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가볍게 소비되는 시대다. SNS에서 누군가의 사연에 하트 하나로 마음을 보냈다고 믿고, '공감능력'은 인간관계의 스펙처럼 간단히 체크되는 덕목이 되었다. 하지만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에서 이 단어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끈다. 그는 말한다. 공감은 감정의 교류를 넘어, 인류 문명의 방향을 결정지은 가장 근본적인 힘이라고. 사랑, 연민, 이해보다도 더 깊은 차원에서 작동하는 ‘연결의 능력’. 그것이 곧 공감이다.
리프킨은 인간 문명의 진화사를 ‘공감의 확장’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본다. 가족 중심의 원시 사회에서부터 부족 공동체, 국가 공동체, 그리고 지구 공동체로 나아오는 길 위에 공감이 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먼저 가까운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했고,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그 범위를 확대해 왔다. 전통적으로는 종교나 국가, 이념이라는 장치가 공감의 경계를 형성했다면, 오늘날의 기술 문명은 이전보다 훨씬 더 넓고 복잡한 공감 네트워크를 가능하게 만든다. 지금 우리는 물리적으로 전혀 접촉할 수 없는 누군가의 고통에 대해 울 수 있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의 삶에 깊이 감응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이 곧 공감의 확장을 보장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의 현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착각 아래, 우리는 점점 더 무관심하고, 각자의 울타리 안에 갇혀 살아간다. 리프킨이 경고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공감은 자동적으로 자라나지 않는다. 그것은 ‘의지’를 통해 확장되어야 하는 감각이며, ‘사회적 설계’를 통해 지속되어야 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지금, 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책은 과학과 철학, 역사와 경제를 넘나들며 거대한 논증을 펼쳐낸다. 거울 뉴런(mirror neurons)이 밝혀낸 신경학적 공감 메커니즘, 산업혁명 이후 분절된 노동과 타인에 대한 감정 단절, 근대국가의 성장과 인간 정체성의 변화, 그리고 최근의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불러온 감정의 재조직화까지. 이 모든 흐름 속에서 리프킨은 일관되게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서로에게 가까워질 수 있는가?"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바이오 공동체"라는 개념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연결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해, 생태적 위기와 기후변화에 대한 감정적 책임감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타자에게 감정을 확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기후위기는 단지 탄소의 문제가 아니라, 타자의 고통을 상상하지 못하는 ‘공감 부재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오래전 읽은 문장이 떠올랐다.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 그게 우리가 사람이라는 증거야.” 이 단순한 문장이 리프킨의 이론 안에서 정교하게 구조화되고, 사회적 방향으로 확장되는 것을 보며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공감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본능으로만 남는다면 그 힘은 쉽게 사라진다. 그것을 사회적 시스템과 정치적 구조 안에 어떻게 정착시키느냐가, 앞으로의 시대를 결정지을 것이다.
『공감의 시대』는 단순한 인문 교양서가 아니다. 이것은 선언이며 제안이고, 미래의 윤리 교과서에 가까운 책이다. 우리의 교육은 얼마나 공감 능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가? 지금의 정치 제도는 타인의 삶을 얼마나 반영할 수 있는 구조인가? 기업의 시스템은 공감에 기초하고 있는가? 책은 거듭 질문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점점 더 개인적인 것으로 흘러간다.
당신은 마지막으로 낯선 타인의 고통에 대해 생각한 적이 언제인가?
당신이 느낀 공감은, 실제 행동으로 연결되었는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꽤 오래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타인의 고통에 무력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불편한 이야기’에는 조용히 스크롤을 넘기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감정 앞에서는 방어적으로 침묵했던 시간들. 리프킨은 그런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공감 능력이 아니라, 그것을 향해 가고자 하는 의지라고.
이 책을 읽고 난 뒤, 세상의 사건들이 조금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뉴스에 등장하는 난민의 표정, 전쟁터의 폐허, 거리의 노숙자, 어느 나라의 폭염 속 쓰러진 아이들.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이미지가 오래 남았다. 그들의 고통은 더 이상 추상적인 타인의 것이 아니었다. 공감의 확장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변화를 의미한다.
결국, 『공감의 시대』는 한 사람의 삶에 작지만 결정적인 균열을 만든다. 그것은 책을 읽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변화다. '공감'이라는 말에 다시 무게가 생겼고, 나의 일상도 조금씩 그 무게를 받아들이고 있다. 지하철에서, 뉴스에서,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나는 점점 더 ‘함께 아파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리프킨이 말한 ‘새로운 인간’의 출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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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 『공감의 시대』와 나란히 놓고 읽으면 깊어지는 통찰
1. 『이타적 유전자』 – 매트 리들리
(원제: The Origins of Virtue)
이기적 유전자를 넘어, 협력의 진화로
핵심 내용: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 존재가 아니라, 협력하고 공감하도록 진화해왔다고 주장한다.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게임 이론을 통해, 집단 내에서의 협동이 어떻게 생존에 유리했는지 설명한다.
『공감의 시대』와의 연결: 리플킨이 강조하는 '공감의 진화'라는 개념을 진화생물학의 틀에서 보다 구체화해준다. 공감은 단지 윤리적 가치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라는 점에서 두 책은 강하게 호응한다.
함께 떠오르는 질문: 우리는 왜 타인을 돕는가? 유전자의 전략인가, 문화의 선택인가?
2. 『타인의 고통』 – 수전 손택
(원제: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공감에도 거리가 필요하다
핵심 내용: 전쟁 사진, 고통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소비되며 감정이 둔화되는 현상을 분석한다. 고통은 타인의 것이지만, 이미지로 소비되는 순간 '공감'은 착각이 되기도 한다.
『공감의 시대』와의 연결: 리플킨은 디지털 시대를 공감 능력 확장의 기회로 보지만, 손택은 그 반대 가능성 ― 즉, ‘공감의 피로화’ ― 를 경고한다. 둘을 함께 읽으면, 감정 전달의 매개가 된 이미지와 기술의 양면성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함께 떠오르는 질문: 우리가 공감한다고 믿는 순간, 실제로는 무감각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
3. 『당신이 옳다』 – 정혜신
공감은 말보다 먼저 다가가는 일
핵심 내용: 상담 현장에서의 실제 사례를 통해 공감이란 무엇인지, 왜 사람들은 공감받고 싶어 하는지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특히 ‘감정의 안전지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회복을 촉진하는지를 강조한다.
『공감의 시대』와의 연결: 리플킨이 ‘문명 단위의 공감 진화’를 이야기했다면, 정혜신은 한 사람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일대일 공감’을 말한다. 거시적 전망과 미시적 실천이 만나는 지점.
함께 떠오르는 질문: 진짜 공감은 대화의 기술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일 아닐까?
4. 『불안』 – 알랭 드 보통
(원제: Status Anxiety)
공감 이전에, 불안을 이해해야 한다
핵심 내용: 현대인은 왜 끊임없이 ‘불안’한가? 그 뿌리를 사회적 지위, 타인의 시선, 비교 경쟁 속에서 찾는다. 예술, 철학, 종교가 이 불안을 어떻게 다뤄왔는지도 섬세하게 분석한다.
『공감의 시대』와의 연결: 공감은 단순히 감정을 나누는 능력이 아니라, 타인의 불안을 먼저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이기도 하다. 사회적 불안이 팽배한 시대에서, 공감이 작동하려면 그 ‘불안의 배경’까지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함께 떠오르는 질문: 우리가 정말로 공감하고 싶은 건, 타인의 고통일까, 아니면 그 고통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나 자신’일까?
정리하며
이 네 권은 『공감의 시대』의 거대한 담론을 보다 구체화시키고, 감정과 공감이라는 주제를 삶과 철학, 사회와 과학이라는 다양한 렌즈로 비춰볼 수 있게 돕는다.
매트 리들리는 ‘왜 공감이 진화했는가’를 말하고,
손택은 ‘공감은 언제 왜 실패하는가’를 묻는다.
정혜신은 ‘공감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여주고,
드 보통은 ‘왜 공감 이전에 불안을 돌아봐야 하는가’를 알려준다.
이 모든 질문은 결국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더 나은 사회는 더 공감하는 사회인가? 아니면, 더 이해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품는 사회인가?
리플킨의 책은 그 답을 ‘공감의 진화’에서 찾지만, 그 여정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