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드는 방에서, 오늘이라는 풍경화를

by 콩코드


창문을 반쯤 열어둔 채, 가만히 방 안에 앉아 있다. 햇살이 천천히 들이친다. 장롱과 책장, 커튼 사이를 스치고 나서 바닥 위에 환한 사각형 하나를 남긴다. 그것은 마치 어제의 시간도, 내일의 걱정도 모르는 빛이다.


오전의 햇살은 언제나 조금 따뜻하고, 조금 슬프다. 그 감정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누군가는 ‘이런 날은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한다. 나는 그 중간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듯한 기분이다.


방 안 가득 들어찬 햇살은 풍경화의 배경이 되고, 나는 그 안에 자리한 작은 대상물이다. 책상 위에 어지럽게 흩어진 연필들, 노트에 남겨진 연한 글자들, 식기 위에 남은 커피 자국까지도, 모두 그림의 일부다. 나는 오늘이라는 이름의 풍경화 속에서, 아무 장식 없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오늘’을 그냥 지나친다. 그저 하루를 버틴다고 말하며. 하지만 오늘은 무수한 오늘들 중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단 한 번만 그려지는 그림이며, 완성되면 다시는 덧칠할 수 없다.


햇살이 만든 그림자, 시간이 만든 감정, 내 마음에 머문 생각. 그 모두는 오늘이라는 캔버스를 채우는 붓질이다. 슬며시 웃게 만든 음악 한 곡, 문득 떠오른 오래된 기억, 커피를 내릴 때 퍼져오는 고소한 냄새. 그런 것들이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한다.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은근하고 다정한 색감이다. 격렬한 색채보다 잔잔한 명도 차이가 더 오래 남는 것처럼.




어릴 적, 나는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붙잡으려 애썼다. 손으로 쥐면 사라지고, 팔을 뻗으면 피하는 빛. 빛은 그저 거기에 있었지만, 나는 빛과 함께 있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다만 그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이제는 붙잡으려 하지 않고, 함께 흘러가려 한다.


햇살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나를 말하게 만든다. “오늘 어땠어?”라고 묻지 않는데도, 나는 스스로를 향해 그런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오늘을 잘 살았는지, 무언가를 느꼈는지,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않았는지를 되묻게 된다.


햇살은 방 안의 먼지를 비춘다. 떠다니는 입자 하나하나가 이 공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때때로 완벽한 장면만을 추억하지만, 사실 진짜 삶은 그 틈새에 있다. 먼지 속을 유영하는 햇살, 물 잔에 일렁이는 빛의 무늬, 가슴속에 잠긴 작은 안도감. 그런 것이야말로 ‘지금’이라는 시간의 질감이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른다. 하지만 하루 속의 어떤 순간은 마치 멈춘 듯이 느껴진다. 책을 덮고 고개를 들었을 때,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볼 때, 커피를 마시다 문득 멈칫할 때. 그 찰나에, 나는 풍경 속의 한 인물이 된다. 움직이지 않고, 숨소리만으로 존재하는 순간. 그럴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안온함을 느낀다. 마치 세상이 아주 작고, 나를 품을 만큼의 크기라는 생각.


삶은 대부분 반복된다. 아침이 오고, 커피를 내리고, 일을 하고, 저녁이 되고, 다시 잠이 든다. 하지만 반복 안에도 변화가 있다. 햇살의 각도는 매일 다르고, 내 감정의 높낮이도 달라진다.


그 조용한 차이를 느끼는 감각이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나는 오늘도 이 방에서 작은 풍경화를 그린다. 별다른 계획이 없어도 괜찮다. 완벽하게 정리된 하루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하루 속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햇살이 들었다는 것. 내가 그것을 알아봤다는 것. 잠시나마 그 빛 속에 멈춰 섰다는 것.


그걸로 충분하다.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