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한동안은 가방을 풀지 않는다. 옷 속에 밴 낯선 도시의 공기, 가방 안쪽 주머니에서 발견한 버스 티켓 한 장, 호텔 문 앞에서 주운 나뭇잎, 그리고 한 장의 엽서. 그 엽서는 내가 그곳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어쩐지, 그곳을 정말 ‘살아낸’ 것 같지는 않다. 카메라 셔터는 분명 몇 번이고 풍경을 담아냈고, 발은 그 도시의 돌바닥을 밟았으며, 낯선 언어가 뒤섞인 소음 속을 걸었건만, 마음은 아직 그 도시에 도달하지 못한 듯하다. 마치 풍경이 나를 스쳐 지나간 것이지, 내가 그 풍경 속에 들어갔다 나온 건 아니라는 기분.
그러니 엽서 한 장을 손에 들고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된다. 사진 속에 고요히 멈춰 있는 거리, 비 오는 날의 운하, 석양에 물든 광장. 그 모든 풍경은 찰나의 내게 너무나 커다란 감정을 안겼지만, 돌아오고 나면 현실보다 더 희미해진다. 이상하게도 엽서 속 도시는, 내가 다녀온 곳보다도 더 선명하다.
여행 중 나는 자주 엽서를 샀다. 누군가에게 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보내기 위해서. 언젠가 내가 그 도시를 기억하지 못하게 될까 봐, 잊을 수밖에 없을 만큼 시간이 무정할까 봐. 어떤 도시에서는 시내 한복판 작은 서점에 들러 가장 마음에 드는 엽서를 골랐고, 어떤 도시에서는 숙소 근처 슈퍼마켓에서 아무 인쇄물이나 집었다.
엽서를 고를 때 기준은 단순했다. 내가 그곳에서 본 것이 아닌, 보지 못한 풍경을 담고 있을 것. 여행자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쩔 수 없이 놓치고 지나가는 것이 너무 많다. 전날 밤에 야경을 보고 와도, 정작 그 도시의 아침 햇살은 보지 못했고, 눈길 끌던 작은 골목은 시간이 없어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게 ‘보지 못한’ 풍경들이 늘 마음에 남았다.
엽서는 그 미완의 기억을 위한 장치였다. 거기 가지 못했지만, 그 자리에 한 발짝이라도 다가가고 싶었던 마음의 증거. 그러니 엽서 속 풍경은 언제나 실제보다 더 아프고, 더 아름답다.
그리움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살아냈다고 믿는 시간보다도 살아내지 못한 시간에 더 짙게 드리운다.
눈앞에 두고도 가지 못한 정류장, 벽 하나를 두고도 들어가지 못한 박물관, 한 블록만 더 걸으면 나왔을 오래된 다리.
“다음에 오면 꼭 가야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우리는 그 도시로 돌아가지 않는다. 다시 그 나라로 간다 해도, 같은 계절, 같은 공기, 같은 햇빛 속의 그 장소를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여행은 늘 그 한순간에만 존재하는 마법이기에.
그러니 나는 지금도, 내 책상 서랍 속의 엽서들을 꺼내 한 장씩 들여다보며, 거기 머물지 못한 나 자신을 떠올린다. 사진 속 정경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나는 이미 거기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쓸쓸하다.
그 도시는 지금도 누군가의 풍경이 되고 있을 것이다. 낯선 발걸음이 그 거리를 지나고, 햇살이 벽돌 사이로 스며들며, 누군가는 나처럼 엽서를 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모든 장면에 없고, 다시는 가닿을 수 없지만, 바로 그래서 그 도시를 더 오래도록 그리워하게 된다.
돌아오지 못한 풍경 속에는 언제나 ‘다른 내가 되었을지도 모를 가능성’이 있다.
어떤 날은, 그 가능성이 지금의 현실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 도시에 조금만 더 머물렀다면, 골목 끝 카페에 들어가 앉았더라면, 낯선 이의 말을 용기 내어 건넸더라면. 그런 ‘머물지 못한’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지 않았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그리움이란 결국, 지금의 내가 아닌 내가 될 수도 있었던 모든 가능성에 대한 경외이자 애도다.
엽서 한 장은 그런 감정들을 압축해 품고 있다. 한 도시가 아니라, 나의 시간을. 내가 다녀왔지만, 완전히 속하지 못한, 결국 나를 지나쳐간 장소에 대한 기억을.
엽서에는 주소도, 이름도, 인사말도 없다. 보내지지 않은 채로, 그저 간직될 뿐이다.
이따금은 그 엽서를 나 자신에게 보내고 싶다. 어쩌면, 지금 여기의 내가 아닌, 먼 훗날의 나에게.
그때 나는 이 도시를 기억하고 있을까. 기억이 사라진 후에도 마음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다시 엽서를 덮고, 그 속의 도시를 마음에 붙인다.
어쩌면 가장 오래 기억되는 여행지는, 다녀온 곳이 아니라, 충분히 머물지 못했던 곳인지도 모르겠다.
“그곳을 완전히 본 것은 아니지만, 보지 않았기에 더욱 또렷이 기억하게 되는 풍경이 있다.”
─ 어느 여행자의 노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