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일상적 성찰과 우리 삶의 무게
우리는 대부분 ‘아침’과 ‘죽음’을 동시에 떠올리는 데 익숙하지 않다. 아침은 하루의 시작이고, 죽음은 삶의 끝이다. 하나는 생의 밝은 전환이고, 다른 하나는 어둠의 종착지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김영민 교수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 이 낯선 조합을 과감히 제안한다. 그리고 그 말은 묘하게도, 우리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다. 철학자가 삶을 통과하며 마주한 질문과 사유의 편린들, 그리고 그 성찰의 궤적을 따라가는 고요한 안내서이다. 그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삶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하는 태도라고 말한다.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얼마나 유한한지를 인식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성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김영민은 우리가 흔히 스쳐 보내는 일상적 말들과 행위들에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어 “명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아래, ‘가족’이라는 제도 속의 권력과 감정의 흐름을 드러내고, “사랑은 왜 어려운가”라는 질문에는 인간관계의 불가능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짚는다. 그의 문장은 날카롭지만 결코 냉소적이지 않고, 오히려 깊은 연민과 고요한 유머를 품고 있다. 삶의 겉면을 벗기고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그의 시선은, 철학이란 삶에서 얼마나 가까이 있어야 하는지를 다시금 일깨운다.
책의 제목은 ‘죽음’을 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다. 이 질문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반복되어야 하는 질문이다. 김영민은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왜?”라고 묻지 않는 삶, “어떻게?”를 유예하는 태도, 그리고 “무엇을 위해?”라는 질문을 외면하는 무관심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둔감한 존재가 되어간다. 그는 그런 삶의 자동화를 멈추기 위해, 매일 아침 죽음을 생각해보라고 권하는 것이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독자에게 명확한 해답을 주기보다는, 질문하는 법을 되새긴다. 그 질문은 때로 불편하고, 익숙한 감정을 거스르며, 세상의 ‘상식’을 낯설게 만든다. 그러나 철학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던가. 세상의 당연함을 낯설게 하고, 익숙한 삶의 모서리를 다시 손끝으로 더듬게 만드는 것. 김영민의 글은 바로 그런 철학의 고전적 미덕을 한국 사회의 일상적 정서 속에 끌어들인다.
이 책은 특히 불확실성과 피로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더 큰 울림을 준다. 모두가 속도와 성과를 좇는 시대에 ‘잠시 멈추어 생각하라’는 그의 말은 느릿한 저항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느림은 결코 무기력이나 도피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품격과 고유함을 회복하는 길이다. 죽음을 의식하는 것은 삶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삶에 진지하게 임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철학자의 삶’은 먼 이론이나 개념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명절을 피로하게 만드는 감정 구조’, ‘사랑이 지속되지 못하는 현실’, ‘가장 가까운 사람과도 닿지 않는 거리감’ 속에서 매일 새롭게 질문하고 사유하는 삶이다. 그리고 그런 성찰은 궁극적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앞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다. 죽음을 삶의 외부가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그 인식은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한다.
책을 덮은 독자는 어느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지금 나는 무엇을 쫓고 있는가? 나는 누구의 기대 속에 살고 있으며, 그 기대는 나의 것인가? 죽음 앞에서 지금의 삶은 과연 충분한가? 김영민의 글은 조용히 이런 질문들을 독자의 내면에 남기고 떠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침마다 다시 살아나 삶을 흔들고 다시 세운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1.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이자 정신과 의사였던 프랭클은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증언한다. 고통 속에서도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않을 때, 인간은 무너지는 삶에서도 존엄을 지킬 수 있다. 김영민의 사유처럼 이 책 또한 ‘죽음’과 ‘삶’을 한 자리에서 사유하도록 이끈다.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 비로소 삶은 깊이를 갖는다. 고통과 성찰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의미를 선택할 수 있다.
2. 김영민, 『철학이 필요한 시간』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의 자매편이라 할 이 책은, 일상의 단어 하나하나에 철학적 물음을 던지며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삶의 풍경을 낯설게 만든다. 익숙한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사유의 기술, 그것이 곧 철학의 시작임을 보여준다. 김영민 특유의 예리한 문체와 조용한 유머는 사유의 부담을 덜고, 생각의 세계로 부드럽게 초대한다. ‘지금 여기서 생각하지 않으면 언제 생각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시대를 초월해 독자에게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