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책과 사람 20화

담론의 탄생: 우리의 이야기, 세상을 바꾸는 힘

by 안녕 콩코드

​폭력적인 언어와 잃어버린 대화의 기술

​오늘날 한국 사회를 걷고 있노라면, 마치 날 선 칼날 위를 걷는 듯한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언어는 갈수록 거칠어지고, 대화는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우리 주위를 뒤덮은 것은 타인을 깎아내리고 공격하는 '폭력적인 언어'와, 자신의 신념만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굳게 믿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적 신념'의 철옹성뿐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을 듣는 행위는 약점이라도 되는 양 치부되고, '주고받는 이야기'의 미덕은 완벽하게 실종된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담론(Discours)'입니다.


​흔히 '담론'이라고 하면 어렵고 딱딱한 학술적 논쟁이나, 사회 상층부의 권위적인 발언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광주 교수의 섬세한 시선이 포착한 담론의 본질은 전혀 다릅니다. 그가 찾아낸 담론이란, "학력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개입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이야기"이며,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진실을 향해 자유롭게 나아가는 논의" 그 자체입니다. 즉, 담론은 '대화의 기술'이자 '성숙한 시민 사회의 문화'인 셈입니다. 이광주 교수는 《담론의 탄생》을 통해,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근대 유럽 문명을 형성했던 세 가지 상징적인 장소, 즉 '살롱(Salon)', '클럽(Club)', '카페(Café)'를 톺아봅니다. 그는 그 장소들이 어떻게 '자유로운 풍경'을 창조했고, 그 안에서 '공동체의 지혜'와 '개인의 교양'이 꽃필 수 있었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합니다. 우리도 그들의 역사를 통해 잃어버린 '대화의 기술'을 되찾고, 지적인 연대의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살롱의 미학: 우아한 사교가 지성을 낳다

​프랑스 귀부인의 응접실에서 시작된 계몽의 불씨

​루이 14세의 절대 왕정이 유럽을 지배하던 17세기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은 화려하지만 숨 막히는 위계질서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 견고한 궁정 문화의 바깥, 파리 사교계의 깊숙한 응접실에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지적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살롱(Salon)입니다. 이광주 교수는 살롱이야말로 근대 유럽 담론 문화의 가장 우아하고 근원적인 발상지였으며, 놀랍게도 이 공간을 창조하고 운영한 이들은 대부분 여성, 즉 명망 높은 귀부인들이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살롱의 어머니는 17세기 초, 마르키즈 드 랑부이에(Marquise de Rambouillet)였습니다. 그녀는 궁정의 거칠고 야만적인 분위기에 염증을 느끼고 자신의 응접실, ‘블루 룸(Chambre Bleue)’을 개방했습니다. 신분과 관계없이 재치 있고 교양 있는 이들이 모여 우아하게 이야기하고, 시를 읊으며, 새로운 문학적 논의를 꽃피우는 장소를 만든 것입니다. 이 여성들은 스스로를 프레시외즈(Précieuses, 고상한 여성들)라고 칭하며, 언어의 세련됨, 대화의 매너, 그리고 지적인 깊이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살롱은 남성 중심의 학계나 궁정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의 지성과 감수성을 담론의 핵심으로 끌어올리며, '교양(Civilité)'과 '재치(Esprit)'가 지배하는 새로운 지적 권력을 형성했습니다.

예절과 비전의 조화: 담론의 소프트웨어

​살롱 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절도 있는 미학'이었습니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엄격하고 세련된 예의범절이 오히려 가장 자유롭고 깊이 있는 논의의 토대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남의 말을 자르지 않기", "큰 소리를 내지 않기",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하기"와 같은 살롱의 규칙은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광주 교수는 이처럼 형식을 갖춘 우아함이야말로 타인을 향한 진정한 배려이며, 격식과 권위에 갇힌 궁정과는 달리, 오직 지성의 힘만이 발언의 무게를 결정짓는 독특한 문화를 창조했다고 분석합니다.


​이러한 지적 분위기 속에서 18세기 계몽주의(Lumières) 사상이 싹을 틔울 수 있었습니다. 볼테르, 디드로와 같은 계몽 사상가들은 살롱을 통해 자신들의 급진적인 사상을 공표하고 확산시켰습니다. 살롱은 왕실의 검열을 피해, 인간의 이성과 자유에 대한 논의를 확산하는 '지하의 언론'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살롱의 힘, 권력을 견제하다

​살롱의 정치적 힘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인물은 마담 드 스탈(Madame de Staël)이었습니다. 그녀의 살롱은 나폴레옹의 독재에 맞서 공화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을 옹호했으며, 수많은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모여 나폴레옹의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나폴레옹은 드 스탈을 경계하며 "하나의 펜이 백 명의 병사보다 무섭다"고 했으며, 심지어 "이 여자 혼자 군대와 내각보다 더 위험하다"고 말했을 정도로, 한 귀부인의 응접실이 뿜어내는 '지성의 힘'을 두려워했습니다. 살롱은 물리적인 무기가 아닌, '언어의 힘'으로 권력을 견제할 수 있음을 입증한 공간이었습니다. 한편, 독일에서는 사회적으로 소외되었던 유대인 귀부인들이 지적인 우월성을 바탕으로 살롱을 운영하며 편견을 넘어선 지적 연대를 구축, 사회에 편입하는 통로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라헬 파른하겐처럼, 오직 교양과 지성만으로 당대 최고 지식인들을 끌어들였습니다.

담론은 화려한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문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상호 존중과 교양, 우아한 절제가 없이는 아무리 좋은 토론의 장을 마련해도 결국 막말과 폭력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살롱은 격식이 있는 대화가 곧 자유로운 사상의 요람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클럽의 정신: 질서와 자유가 만드는 커먼센스

런던 신사들의 아지트, 자유와 책임의 균형

​프랑스 파리의 살롱이 우아한 여성적 지성이 주도한 공간이었다면, 대륙 건너편 영국 런던에서는 보다 현실적이고 목적 지향적인 남성들의 공간인 클럽(Club)이 담론 문화를 이끌었습니다. 살롱이 미학을 추구했다면, 클럽은 질서와 책임을 기반으로 하는 정신을 추구했습니다. 이광주 교수는 클럽에서 영국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정신적 기반인 '커먼센스(Common Sense, 상식)'가 탄생했다고 강조합니다.


​클럽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자유와 책임의 균형입니다. 클럽은 회원들의 자발적인 회비와 스스로 만든 회칙을 바탕으로 운영되었습니다. 회원들은 이 규율에 복종했고, 이는 논의의 자유를 억압하기는커녕, 오히려 건강한 담론의 틀을 제공했습니다. 클럽 내에서는 계급적 지위나 직업적 권위가 아닌, '신사도(Gentlemanship)'라는 덕목이 발언의 무게를 결정했습니다. 신사란 상대방의 의견을 끝까지 경청하고,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이고 정중하게 펼칠 줄 아는 이들을 뜻했습니다.


​이광주 교수는 이 클럽 문화에서 영국 특유의 '실용적 합리주의'를 발견합니다. 이곳에서는 현실성 없는 관념적 논쟁이 아닌,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실무적인 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클럽은 엄격한 자율 규제 속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공동체의 이익과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끊임없이 실험했던 공간이었습니다.


​정치와 지성의 '국가의 지혜 창고'

​17세기 말, 런던에는 정치적 의견을 공유하고 세력을 규합하기 위한 다양한 정치 클럽들이 등장했습니다. 키트 캣 클럽(Kit-Cat Club)처럼 휘그당의 핵심 인사들이 모여 당론을 결정하고 전략을 논의하는 비밀스러운 막후 공간이 있었고, 국회의원들은 클럽을 통해 대중의 여론을 듣고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중요한 창구로 활용했습니다. 이로써 영국 의회 민주주의는 시민적 담론을 기반으로 성장했습니다.


​한편, 18세기 문학가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을 중심으로 모였던 '더 클럽(The Club)'은 지적 담론의 정수였습니다.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등이 회원이었던 이곳에서 그들은 문학, 과학, 철학, 경제 등 당대의 모든 지적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벌였습니다. 이들의 논의는 실용적이고 경험을 중시하는 영국 특유의 '상식'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 실용적 담론은 영국 사회가 혁명 없이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안정적인 발전을 이루고, 산업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정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클럽은 곧, 신사들이 나라의 중요한 이슈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합의를 도출하는 '국가의 지혜 창고'였습니다.

클럽의 역사는 우리에게 담론이 꽃피기 위해서는 '질서'가 필수불가결함을 가르쳐 줍니다. 진정한 자유는 방종이 아닌, 스스로 정한 규율과 책임감 안에서 발휘됩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규칙, 공통의 목적에 헌신하는 태도가 담론의 기반을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카페의 풍경: 일상 속의 열린 살롱, 지성의 거리로

각성의 음료와 민주적인 공간의 탄생

​세 번째 담론의 장소인 카페(Café)는 도시의 가장 평범하고 활기 넘치는 거리에서 탄생했습니다. 이광주 교수는 카페야말로 근대 유럽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담론의 공간이었으며, 살롱과 클럽의 지적 성과가 카페를 통해 대중에게 흘러들면서 비로소 '공론장(Public Sphere)'이라는 현대적 개념이 완성될 수 있었다고 강조합니다.


​카페의 등장은 17세기 유럽에 퍼지기 시작한 커피와 차 덕분이었습니다. 이전까지 알코올에 의존했던 유럽인들에게 커피와 차는 '각성'의 음료였습니다. 사람들은 카페인 덕분에 더욱 명료한 정신으로, 더 길고 집중력 있게 대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카페는 살롱처럼 귀족의 허가나 클럽처럼 입회비가 필요 없었습니다. 단지 1페니만 있으면 누구나 들어와 커피를 마시며 당대의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기에, 카페는 곧 '길 위의 살롱'이 되었습니다.

경제를 움직이고 철학을 낳다

​17세기 후반 런던의 커피하우스(Coffee House)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도시 생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페니 대학(Penny University)'이라 불렸는데, 이는 단 1페니로 커피를 마시면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접할 수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특히 커피하우스는 경제적 담론의 장이었습니다. 당시 불안정했던 주식, 해상 무역, 보험 등에 대한 최신 정보가 가장 빠르게 오갔습니다. 예를 들어, 로이드 커피하우스(Lloyd's Coffee House)는 해운업자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보험을 거래하던 곳이 되었는데, 이는 현대 보험업의 거두인 로이드 보험회사의 기원이 될 정도로 지적인 담론이 현실 경제를 창조적으로 변화시키는 실질적인 플랫폼이었습니다.


​한편, 20세기 파리의 카페 플로르(Café de Flore)와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 같은 곳은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자신의 책상처럼 사용했던 '사유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들은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끊임없이 지적인 대화를 나누며 시대를 고민하고 '앙가주망(참여)'을 외쳤습니다. 카페 테이블 위에서 펼쳐진 치열한 논쟁은 곧 당대의 철학이 되어 대중에게 전파되었습니다.

카페의 역사는 담론이 민주화되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담론은 정보의 개방성과 물리적 접근성이 결합했을 때, 얼마나 강력한 사회적 힘을 갖게 되는지를 증명했습니다.



​담론의 현대적 도전: 우리 시대의 살롱과 카페를 찾아서

​우리는 이광주 교수의 연구를 통해 근대 유럽 문명이 상호 존중, 개방성, 그리고 진실을 향한 헌신이라는 담론적 기반 위에 세워졌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이 문화는 대중매체의 일방적인 정보 전달과 거대 이데올로기의 득세, 그리고 소비문화의 팽창으로 인해 쇠퇴했습니다.

현대 한국의 역설: 하드웨어는 풍요, 소프트웨어는 빈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수많은 카페, 그리고 인터넷과 SNS라는 거대한 디지털 '공론장'이라는 풍요로운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광주 교수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소프트웨어'가 극도로 빈곤하다는 역설에 봉착합니다.


​우리의 디지털 공간은 '열린 카페'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확증 편향이 난무하는 '에코 챔버(메아리방)'로 변질되었습니다.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이들은 적으로 규정하고, 상대방의 인격을 공격하며, 막말을 퍼붓는 행태가 일상화되었습니다. 살롱의 '교양 있는 미덕'도, 클럽의 '상호 존중의 규율'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담론 대신 '감정의 폭발'이 난무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담론 재건의 방향: 교양의 회복과 경청의 윤리

​이광주 교수의 연구는 담론을 재건하기 위한 세 가지 방향을 제시합니다.

​'교양'의 회복: 담론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지적인 깊이, 즉 교양에서 시작됩니다. 지식을 뽐내기 위함이 아니라, 타인의 세계관을 존중하는 태도가 진정한 교양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미덕: 사회적 리더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의 책임감 있는 언행은 담론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들의 신중한 발언과 품격 있는 논의는 대중에게 모범이 됩니다.

​'경청'의 중요성: 담론은 곧 주고받는 이야기입니다. 폭력적인 언어의 가장 큰 특징은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상호존중을 실천하는 경청의 윤리를 회복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참된 문화와 반듯한 사회는 교양을 갖춘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문화, 즉 담론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디지털 공간을 새로운 '현대적 살롱'으로, 일상의 모임을 '열린 클럽'으로 바꿀 수 있는가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말다운 말, 세상을 바꾸는 작은 발언

​이광주 교수가 우리에게 던지는 궁극적인 질문은 결국 이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말다운 말'을 하고 있는가?


​근대 유럽의 역사가 증명하듯, 한 시대의 흐름을 바꾸고 문명을 발전시킨 것은 결국 총칼이나 물리적인 힘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유롭고 수준 높은 '언설(담론)'이었습니다. 살롱의 촛불 아래에서, 클럽의 벽난로 앞에서, 그리고 붐비는 카페의 테이블 위에서 시작된 작은 발언들이 세상을 계몽하고 민주주의를 낳았습니다.


​위대한 담론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상 속의 작은 모임, 작은 발언, 그리고 '왜 그런가?'라는 합리적 의문을 던지는 작은 지적 호기심에서부터 싹틉니다.


​오늘날, 당신이 동료와 마주 앉은 커피숍이 바로 당신의 '현대적 살롱'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참여하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새로운 '디지털 클럽'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과거 유럽의 현자들이 그러했듯, 존중과 호기심을 가지고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며 '말다운 말'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작은 발언들이 모여,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더 성숙한 공동체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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