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프랭코판의 《실크로드의 세계사》가 뒤집은 1,000년 역사 지도
'변방의 유럽'을 넘어 '가운데 땅'의 심장 소리에 귀 기울여라
"세계의 중심은 뉴욕도, 런던도, 심지어 베이징도 아니었다. 인류 역사의 심장은 수천 년 동안, 바로 그 가운데 땅(The Middle)에서 뛰고 있었다."
잠시 눈을 감고 '세계사'를 떠올려 보세요. 아마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로마 제국의 웅장한 콜로세움, 나일강 유역의 피라미드, 그리스 철학자들의 토론 광장, 그리고 뒤이어 대항해시대를 열어젖힌 유럽의 함선들이 펼쳐질 겁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서구, 즉 '지중해'와 '대서양'을 중심으로 펼쳐진 역사를 세계사의 전부라고 믿도록 교육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잠시 당신의 세계 지도를 펴놓고, 유럽 대륙이 차지하는 공간이 얼마나 작은지 확인해 보세요. 그리고 서유럽이라는 변방의 땅을 지나, 동쪽으로, 동쪽으로 시선을 옮겨보세요. 당신이 익숙하게 알고 있던 세계사의 무대, 그 중심축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도발적인 주장이 이 책의 시작입니다.
피터 프랭코판의 《실크로드의 세계사(The Silk Roads: A New History of the World)》는 우리에게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조명되지 않았던 진짜 세계의 심장부를 보여줍니다. 역사가 수천 년 동안 이어진 '무대'는 그리스-로마-서유럽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한때 번성했으나, 실크로드라는 거대한 길 위에 놓인 수많은 왕국과 제국들 입장에서는 그저 교역로의 가장 먼 변방에 불과했습니다.
프랭코판은 말합니다. 세계사를 움직인 진짜 동력, 진짜 부, 진짜 지식, 그리고 때로는 가장 치명적인 위협은 모두 서쪽이 아닌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갔다고.
가장 값비싼 비단과 향신료, 혁신적인 기술은 중국과 인도에서 출발했습니다.
세계를 바꾼 종교(기독교, 불교, 이슬람)는 중앙아시아를 가로지르며 인류의 정신을 지배했습니다.
서구 문명의 뼈대를 뒤흔든 재앙인 흑사병(페스트)조차도, 바로 이 실크로드를 따라 유럽을 덮쳤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실크로드'라는 특정 교역로의 역사를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중앙아시아와 중동이라는 광대한 '가운데 땅'을 중심으로 재편성된, 인류 역사의 새로운 지도입니다.
프랭코판의 붓끝은 독자들을 수천 년 전, 비단으로 가득 찬 낙타들의 발자국이 선명한 길 위로 초대합니다. 이 길은 단순한 무역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부(富)의 길이자, 지식의 길이었고, 신앙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죽음과 파괴의 길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 방대한 여정 동안, 고대 페르시아 제국과 비잔티움 제국의 피 튀기는 격돌을 목격하고, 세계를 피로 물들였던 칭기즈칸의 군대가 역설적으로 동서양을 이어 붙인 순간을 바라볼 것입니다. 그리고 21세기에 다시금 이 '가운데 땅'을 차지하려는 초강대국들의 첨예한 대립까지 따라갈 것입니다.
자, 이제 익숙했던 '유럽 중심'의 지도는 잠시 접어두십시오. 우리의 여정은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세계사의 진짜 심장이 뛰었던 곳, 모든 것이 시작되고 모든 것이 충돌했던 길, 실크로드를 따라 떠나봅시다.
실크로드는 욕망의 길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정점에는 '비단(Silk)'이 있었습니다. 서기 1세기, 로마 황제의 아내와 귀족 여성들이 비단을 두르는 것은 최고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로마 원로원은 비단이 로마의 금화를 동방으로 빨아들이는 '사치품'이라며 비난했지만, 귀족들의 욕망은 멈추지 않았죠. 중국에서 시작된 이 신비로운 직물은 중앙아시아의 수많은 중개상(주로 페르시아인)을 거쳐 수많은 관세와 폭리를 짊어지고서야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프랭코판이 보여주는 초기 실크로드의 모습은 '머니 로드(Money Road)' 그 자체였습니다.
동방의 황금 흡수: 로마는 비단을 사들이기 위해 막대한 양의 금화를 동쪽으로 보냈습니다. 이는 로마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으며, 역설적으로 동방의 사산조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왕국들은 이 부를 바탕으로 거대한 권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교역의 지정학: 이 '비단 교역'은 단순한 장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곧 정보의 흐름이자, 외교적 영향력이었습니다. 동서양의 거대 제국들은 이 교역로를 누가 장악하느냐에 따라 패권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 때문에 페르시아는 늘 서쪽의 로마/비잔티움과 피할 수 없는 전쟁을 치렀습니다. 세계사의 중심은 지중해가 아닌, 메소포타미아와 중앙아시아의 국경에서 쓰여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단보다 더 값진 것이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했습니다. 바로 인류의 정신을 지배한 '신앙'이었습니다. 프랭코판은 실크로드를 '신앙의 길(The Roads of Faith)'로 정의하며, 종교의 전파가 어떻게 경제적, 정치적 흐름을 바꾸었는지 설명합니다.
불교의 대이동: 실크로드의 동쪽 구간은 인도의 불교가 중국으로 퍼져 나가는 통로였습니다. 수많은 승려와 학자들이 목숨을 걸고 이 길을 걸으며 경전을 번역했고, 그 과정에서 문화와 예술이 융합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중앙 진출: 서양 중심의 역사관은 기독교가 유럽에서만 번성했다고 가르치지만, 실제로는 기독교의 여러 분파(특히 네스토리우스파)가 실크로드를 따라 페르시아를 넘어 중국의 서안(장안)까지 진출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종교인이 아니라, 의술과 문명을 전파하는 중요한 문화 전달자였습니다.
이슬람의 폭발적 등장: 7세기 이후, 이슬람의 등장은 실크로드의 역사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습니다. 이슬람 세력은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비잔티움과 중앙아시아를 장악하며 거대한 이슬람 제국(칼리프)을 건설했습니다. 이들은 실크로드의 거의 모든 구간을 직접 통제하며, 고대 그리스-로마와 동방의 지식을 결합하여 중세 문명을 꽃피웠습니다. 이슬람의 확산은 단순히 종교 전파가 아닌, 역대급의 상업 및 지식 네트워크의 형성을 의미했습니다.
이 가운데 땅은 수많은 종교가 충돌하고, 융합하고, 경쟁하는 '영혼의 용광로'였습니다.
실크로드는 부와 신앙뿐 아니라, 인류에게 가장 치명적인 재앙까지 실어 날랐습니다. 프랭코판의 책이 가장 소름 끼치게 다가오는 지점 중 하나는, 바로 '죽음과 파괴의 길(The Roads of Death and Destruction)'에 대한 서술입니다.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초원 지대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페스트(Plague)는 교역로를 따라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6세기): 로마 제국(비잔티움)을 휩쓸었던 이 첫 번째 대역병은 제국의 전성기를 꺾어 놓았습니다. 농업 노동력이 사라지고, 도시 기능이 마비되면서, 비잔티움은 서방 영토를 상당 부분 잃고 약해졌습니다.
흑사병 (14세기): 우리가 흔히 아는 유럽 중세 인구의 1/3을 앗아간 흑사병 역시 실크로드의 이동을 타고 서쪽으로 전파된 결과였습니다.
프랭코판은 이 역병을 통해 역사가 서쪽이 아닌 동쪽에서 움직였음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서유럽의 중세 봉건제도는 수백 년간 지속된 듯 보이지만, 실크로드를 통해 건너온 보이지 않는 적(세균) 하나에 의해 불과 몇 년 만에 근본부터 뒤흔들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실크로드는 단순한 경제 활동을 넘어선, 인류 문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던 통로였습니다. 고대 페르시아와 로마/비잔티움이 피 흘리며 싸웠던 것은 바로 이 '가운데 땅'을 지배하기 위함이었고, 그 위를 걸어간 종교와 역병은 서유럽의 운명을 결정했습니다.
13세기, 실크로드는 다시 한번 충격적인 격변을 맞이합니다. 바로 초원의 작은 부족장이었던 테무진, 훗날의 칭기즈칸(Genghis Khan)의 등장입니다. 서유럽의 역사책에서 몽골은 잔인한 약탈자로 기록되지만, 프랭코판의 관점에서 몽골 제국은 실크로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몽골의 정복 활동은 엄청난 파괴를 수반했습니다. 부하라, 사마르칸트 등 중앙아시아의 찬란했던 도시들이 잿더미가 되었고, 수많은 사람이 학살당했습니다. 그러나 이 야만적인 폭력의 결과는 역설적이게도 실크로드의 재통합을 가져왔습니다.
팍스 몽골리카 (Pax Mongolica): 몽골의 지배 하에,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은 사실상 하나의 제국으로 묶였습니다. 군사적 통제 덕분에 교역로의 안전이 극도로 확보되었고, 상인들은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안전하게 동서를 오갈 수 있었습니다.
지식과 기술의 대이동: 화약, 인쇄술, 나침반 등 중국의 첨단 기술과 지식이 몽골 제국을 통해 서쪽으로 빠르게 전파되었습니다. 이처럼 몽골은 '야만적 파괴'를 통해 '문명적 통합'이라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 시기, 베네치아 상인 마르코 폴로(Marco Polo)가 실크로드를 따라 쿠빌라이 칸의 궁궐까지 갔다가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전적으로 몽골이 제공한 '단 하나의 길(The One Road)' 덕분이었습니다.
몽골 제국의 황금기는 짧았지만, 이 시기에 서방 세계는 동방의 압도적인 부(富)와 생산력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이 책은 '황금의 길(The Roads of Gold)'을 조명하며, 중세 말 서유럽이 얼마나 가난하고 변방이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유럽의 금 부족: 당시 유럽은 몽골 제국을 방문한 여행자들이 가져온 막대한 양의 정보에 흥분했지만, 이 물품을 사들일 '금(Gold)'이 부족했습니다. 유럽은 여전히 실크로드 교역에서 만성적인 무역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성장: 몽골 제국의 붕괴 후, 이슬람 왕조 중 하나였던 오스만 제국이 실크로드의 서쪽 끝, 특히 지중해 교역을 장악했습니다. 이들은 유럽으로 들어가는 교역로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며 엄청난 부를 쌓았습니다. 바로 이 압박이 유럽에게 '새로운 길'을 찾도록 만든 결정적인 동기가 됩니다.
오스만의 압력은 서유럽에게 '실크로드를 우회할 길'을 찾도록 강제했고, 그 결과가 바로 15세기 말 콜럼버스 등이 나섰던 대항해시대입니다. 프랭코판은 이 대항해시대의 동기를 유럽 중심의 '발견과 탐험'이 아닌, '동방으로 가는 돈줄을 되찾으려는 절박한 경제적 몸부림'으로 해석합니다.
이 역전 현상은 '은의 길(The Roads of Silver)'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아메리카의 은: 콜럼버스의 항해로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었고, 스페인 등 유럽 열강은 볼리비아 포토시 등지에서 막대한 양의 은(Silver)을 채굴했습니다.
실크로드의 귀환: 이 은은 유럽을 잠시 부유하게 만들었지만, 결국 궁극적인 목적지인 동방(중국, 인도)으로 흘러들어 갔습니다. 중국은 은본위제를 채택하고 있었고, 유럽은 여전히 동방의 차, 도자기, 향신료 등을 사기 위해 이 은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대항해시대조차도 실크로드를 무력화시키지 못했습니다. 단지 '은(銀)'이라는 새로운 화폐를 실크로드에 공급하여, 동방의 부를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세계사의 축은 여전히 '가운데 땅'과 그 너머에 놓여 있었습니다.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 이후, 실크로드가 잠시 세계사의 주연 자리에서 밀려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말, 이 '가운데 땅'이 가진 새로운 보물이 발견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바로 석유(Petroleum)입니다.
석유는 단순히 연료가 아니었습니다. 20세기를 움직이는 '문명의 피'이자 '지정학적 무기'였습니다. 프랭코판은 이 시점부터 실크로드를 '석유의 길(The Roads of Oil)'로 새롭게 정의합니다.
열강의 각축장: 카스피해와 중동 지역에서 엄청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발견되자,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열강들은 이 지역의 송유관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피 튀기는 경쟁을 벌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중동에서의 전투와 외교는 단순히 영토 확장을 넘어, 이 에너지의 길을 장악하려는 목적이 컸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배경: 중동 석유의 중요성은 나치 독일과 일본의 전쟁 전략에도 깊숙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곧 석유 공급의 안정성에 달려 있었으며, '가운데 땅'은 다시 한번 세계사의 가장 뜨거운 불길이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실크로드 지역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초강대국의 '냉전의 길(The Roads of Cold War)'로 변모했습니다.
이 책은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발생한 수많은 분쟁과 전쟁이 단순히 민족 간의 충돌이나 종교적 갈등이 아니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그것은 '검은 황금'과 '전략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두 거인의 그림자 전쟁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비극: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미국의 지원, 그리고 그 이후의 혼란은 전형적인 '냉전의 길'의 결과였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이 핵심 통로가 어느 진영에 속하느냐가 대륙 전체의 힘의 균형을 결정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중동의 불안정: 이란 혁명, 이라크-이란 전쟁, 걸프전 등 중동 지역의 수많은 분쟁 뒤에는 언제나 석유의 흐름을 통제하려는 서방 강대국들과, 이에 저항하거나 자원을 차지하려는 세력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습니다. 프랭코판의 시선은 중동을 '정치적 격동의 장소'가 아닌, '세계 에너지 공급의 심장'으로 해석합니다.
20세기 말 소련의 붕괴 이후, 사람들은 실크로드가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프랭코판은 단언합니다. 실크로드는 절대로 멈춘 적이 없으며, 오히려 21세기에 더 강력하게 돌아오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 증거는 바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Belt and Road Initiative, BRI)' 전략입니다.
새로운 패권의 야망: 중국이 수조 달러를 투자하여 중앙아시아와 중동, 유럽을 잇는 거대한 인프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과거 실크로드의 영광을 되찾고 '가운데 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입니다.
'초강대국 대결의 길': 현재의 실크로드는 단순한 경제 길을 넘어,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맞서려는 미국과 러시아 등 기존 강대국들과의 새로운 '초강대국 대결의 길(The Roads of Superpower Rivalry)'이 되었습니다. 경제적 협력과 동시에 군사적, 외교적 긴장이 공존하는 가장 첨예한 공간입니다.
이 책의 근현대사 파트는 실크로드가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길임을 냉철하게 증명합니다.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중동의 분쟁, 러시아-중국의 관계, 서방과의 긴장 등 모든 국제 뉴스는 이 '가운데 땅'의 재부상이라는 거대한 흐름 안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피터 프랭코판이 이끄는 대로 수천 년에 걸친 실크로드의 거대한 물줄기를 따라왔습니다. 비단이 황금과 바뀌고 신앙이 폭력과 뒤섞이며, 역병이 문명을 파괴한 그 드라마틱한 길 위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명확히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알던 '세계사'는 전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야기였으며, 그 절반은 심지어 변방의 이야기였다는 점입니다.
프랭코판의 이 장대한 여정은 우리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대전환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서유럽의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를 찬양하고 있을 때, 진짜 부와 권력은 사마르칸트와 바그다드, 그리고 서안을 잇는 이 '가운데 땅'에 있었습니다.
역사를 과거로만 치부하는 실수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습니다. 21세기, 실크로드는 다시금 세계사의 중심 무대로 돌아왔습니다. 중국과 인도의 부상, 에너지 안보의 핵심인 중동, 그리고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 이 모든 것은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계 질서의 탄생을 알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이 모든 국제 뉴스는 1,000년 전 비단과 향신료가 이동했던 그 길, 실크로드의 오늘날 모습인 것입니다.
프랭코판의 최종 결론은 명확합니다.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려면, 우리가 익숙한 '서쪽'이 아닌, 모든 것이 시작되고 모든 것이 충돌하는 '동쪽'과 '중앙'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은 이제 카스피해와 페르시아만, 그리고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의 초원으로 향해야 합니다. 그곳은 수천 년 전부터 세계의 심장이었던 곳이며, 지금 다시 그 심장이 힘차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 거대한 길의 심장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이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지적 의무일 것입니다.
특별 에피소드: 낙타 등에 실린 작은 씨앗, 인류의 運命을 바꾸다
우리가 실크로드를 '비단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러나 프랭코판이 수많은 장을 할애해 보여준 것처럼, 이 길을 통해 이동한 가장 위대한 상품은 직물이나 보석이 아니었습니다.
낙타의 등에 실린 것은 때로는 지극히 사소해 보이는 작은 씨앗이었고, 이 작은 씨앗들이 인류의 삶과 문명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지역에서 재배된 목화(Cotton)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고대부터 인도의 주요 상품이었던 목화는 비단보다 훨씬 저렴하고 실용적이었으며, 무엇보다 따뜻했습니다. 목화 재배 기술은 실크로드를 따라 중동, 그리고 이슬람 세계를 통해 유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비단이 특권층의 사치품일 때, 목화는 대중의 생활을 혁신적으로 개선한 '민주적인 직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고 부드러운 목화 씨앗은 훗날 인류에게 가장 잔인한 역사를 안기기도 합니다. 18세기 영국 산업혁명의 동력이 되었던 면직물 산업은 목화 생산을 위한 대규모 플랜테이션과 노예 노동을 필수로 했고, 이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아프리카계 노예 무역이라는 비극을 낳았습니다. 단지 옷감을 따뜻하게 만들고자 했던 욕망의 씨앗이, 지구 반대편의 수많은 사람을 족쇄에 묶어버린 것입니다.
또한,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양을 오간 것은 농작물의 씨앗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지식의 씨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라비아 상인들이 중국에서 서쪽으로 전한 '종이 제조 기술'은 중세 유럽의 수도원에서 지식을 필사하던 전통을 끝내고 인쇄 혁명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만약 실크로드 상인들이 이 종이 기술을 전하지 않았다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도, 그리고 르네상스 시기의 지식 폭발도 불가능했을지 모릅니다.
프랭코판의 책을 덮을 때, 우리는 깨닫습니다. 실크로드는 그저 상인들이 물건을 사고팔던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은 보이지 않는 혁명의 씨앗들이 싹트고, 자라나고, 때로는 파괴적인 열매를 맺게 한 '인류 문명의 밭'이었습니다. 지금, 21세기의 실크로드에도 어떤 '씨앗'이 운반되고 있을까요? 그것은 기술, 자본, 혹은 새로운 사상일 것입니다. 이 씨앗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길 위의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