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첩 속, 잊힌 계절을 다시 꺼내보다

by 콩코드

사진첩을 펼칠 때마다, 나는 늘 ‘조용한 문’을 여는 기분이 든다. 오래된 서랍 속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시간의 문. 그 안에는 먼지가 아니라, 한낮의 햇빛과 부드러운 바람, 그리고 잊고 있던 목소리가 고스란히 숨 쉬고 있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는 모든 것이 손가락 한 번의 스크롤로 흘러가 버리지만, 종이 사진첩 속 시간은 그렇지 않다.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겨야만 만날 수 있는, 기다림이 스며 있는 시간. 그것은 오직 느린 호흡으로만 들을 수 있는 오래된 음악처럼 깊다.


그날도 그랬다. 오랜만에 꺼낸 사진첩 속에서 나는 한 계절과 마주했다. 달력 위에서는 이미 몇 해 전의 여름이었지만, 사진 속 공기는 여전히 내 볼을 스치는 듯 선명했다.

그 속의 나는 해가 잘 드는 카페 창가에 앉아 있었고, 유리창 너머로는 한여름의 짙고 윤기 있는 녹음이 가득 서 있었다. 그때의 웃음, 그때의 어깨 각도, 그때의 공기 냄새까지—모두 사진 속 깊숙한 곳에서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계절은 사진 속에서 늙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사진을 ‘기억의 보관함’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사진 속 계절은 기억보다 훨씬 오래, 더욱 선명하게 살아 있다. 잎이 파랗게 빛나던 순간, 부드러운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던 하늘, 반소매 셔츠 끝자락에 스며 있던 햇빛—현실 속에서는 이미 흐릿해진 것들이 사진 속에서는 한 점의 변색도 없이 나를 맞이한다.


아마 그래서 사진첩을 열 때 우리는 약간의 두려움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다시 깨어날까 봐. 그날의 기쁨과 설렘이야 반가울 테지만, 그날의 허전함과 아픔까지도 고스란히 따라올 수 있으니까. 기억은 언제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담고 있다.


사진은 ‘찍힌 사람’보다 ‘찍은 사람’을 말한다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다 보면, 그 속에는 피사체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존재가 있음을 깨닫는다. 바로 셔터를 누른 사람. 그가 서 있던 자리, 바라본 각도, 멈추고 싶어 했던 순간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한 장의 사진은 단순히 풍경을 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선을 고정시키는 행위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나 사진첩을 펼치면, 거기에는 찍힌 사람뿐 아니라 찍은 사람의 마음까지 복원된다.


나는 그날의 사진을 찍어준 사람을 기억한다. 우리가 마주 앉았던 창가 자리, 차갑게 식어가던 커피, 창밖으로 스치던 여름 바람. 그는 아마도 내 웃음이 자연스러워지는 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의 그의 눈빛까지, 사진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사진첩 속에는 ‘날씨’도 들어 있다

사진 속 하늘은 종종 실제 하늘보다 더 선명하게 살아 있다. 그날 햇빛이 얼마나 따스했는지,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불었는지, 습기가 공기 속에 얼마나 묻어 있었는지—이 모든 것이 한 장의 사진에 고스란히 남는다. 그래서 오래된 사진을 꺼내 들면, 마치 빛의 온도가 피부에 닿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나는 사진 속에서 겨울의 숨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하얀 김이 입김처럼 피어오르는 거리, 털모자를 눌러쓴 아이, 손에 꼭 쥔 종이봉투.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내 귀에는 눈 위를 밟는 ‘바스락’ 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계절은 눈으로만이 아니라, 귀와 코와 피부로도 되살아난다—사진 속에서, 그 순간 그대로.


잊힌 계절은 ‘지금’을 비춘다

우리는 왜 오래된 사진 속 계절에 마음이 흔들릴까? 아마 그것이 지금의 우리를 비춰주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 전의 나를 바라보면, 그 사이에 내가 얼마나 변했는지가 드러난다. 표정의 결, 눈빛의 무게, 웃음의 빈도—그 모든 변화가 현재의 나를 설명하는 거울이 된다.


사진 속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가벼웠고, 조금 더 무모했으며, 조금 더 서툴렀다. 그러나 동시에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이 때로는 그립다. 그래서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다 보면, 그것은 단순한 ‘과거의 재방문’이 아니라 ‘현재의 재발견’이 되기도 한다.


디지털 앨범이 줄 수 없는 감각

요즘은 모든 순간이 스마트폰 속에 저장된다. 스크롤 한 번이면 수백 장의 사진이 흘러간다. 그러나 종이 사진첩을 넘기는 감각은 전혀 다르다. 사진을 꺼내고, 페이지를 넘기고, 잠시 멈추는 동안 우리는 ‘기억을 만지는’ 경험을 한다. 사진이 한 장 한 장 종이 위에 존재한다는 것은, 그 시간이 더 이상 삭제될 수 없는 순간임을 뜻하기도 한다.


게다가 종이 사진에는 특유의 ‘침묵’이 흐른다. 디지털 화면이 빛을 내뿜는 반면, 종이 사진은 빛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사진첩을 볼 때의 시간은 훨씬 부드럽고 느리다. 그 느린 시간 덕분에 우리는 계절 하나를 온전히 꺼내어, 숨 쉬듯 맞이할 수 있는 틈을 얻는다.


계절은 결국 사람의 얼굴로 기억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이라도, 그 속에 사람이 없으면 오래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계절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그 계절 속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름 바다의 푸른 물결보다, 그 앞에서 웃고 있던 친구의 얼굴이 더 선명하다. 겨울의 첫눈보다, 그 눈을 바라보며 놀라워하던 표정이 더 오래 남는다.


사진첩을 넘기며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특정한 장소나 기온, 날씨가 아니라, 그 계절 속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의 표정과 목소리라는 것을. 결국 잊힌 계절을 다시 꺼내보는 일은, 그 계절의 사람들을 다시 불러오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다시 덮는 순간, 마음속에 남는 것

한참 사진첩 속에서 시간을 거슬러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책장을 덮어야 할 때가 온다. 그때 마음속에는 여러 감정이 남는다. 아쉬움, 그리움, 그리고 묘한 안도감.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 시간은 오히려 더 단단하게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나는 사진첩을 덮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사진은 ‘돌아갈 수 없음을’ 가장 부드럽게 받아들이게 해주는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 부드러움 덕분에, 우리는 다시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는지도 모른다.


다음 계절을 위해 남겨두는 자리

이제 나는 사진을 찍을 때, ‘다시 꺼내보고 싶은 순간’인지 먼저 생각한다. 계절을 온전히 담아둘 수 있는 순간, 사람의 표정과 바람과 햇빛이 함께 머무는 순간. 그 순간이 언젠가 사진첩 속에서 나를 다시 만나러 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 먼 훗날, 또 다른 잊힌 계절을 꺼내볼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조용히 셔터를 누른다. 지금은 미처 몰라도, 언젠가 이 사진이 다시 나를 흔들어 줄 날이 올 것임을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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