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기억과 시간의 깊이

내면의 시간을 탐색하는 서사

by 콩코드


어느 조용한 오후, 차 한 잔을 마시다가 문득 떠오른 향기나 맛이 지난 시절의 기억을 불러온 적이 있는가. 그 기억은 마치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선명하고, 생생하며,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결을 동반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바로 그런 순간에서 시작된다. 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이 모든 이야기를 불러오는, 시간의 문이 열리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은 흔히 ‘20세기 최고의 소설’이라 불린다. 그 명성에 걸맞게, 7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속에는 하나의 삶, 하나의 시대, 하나의 감각 세계가 응축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진짜 위대함은 ‘무엇을 말하느냐’보다는 ‘어떻게 느끼고 기억하느냐’에 있다. 프루스트는 우리 모두가 경험하지만 언어로 붙잡기 어려운 내면의 시간을, 그 흐름과 멈춤과 잔물결까지 포착해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플롯 중심의 소설이 아니다.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기억은 단절 없이 이어진다. 과거는 현재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현재는 과거를 다시 쓰며 완성된다. 주인공 ‘나’는 사교계와 예술, 사랑과 질투, 질병과 상실을 겪으면서 내면의 감각을 기록해간다. 이 여정은 ‘삶을 산다’기보다는 ‘삶을 느낀다’는 데 더 가깝다. 그리고 결국에는, 느낀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기억의 방식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작품의 시작점인 마들렌의 에피소드는 단순한 ‘추억의 환기’가 아니다. 그것은 비자발적 기억—곧 의도하지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되살아난 기억의 발현이며, 이 소설 전반을 관통하는 시간 철학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종종 어떤 장면, 향기, 소리 속에서 뜻밖의 감정과 마주친다. 프루스트는 바로 그 순간의 진실성을 믿는다. 의식적으로 되새기는 기억은 자주 왜곡되고 편집되지만, 비자발적으로 떠오른 기억은 그 사람의 진짜 삶을 담고 있다고.


이 소설은 또한 인간 존재와 예술의 의미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한다. 주인공은 결국, 경험과 기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서사를 완성한다. 이는 단지 작가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누구나 ‘잃어버린 시간’을 품고 살아가며,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다시 마주하고 해석하려 한다. 예술은 그 해석의 한 방법이고, 글쓰기란 결국 삶의 시간을 붙잡고자 하는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프루스트는 사랑을 통해 질투를, 우정을 통해 허영을, 상실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다. 그 모든 감정은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사유하게 한다. 그 깊은 사유는 느림에서 온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빠르게 읽히지 않는다. 천천히, 때로는 멈추며, 행간에 숨은 감정의 무늬를 따라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읽을 때 비로소, 이 책은 독자의 삶 속에서 다른 시간의 결을 만들어낸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가 삶의 덧없음을 인식하며 일상의 무게를 되짚게 한다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그 일상 안에 숨어 있는 감각과 기억의 깊이를 더듬게 한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잊으며 살아가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잊은 것을 어떻게 다시 만나는가에 있다. 그것은 죽음 이후의 삶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는 삶을 더 진실하게 느끼기 위한 길이다.


프루스트의 문장은 길고, 복잡하며, 마치 미로 같다. 그러나 그 미로 속을 걸으며 우리는 어느새, 자기만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 있다. 그 시간은 남들이 보지 못한 우리의 내부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의 흔적 속에서, 아주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묻는다. "당신은 정말로 당신의 시간을 살았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때로 그 질문 하나를 붙들고 평생을 살아간다.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