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책과 사람 15화

한 권의 책과 책 사냥꾼의 대역사

1417년, 근대의 탄생

by 안녕 콩코드

​단 하나의 책, 천 년의 터널을 깨다

​우리가 사는 시대를 흔히 '근대(Modernity)'라 부릅니다. 이 근대가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묻는다면, 많은 사람이 종교개혁, 르네상스 미술, 또는 계몽주의 사상을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하버드 대학의 석학 스티븐 그린블랫은 아주 뜻밖의 대답을 내놓습니다. 그린블랫에게 근대의 시작은 바로 1417년의 어느 겨울날, 독일의 춥고 외딴 수도원 서가에서였습니다.


​그린블랫의 책 《1417년, 근대의 탄생》은 '근대의 탄생'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마치 첩보 영화처럼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펼쳐냅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은 단 두 명입니다. 한 명은 15세기 이탈리아의 필사가이자 지식인, 그리고 열정적인 '책 사냥꾼'이었던 포조 브라촐리니(Poggio Bracciolini)이고, 다른 한 명은 그가 찾아낸, 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고대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철학 서사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입니다.


​어떻게 낡은 필사본 한 권이 서양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놓을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그 책에 담긴 사상이 당시의 지배적인 세계관, 즉 중세 기독교 철학에 근본적인 '독약'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신의 섭리 대신 원자(Atom)들의 무작위적인 충돌로 우주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내세의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삶의 목적은 고통을 피하고 지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두었던 중세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불온한 사상'이자 '이단'이었습니다. 포조는 이 위험천만한 사상을 세상 밖으로 다시 꺼내 놓았고, 이 불씨는 이내 걷잡을 수 없는 들불이 되어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유럽을 뒤덮었습니다. 그린블랫은 이 드라마틱한 발견과 그 여파를 추적하며,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근대적 사고방식'이 1417년, 포조의 손에 들린 그 책 한 권에서 시작되었다고 역설합니다.


​자, 이제 시간을 거슬러 15세기 유럽의 혼란 속으로 들어가, 위대한 책 사냥꾼 포조의 발자취를 따라가 봅시다. 이 여정이야말로 근대의 문이 열리는 짜릿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


포조가 1447년 쓴 도덕논고 <운명의 가변성에 관하여>의 15세기 필사본에 삽화로 표현된 그의 초상. 바티칸 도서관 소장, 위키데이터. 한겨레.

​책 사냥꾼의 드라마: 포조 브라촐리니의 시대

1. 중세의 종말, 혼란 속에서 태어난 열망

​15세기 초 유럽은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신앙의 시대였던 중세는 그 중심축인 교황청이 무너지는 중이었죠. 1417년 무렵, 교황이 무려 세 명이나 존재하며 서로 자신이 정통이라고 싸우는 '서방 대분열'의 시대였습니다. 이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콘스탄츠 공의회가 열렸고, 유럽의 지식인들은 이 거대한 정치 드라마에 휘말렸습니다.


​이 혼돈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지적 욕구를 낳았습니다. 기존의 질서와 권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자, 사람들은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진리와 지혜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눈을 돌린 곳은 바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유산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한 젊은이가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 포조 브라촐리니입니다.


​2. 교황의 오른팔, 그리고 문화 혁신가

​포조는 이탈리아 시골의 평범한 가문 출신이었지만, 당대 최고의 필사 기술과 뛰어난 지성을 겸비했습니다. 그의 직업은 교황청의 고위 관료이자 비서였는데, 이는 단순히 글씨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교황의 생각과 명령을 대변하는 핵심적인 위치였습니다.


포조는 단순한 필사가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필체는 고대 로마 서체를 기반으로 재창조된 것으로, 그 자체로 근대적 서체의 혁신이었습니다. 그의 필체는 이후 인쇄술이 등장했을 때 유럽 인쇄물의 기본 서체로 자리 잡으며, 글자의 형태만으로도 이미 '근대적 글쓰기 스타일'로 추앙받았습니다.


​그러나 교황 분열의 격랑 속에서 포조가 모시던 교황 요한 23세가 결국 폐위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포조에게 이 시기는 오히려 인생의 새로운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는 교황청을 떠나 유럽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일, 즉 '책 사냥'에 나섭니다.


​3. '책 사냥'의 절박함: 사라져가는 지혜를 구하라

​당시 고대 문헌을 찾는 일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사라져가는 인류의 지적 유산을 구출하는 절박한 미션이었습니다. 중세 천 년 동안 수많은 고전이 유실되었는데, 그 이유는 처참했습니다. 전쟁과 화재는 물론이고, 재활용의 비극이 가장 컸습니다. 양피지는 엄청나게 비쌌기 때문에, 교회의 필사가들은 새로운 기독교 문헌을 쓰기 위해 기존의 고전 위에 덧쓰거나(이를 팔림프세스트라 부릅니다) 긁어내서 재활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특히 기독교 교리에 반하는 내용이 담긴 책은 아예 파기되거나, 외딴 수도원의 깊숙한 서고에 봉인되었습니다.


​포조는 자신의 뛰어난 고전 지식과 필사가로서의 안목, 그리고 교황청 비서 시절 다져놓은 넓은 인맥을 총동원하여, 인적이 드문 유럽 북부의 수도원들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지혜의 씨앗이 완전히 멸종하기 전에 그 마지막 불씨를 구출하려는 탐험가이자 구원자였습니다.


4. 운명의 해, 1417년의 발견

​포조의 간절한 탐색은 마침내 1417년 1월에 결실을 맺었습니다. 남부 독일의 베네딕투스회 수도원 서가, 먼지가 수북이 쌓인 깊은 곳에서 포조는 낡은 양피지 꾸러미를 발견합니다.


​그 순간의 짜릿함은 그린블랫의 묘사를 통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잊혀 있던, 곰팡이 냄새 가득한 서고에서 포조가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거의 온전한 필사본이었습니다. 이 책은 수많은 고전들이 사라지는 와중에도 기적처럼 천 년의 세월을 견뎌냈습니다.


​포조는 이 책의 가치를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고전이 아니라, 중세의 정신적 질서를 뒤흔들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위험한 폭탄'이었습니다. 필사본을 발견한 포조는 즉시 자신의 손으로 이를 베껴 썼고, 이 새로운 지혜의 복사본은 고대 세계와 르네상스 시대를 잇는 가교가 되어, 지식인 사회로 조용히, 그러나 격렬하게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교황 식스토 4세를 위해 지롤라모 디 마테오가 필사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1483) * 출처: 채널예스

금지된 철학의 귀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해부하다

​잊혀야 했던 철학: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

​포조가 발견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기원전 1세기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사상을 웅장하고 아름다운 서사시 형태로 풀어낸 역작입니다. 이들의 가르침은 중세 기독교 세계관의 세 가지 핵심 기둥을 모두 흔들었기 때문에, 천 년 동안 '악마의 사상'으로 낙인찍혀 철저히 배제되었습니다.


​첫 번째 충격: 신의 설계 대신 '원자론과 일탈'

​중세의 우주관은 신이 창조하고 질서정연하게 설계한 세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루크레티우스는 이에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영원한 것은 원자뿐

루크레티우스는 "이 세상에는 원자와 진공(void)이 있을 뿐이다. 원자와 진공, 오직 원자와 진공.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단언했습니다. 인간의 몸도, 영혼까지도 원자들이 일시적으로 결합한 구조일 뿐이며, 언젠가는 분해되어 흩어질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신의 부재

이 우주는 신의 지적인 설계가 아니라, 이 무수한 원자들이 무작위적으로 충돌하고 결합하면서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루크레티우스는 창조주 없이 우주가 스스로 움직인다는 관점을 통해 신의 절대적 권위를 근본부터 무너뜨렸습니다.


​운명적 '일탈(Clinamen)'

루크레티우스는 원자들이 예측 불가능하게 아주 조금씩 경로를 이탈하는 현상, 즉 '일탈(Clinamen)'이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미세한 이탈은 모든 것이 신의 계획 아래 있다는 중세의 엄격한 결정론에 반기를 든 것으로, 인간의 자유 의지와 우연성이 시작되는 '근대의 씨앗'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원자론적 세계관은 이후 과학 혁명의 아버지들에게 영감을 주며 근대 과학 정신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두 번째 충격: 사후세계 부정과 '죽음의 극복'

​중세 교회가 사람들을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바로 '사후세계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중세인의 삶을 지배했죠.


​루크레티우스는 이 공포를 단숨에 걷어냈습니다. 그는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모두 감각에 달려 있지만, 죽음은 감각의 상실이기 때문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의 관점에서 영혼 역시 원자들의 조합이므로 육체가 죽으면 영혼도 원자로 분해되어 사라집니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고통도, 보상도 있을 수 없습니다.


​루크레티우스는 사람들에게 "우리를 공포 속에 떨게 하는 설교자들은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사후세계에 대한 헛된 환상이나 공포에 떨지 말고, 현재의 삶에 충실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 메시지는 중세의 어둠 속에서 현세적인 삶의 가치와 인간 해방이라는 횃불을 밝힌 것과 같았습니다.


세 번째 충격: 쾌락의 옹호와 '지적인 성찰'

​에피쿠로스 학파는 '방탕한 삶'을 추구한다는 오해를 받았지만, 그들이 말한 '쾌락'은 육체적인 방종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고통과 불안이 없는 '마음의 평온(아타락시아, Ataraxia)'이었습니다.


​진정한 쾌락

루크레티우스는 미덕과 쾌락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얽혀 있다고 보았습니다. 지식의 탐구, 친구와의 우정, 사물의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 등 지적인 활동이야말로 가장 깊고 고귀한 쾌락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종교적 압박으로부터의 해방

루크레티우스는 종교적 광신을 인간을 비천하게 만드는 '무거운 짐'으로 보았습니다. "종교는 발 앞에 던져진 채 짓밟히고, 승리는 우리를 하늘과 대등하게 하도다."라고 외친 그의 메시지는, 인간이 신에게 복종할 필요 없이 스스로의 이성으로 세상에 맞설 수 있다는 현세적인 삶의 긍정을 역설했습니다.


​중세의 끈질긴 저항과 책의 생존

​포조는 이 위험한 책을 발견하자마자 필사했고, 니콜리 같은 동료 인문주의자들에게 이 사상을 전파했습니다. 하지만 중세의 억압적인 체제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여전히 금서였고, 이 책의 영향으로 새로운 사상을 펼치려던 이들은 종교 재판의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르네상스의 꽃을 피웠지만, 그 그림자 속에서는 여전히 교회의 감시와 싸우며 조용히 퍼져나가야 했습니다.


근대라는 '일탈': 한 권의 책이 바꾼 세계사

​르네상스의 정신적 토양: 인간 해방의 횃불

​포조가 발견한 루크레티우스의 책은 중세의 고정관념에 갇혀 있던 지식인들에게 고대 지혜의 보고를 열어주는 열쇠와 같았습니다. 이 책은 유럽을 휩쓴 거대한 문화 운동인 르네상스(Renaissance)가 단순한 '고전의 부활'을 넘어, '인간 중심 사상'으로 나아가게 만든 핵심적인 정신적 토양이 되었습니다.


​루크레티우스의 사상, 즉 "우주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니 현세의 쾌락을 추구하라"는 메시지는 현세적인 삶과 인간의 잠재력을 긍정하는 새로운 태도를 확산시켰습니다.


​붓 끝에 스며든 원자론: 예술과 아름다움의 해방

​루크레티우스의 시적인 언어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창작 정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산드로 보티첼리와 비너스

르네상스 미술의 정수인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생각해 봅시다. 나체의 미를 찬양하고, 미의 여신을 세상 만물의 창조적 에너지로 해석하는 관점은 루크레티우스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서문에서 비너스(베누스)를 생명의 근원으로 묘사한 부분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중세의 금욕주의를 벗어난 현세적 아름다움과 관능미를 표현한 것입니다.


출처: 뉴스로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다 빈치가 인체를 해부하고 자연 현상을 집요하게 탐구한 태도 역시 루크레티우스가 주장한 '사물의 본성을 직접 탐구하여 이해하려는' 정신과 일치합니다. 그는 신비주의적 해석 대신, 인체와 자연을 원리로 작동하는 '기계'로 보았습니다.


​루크레티우스의 책은 예술가들에게 '인간의 몸과 감각은 숭고한 것이며, 세계는 이해 가능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확신을 주었고, 이는 예술의 주제와 범위를 해방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일탈'의 완성: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로의 연결

​포조가 발견한 책은 르네상스에 머물지 않고, 유럽 사상의 거대한 흐름을 근대로 밀어붙이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과학 혁명의 씨앗

루크레티우스의 원자론적 세계관은 이후 갈릴레오 갈릴레이나 아이작 뉴턴 등 과학자들에게 중요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우주가 신의 계획이 아니라 물질 원리로 움직인다는 생각은 과학자들이 우주를 수학과 물리학의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근대 과학 정신의 태동이었습니다.


​계몽주의의 자유 사상

17~18세기를 지배한 계몽주의는 루크레티우스의 철학을 정치와 사회 영역으로 확장했습니다. 특히 에피쿠로스의 '현세적 쾌락 추구' 사상은 토머스 제퍼슨이 작성한 미국 독립선언서에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 추구"라는 문구로 깊숙이 스며들며 근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가 되었습니다.


​근대적 사유의 승리

​그린블랫의 이 책은 결국 근대라는 거대한 시대정신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천 년 동안 억압되어 온 하나의 사상이 극적인 순간에 재발견되어 인간의 잠재력을 폭발시키면서 탄생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루크레티우스의 '일탈(Clinamen)' 개념처럼, 포조의 발견은 역사 속에서 일어난 예측 불가능한 우연이자, 새로운 사유가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고 튀어나온 '근본적인 일탈'이었습니다. 이 작은 일탈이 르네상스, 과학 혁명, 계몽주의를 만들며, 오늘날 우리가 사는 합리적이고 현세적인 근대 세계를 열어젖힌 것입니다.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 될 '사물의 본성'

근대적 사유의 소중한 유산

​​스티븐 그린블랫의 《1417년, 근대의 탄생》은 '근대'라는 거대한 시대가 어떻게 단 하나의 책과 한 사람의 열정적인 노력으로 시작되었는지 보여주는 짜릿한 보고서입니다. 이 책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을 넘어, 생동하는 지적 드라마 그 자체입니다. 그것은 사상의 힘, 즉 '생각의 부활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영원한 진리를 증명해 보입니다.


​포조 브라촐리니가 낡은 수도원에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발견한 그 순간, 중세의 정신적 암흑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습니다. 신의 엄격한 섭리 대신 이성과 원자의 움직임을 믿고, 내세의 공포 대신 현세의 아름다움과 지적인 쾌락을 추구하라는 루크레티우스의 메시지는 인류를 천 년의 정신적 감옥에서 해방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의 시대에도 '책 사냥꾼'이 필요하다

​우리가 현재 누리는 과학적 합리성, 인간의 존엄성, 자유로운 행복 추구의 권리 등은 모두 이 '금지된 사상'의 재발견에서 비롯된 소중한 유산입니다.


​그린블랫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현재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중세적' 통념이나 맹신은 없을까요? 우리는 우리의 지성을 억압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또 다른 금서'를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포조처럼 먼지 쌓인 지식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려는 '책 사냥꾼'의 정신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루크레티우스가 "정신의 이 두려움과 어둠을... 자연의 모습과 그것의 이치가 떨쳐버려야 한다"고 외쳤듯이, 세상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은 언제나 사물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려는 용기와, 그 진리를 찾아 기록하고 전파하려는 열망에서 나옵니다. 지혜의 불씨는 한 순간의 발견으로 다시 타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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