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샤갈 – 꿈과 사랑을 그린 시인의 화폭

by 콩코드
나와 마을(1911)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 그의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먼저 떠오를까? 초록빛 얼굴의 연인이 하늘을 유영하듯 떠다니고, 염소가 웃으며 걸어 다니는 기묘한 장면, 혹은 햇빛을 머금고 반짝이는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흔히 ‘꿈의 화가’라 불린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 세계는 단순히 몽환적인 환상이나 초현실적 유희가 아니다. 그곳은 현실과 기억, 신앙과 전통, 사랑과 슬픔이 서로 뒤엉켜 빛나는 내면의 우주이다.


샤갈의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잠시 현실의 질서를 잊게 된다. 마치 동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 기묘하면서도 따뜻한 풍경 속에 스며드는 느낌이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의 화폭이 단순히 꿈의 조각이 아니라 삶의 기쁨과 고통, 사랑과 상실, 인간 존재의 본질을 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의 그림은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고, 오래된 기억과 잊고 있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사랑하기 때문이다.”
— 마르크 샤갈


샤갈은 평생 동안 사랑을 그렸고, 그 사랑을 통해 세상과 인간을 노래했다. 그의 그림은 시와 같고, 색채로 이루어진 음악과도 같다.


러시아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이야기

샤갈은 1887년 러시아 제국의 작은 마을 비테브스크(Vitebsk)에서 태어났다. 부유하지 않았지만,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유대인 공동체의 따스함 속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마을의 일상과 축제, 종교의식을 마음속 깊이 새겼다. 아버지는 청어 공장에서 하루 16시간씩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고, 어머니는 작은 잡화점을 운영하며 생계를 도왔다.


비테브스크는 겨울이면 눈으로 뒤덮이고, 여름에는 초록빛 초원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유대교의 전통과 종교의식을 지키며 공동체 속에서 살아갔다. 어린 샤갈은 그런 풍경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했다.


샤갈의 유년 시절 기억은 그의 예술 세계의 밑거름이 되었다. 염소, 닭, 말이 끄는 마차, 지붕 위에 앉은 사람들, 축제와 종교의식 등은 그의 그림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요 모티프로 남았다.


“내 모든 그림은 고향 마을에서 시작됐다. 비테브스크는 나의 영혼이며, 내 그림의 끝없는 원천이었다.”


그에게 유년의 마을은 예술의 근원이었다. 샤갈은 현실을 그대로 그리지 않았다. 그는 기억과 감정을 자유롭게 섞어 마치 꿈속의 장면처럼 화면을 구성했다. 이것이 훗날 그만의 독창적인 화풍으로 발전했다.



파리, 빛과 예술의 도시로

1907년, 스무 살이 된 샤갈은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했다. 그곳에서 미술 학교에 입학했지만, 보수적인 교육 방식은 그의 예술적 열정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는 점점 답답함을 느꼈고, 진정한 예술의 자유를 꿈꾸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1910년, 그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게 될 파리로 떠났다. 당시 파리는 인상파 이후의 새로운 흐름들이 끊임없이 태어나는 현대 미술의 중심지였다.


샤갈은 몽마르트르에서 피카소, 모딜리아니, 마티스 등 당대 거장들의 작품을 접하며 강렬한 자극을 받았다. 입체파의 실험적 구도, 야수파의 과감한 색채는 그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샤갈은 그들의 스타일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았다. 대신 고향의 기억과 파리에서의 새로운 감각을 융합하여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해 갔다.


꿈의 논리, 〈나와 마을〉

샤갈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가 바로 〈나와 마을〉(1911)이다.

이 작품은 그의 예술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화면에는 초록빛 얼굴을 한 인물, 미소 짓는 염소, 거꾸로 서 있는 여인, 기하학적으로 분할된 마을 풍경이 한데 뒤섞여 있다. 현실에서는 함께 있을 수 없는 요소들이, 그의 화폭에서는 마치 꿈속의 장면처럼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나와 마을〉에는 샤갈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린 시절 비테브스크의 기억, 파리에서의 새로운 경험, 유대인으로서의 전통이 한 화면 속에서 자유롭게 흐른다.

작품의 제목처럼 ‘나’와 ‘마을’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그의 예술적 뿌리와 자아의 통합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샤갈을 단숨에 미술계의 주목받는 신예 화가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서 현실을 넘어서는 시적 감성, 그리고 강렬한 색채의 힘을 발견했다.


위에서 아래로 에펠탑의 신랑신부, 도시 위에서, 산책, 그리고 샤갈과 벨라

사랑, 그 위대한 주제


샤갈의 그림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는 사랑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의 아내이자 평생의 뮤즈였던 벨라 로젠펠트(Bella Rosenfeld)가 있다.


1909년, 비테브스크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벨라는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지만, 샤갈의 순수한 열정과 예술적 영혼에 이끌렸다. 샤갈은 그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녀가 나타난 순간, 내 세상은 빛으로 가득 찼다.
모든 색채가 새롭게 깨어나는 것 같았다.”


1915년 두 사람은 결혼했고, 그들의 사랑은 그의 그림 속에서 찬란하게 빛났다.

그중에서도 〈생일〉(Birthday)은 두 사람의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면 속에서 샤갈은 공중으로 몸을 기울여 벨라에게 입맞춤을 하려 한다. 현실의 방 안에는 테이블과 꽃, 창문이 있지만, 두 사람은 중력을 거스르듯 떠오른다. 사랑이 현실의 법칙을 초월하게 만드는 힘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벨라는 이후에도 그의 작품에 끊임없이 등장하며, 하늘을 나는 연인, 서로를 끌어안는 인물들로 변주된다.

샤갈에게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었다.


혁명과 전쟁, 그리고 상실

샤갈의 삶은 격동의 역사와 함께 흐른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미술학교를 세우고 혁명 정부의 문화 활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정치적 갈등과 예술계의 분열로 인해 그는 곧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유럽에서 활동하던 샤갈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유대인으로서 나치의 박해를 피해 1941년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그러나 그곳에서 더 큰 비극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1944년, 사랑하는 아내 벨라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샤갈은 그녀를 잃은 충격에 한동안 붓을 들지 못했다. 그의 작품 속에서 밝게 빛나던 사랑은 이제 깊은 그리움과 상실의 색으로 변해갔다.

그럼에도 그는 평생 벨라를 그리며, 그녀의 존재를 화폭 속에 영원히 간직했다.


색채의 시인 – 빛으로 노래하는 화가

마르크 샤갈은 흔히 ‘색채의 시인’이라 불린다. 그의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형태보다 색채의 울림이다.

그의 색은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의 언어였다.

샤갈의 그림 속에서 색은 이야기하고, 노래하며, 살아 숨 쉰다.


그가 사용한 색채에는 특별한 질서가 있었다.

초록빛 얼굴은 단순히 기괴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과 사랑, 그리고 부활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붉은색은 피와 열정, 때로는 고통과 희생을 상징했다.

파란색은 깊고 영원한 하늘처럼 평화와 내면의 고요를 나타냈으며,

노란색은 태양의 빛처럼 희망과 신성함을 담아냈다.


예를 들어, 〈나와 마을〉(1911)을 보면 초록빛 얼굴의 인물과 붉은색의 기하학적 마을 풍경이 강렬하게 대비된다.

이는 단순한 실험적 색채가 아니라, 샤갈의 내면에 존재하는 생명과 갈등, 희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의 색채는 세상의 어두움을 부정하거나 감추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빛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샤갈은 색채를 통해 현실의 논리를 뛰어넘는 감정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의 그림에서 파란 하늘 속을 나는 연인은 현실 속에서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사랑과 자유의 상태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을 보는 이들은 작품 속 세계를 꿈이라고 여기면서도, 동시에 그 꿈이 자신의 마음속에 실재함을 느끼게 된다.


미국 뉴욕 유엔 빌딩의 평화의 창 1964, 체체스터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 1978

빛과 색의 결합 – 스테인드글라스 작업

1950년대 이후 샤갈은 캔버스를 넘어 빛과 색이 하나가 되는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유리 조각에 색을 입혀, 빛이 투과할 때 완성되는 예술을 시도했다.

프랑스 메츠 성당, 스위스 취리히의 성모 마리아 성당, 그리고 예루살렘 하다사 병원의 창문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은 종교적 공간을 새롭게 빛으로 물들였다.


특히 예루살렘 하다사 병원의 열두 개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주제로 하여,

각 지파의 이야기를 샤갈 특유의 색채와 상징으로 표현했다.

빛을 머금은 유리는 시간에 따라 색을 달리하며, 마치 샤갈의 시가 공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샤갈은 이렇게 말했다.


“색채와 빛은 나의 언어이며,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만나는 가장 순수한 방식이다.”


그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빛으로 쓰인 시였으며,

인류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기를 바라는 그의 간절한 기도가 담겨 있었다.


하늘을 나는 사람들 – 중력을 거스르는 사랑

샤갈의 작품 속 인물들은 자주 하늘을 날거나 공중에 떠 있다.

연인이 손을 잡고 도시 위를 유영하고, 마을 사람들은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자유롭게 떠다닌다.

이 초현실적인 장면은 단순히 기발한 상상력이 아니다.


그에게 비행은 인간 영혼의 해방을 의미했다.

사람은 누구나 현실의 중력, 즉 사회적 억압, 역사적 비극, 개인의 한계에 묶여 살아간다.

그러나 사랑과 예술은 그 중력을 순간적으로 무력화시킨다.

샤갈은 그 순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인물들을 하늘로 띄워 올렸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도시 위에서〉(Over the Town, 1918)이다.

샤갈과 아내 벨라는 고향 비테브스크의 마을 위를 손을 맞잡고 함께 날아오른다.

이 작품은 단순히 연인들의 행복한 순간을 그린 데 그치지 않았다.

혁명과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두 사람의 사랑이 현실을 초월하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상징한다.


또 다른 대표작인 〈생일〉(Birthday, 1915)에서는 샤갈이 벨라에게 입맞춤을 하기 위해 공중으로 몸을 기울인다.

이 장면은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사랑의 힘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방 안의 테이블과 꽃, 창문은 현실적인 공간이지만,

연인의 몸짓은 현실을 초월해 순수한 감정의 영역으로 날아간다.


샤갈의 하늘 나는 인물들은 모든 인간이 꿈꾸는 자유의 은유이다.

그의 그림을 보는 관람자들은 잠시 중력을 잊고,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숨겨둔 꿈과 열망을 떠올리게 된다.



후기와 영광 – 색채로 완성한 교향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샤갈은 다시 유럽으로 돌아왔다.

그는 파리와 니스를 오가며 작업을 이어갔고, 전쟁과 상실의 시대를 지나 빛과 희망의 작품들을 만들어갔다.


1964년, 그는 프랑스 파리의 오페라 극장 천장화를 완성했다.

이 작업은 프랑스 정부의 의뢰로 이루어졌는데, 당시 일부 비평가들은 외국인 화가에게 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긴 것을 비판했다.

그러나 완성된 천장화는 모든 논란을 잠재웠다.


샤갈의 천장화는 프랑스의 음악가와 작곡가들—모차르트, 베토벤, 드뷔시 등—을 주제로 하여,

화려한 색채와 유려한 선으로 표현되었다.

관람객들은 오페라 공연을 보기 위해 극장에 들어서면서,

천장에 펼쳐진 거대한 색채의 교향시를 마주하게 된다.

마치 음악이 시각적으로 변주되어 눈앞에 흐르는 듯한 경험을 제공했다.


그의 작업은 이후 더욱 확장되어, 스테인드글라스, 모자이크, 대형 벽화 등 다양한 장르로 이어졌다.

샤갈은 말년에 이르러서도 붓을 놓지 않았으며, 그의 작품은 세계 곳곳에서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다.


1985년, 그는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샤갈이 남긴 작품은 수천 점에 이르며,

그의 이름은 20세기 미술사의 가장 빛나는 별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샤갈의 상징들 – 꿈을 구성하는 언어

샤갈의 그림 속에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개인적 상징들이 있다.

이 상징들은 단순히 장식적 요소가 아니라, 그의 기억과 삶, 그리고 인간 보편의 경험을 담은 시적 언어였다.


염소와 닭

유대교의 희생 제의를 상징하며, 동시에 고향 마을의 일상적인 풍경을 나타낸다.

특히 웃는 염소는 생명력과 풍요, 그리고 순수한 기쁨을 상징한다.


공중에 뜬 연인

사랑의 초월성과 인간 영혼의 자유를 나타낸다.

샤갈에게 연인의 비행은 현실을 넘어서는 사랑의 힘을 의미했다.


십자가

유대인으로서 겪은 박해와 고통, 그리고 인류 전체의 구원에 대한 염원을 상징한다.

샤갈은 종교적 경계를 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고통을 시각화하고자 했다.


마을 풍경

유년 시절 비테브스크의 기억을 담은 가장 개인적인 상징이다.

그의 그림 속 마을은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기억과 꿈이 뒤섞인 내면의 풍경이다.


이러한 상징들은 그의 그림을 하나의 개인적 신화로 만들었다.

관람자는 그림 속 상징을 해석하며,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투영하게 된다.


샤갈의 메시지 – 사랑으로 완성되는 예술

샤갈의 작품은 단순한 초현실적 유희가 아니다.

그의 그림은 전쟁과 박해, 사랑과 상실, 희망과 기억을 모두 품고 있다.

그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인간의 상상력과 사랑의 힘을 끝없이 믿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한 편의 시를 읽거나 음악을 듣는 듯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샤갈은 자신을 ‘화가’라기보다, 색채로 시를 쓰는 시인으로 여기며 이렇게 말했다.


“삶은 단 한 번뿐이다. 그러나 사랑은 그 삶을 영원하게 만든다.”


그의 화폭 속에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는 힘이었다.

샤갈은 자신의 유년의 기억, 고통스러운 역사의 경험, 그리고 아내 벨라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그림 속에 담았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개인의 기록을 넘어, 모든 인간에게 통하는 보편적 언어가 되었다.


샤갈의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현실의 질서를 잠시 잊고

자신의 기억과 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예술이란 결국 인간의 마음속에 남은 사랑의 흔적을 비추는 거울임을.



keyword
이전 23화에드가 드가: 움직임을 그린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