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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 자유와 삶의 충일함

by 콩코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우리에게 묻는다.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 물음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추상적인 철학 명제가 아니라,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내야 할 하나의 ‘삶의 방식’에 관한 것이다. 작품 속 주인공 조르바는 그 방식의 화신이다. 그는 세상의 관습과 제도, 사회적 규범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다. 대신 내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욕망과 감각에 충실하며 살아간다. 조르바의 삶은 진정한 자유의 몸짓이자 충만함의 표정이며,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존재 방식 그 자체다.


조르바는 젊은 지식인인 화자와 뚜렷이 대비된다. 화자는 책과 사색에 파묻혀 삶을 관조하고 분석하지만, 그의 내면은 어딘가 공허하고 막막하다. 그는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논하고 성찰하지만, 정작 현실 속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채 망설인다. 반면 조르바는 삶을 향해 주저 없이 몸을 던진다. 그는 산을 오르고, 춤을 추며, 사랑하고, 땀 흘려 일하고, 술을 마시며, 때로는 고통과 절망의 밑바닥까지 겪는다. 그럼에도 조르바는 단 한 순간도 삶을 유예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을 뜨겁게 살아내는 존재다. 이 두 인물의 차이는 결국 ‘삶을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물음 앞에서 조르바는 주저함이 없다. “인생은 춤이다. 망설이지 말고, 미친 듯이 즐겨라.” 그의 삶은 사회가 말하는 성공이나 인정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바로 그 자유로움과 진솔함 덕분에, 오히려 더 충만하고 살아 있는 듯 보인다. 조르바의 삶의 방식은 우리가 흔히 일상 속에서 놓치고 마는 ‘자유’와 ‘현재’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조르바가 보여주는 자유는 단순히 외부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해방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과 한계를 똑바로 마주하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게 창조해 나가는 내면의 힘이다. 그는 때로 실패하고, 쓰러지며, 깊은 고독과 절망에 짓눌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고통조차 그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은 조르바가 진정으로 ‘살아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역설적 징표다. 그의 자유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껴안음으로써 더욱 진실해진다.


이 소설은 ‘타자’와의 관계에서도 깊은 통찰을 전한다. 조르바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유를 거침없이 표현하면서도, 그들과 진심 어린 정서적 교감을 나눈다. 그는 타인의 삶과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인물이며, 그 만남의 순간들 속에서 자신의 내면 또한 더욱 풍요로워진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삶이란 결코 고립된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서로 엮이고 스며드는 존재들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덮고 난 독자는 어느새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가? 지금 이 순간, 내 삶은 얼마나 진실한가? 나는 조르바처럼 나를 억누르지 않고, 온전히 자유롭게 삶을 향해 몸을 던지고 있는가? 아니면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과 타인의 시선에 맞추느라, 정작 내 마음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삶의 진짜 의미는 거창한 이상이나 언젠가 이룰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솟구치는 욕망과 두려움, 기쁨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데 있다. 조르바가 그러했듯, 삶은 때로 불완전하고 혼란스럽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뜨겁고 찬란하다.


‘자유’와 ‘충만함’이라는 키워드는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그리스인 조르바』는 삶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을 제시한다. 그것은 머리로만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치며, 주저함 없이 삶의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태도다.


조르바의 삶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큰 가르침은 ‘후회 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일의 소중함이다. 그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불필요하게 염려하지 않는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의 몸과 마음에 충실하려 한다. 그 결과 그는 세상의 그 어떤 부나 명예보다 값진 것, 곧 진정한 자유를 손에 넣는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삶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물음에 대한 진정한 답은 머리로만 사유하는 데 있지 않다. 몸으로 부딪치며, 뜨겁게 살아내는 데 있다. 조르바처럼 우리는 매 순간을 온전히 품고, 그 안에서 용기를 발견해야 한다.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삶의 진정한 의미와 자유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깊이 성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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