분촌 작가의 독특한 자기소개,
"더 이상 쓰지 않게 될 그날을 바라 씁니다"는
이 동화시의 모든 정서를 압축하는 기묘한 고백이다.
이 문장에는 두 가지 상충되는 마음이 공존한다.
창작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지속적인 갈망.
삶과 창작의 유한함, 그리고 결국 모든 흐름이 종결될 것을 아는 초연함.
이 두 마음의 공존이 그의 시에 독특한 색채를 부여한다.
그의 시는 항상 잠시 머물다 다시 떠나는 물처럼 읽힌다.
이러한 균형감은 삶을 오래도록, 정직하게, 그리고 다정하게 들여다본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문학적 성숙함의 증거다.
작가는 자신의 창작 활동마저도 샘물의 흐름처럼 인식하며, 그 흐름이 멈출 날을 낙관적으로 바라본다.
이 고백은 독자에게 작가 자신의 삶 역시 이 순환 속에 놓여 있음을 은연중에 시사하며, 시의 메시지에 더욱 강력한 진정성을 부여한다.
〈산골바위네 샘물(4)〉은 단순히 아름다운 은유로 끝나는 시가 아니다.
그것은 독자의 삶을 향해 거대한 물음을 던진다.
까불거리던 샘물의 시기를 지나, 우직하게 무게를 견디는 강이 된 나는 지금 삶의 어느 지점에 와 있는가.
그리고 그 흐름의 궁극적인 목적지인 나는 어떤 바다를 향해 가고 있는가.
시를 덮고 난 후, 나는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침 비가 내리고 있었다.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빗줄기를 보며, 나는 오랜 시간을 흘러온 내 삶의 모든 순간을 떠올렸다.
엄마의 손을 잡고 세상이 전부였던 유년 시절, 어디든 닿을 수 있을 것 같던 무모한 청춘, 그리고 지금의 나를 힘들게도 했고 단단하게도 만든 중년의 시간들.
무엇 하나 쉬운 순간은 없었지만, 흘러온 모든 순간이 결국은 나를 바다로 데려가는 길이었다는 시의 메시지를 깨닫는다.
샘물이 바다로 간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근원적인 존재와 하나 되어 완성되는 것처럼, 우리 삶의 여정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 분촌 작가의 시 한 편이 그 거대한 낙관적 진실을 깨닫게 하는 힘을 발휘했다.
〈산골바위네 샘물(4)〉은 겉으로 보기에 짧고 단순한 동화시일지라도, 그 안에는 태어남, 성장, 노력, 고난, 완성, 그리고 귀향이라는 삶의 전 과정이 치밀하고 아름다운 은유로 담겨 있다.
이 시는 독자가 누구든, 나이와 상관없이 샘물이 되어 함께 흐르게 만든다.
샘물의 재잘거림에서 자신의 순수를 찾고, 흐르는 땀에서 자신의 노고를 인정받으며, 바다와의 합일에서 삶의 궁극적인 안식과 희망을 발견한다.
그렇기에 이 시는 단순히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한정될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생애를 조용히 비추는 '거울'이며, 모든 생이 겪는 순환의 과정을 맑은 언어로 기록한 '인생의 기록'이다.
샘물은 멈추지 않고 흘러 흘러 자꾸만 나아간다. 우리도 그렇게 나아가다 언젠가 바다와 하나 되고,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시는 그 단순하지만 거대한 진실을, 아이도 이해하고 어른도 울게 만드는 가장 조용하고도 가장 힘 있는 언어로 써낸 수작이다.
“흘러가는 지금 이 순간도,
당신이라는 샘물의 여정에서
가장 빛나는 한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