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유감스럽게도 우린 같거나 유사한 행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가해자나 피해자 편에서 말이죠.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고통스러운 현장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거대하고 무거운 진실은 종종 가장 작고 간결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심장을 관통합니다. 클레어 키건(Claire Keegan)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 소설은 1985년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채 백 쪽이 되지 않는 분량 속에 한 국가의 어둡고 불편한 역사를 응축해 담아냅니다. 키건의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서정적이지만, 그 속을 흐르는 주제의 무게는 독자의 안정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빌 펄롱(Bill Furlong)입니다. 그는 평범함 그 자체입니다. 아내와 다섯 딸을 둔 가장이자, 겨울이면 마을 집집마다 석탄을 배달하는 성실한 석탄 상인입니다. 펄롱의 일상은 겨울 추위를 피하기 위한 사소한 고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난방비, 딸들의 학비, 그리고 크리스마스 준비. 그는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매 순간 고군분투하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선량한 보통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평범한 가장은 결국 이 마을 전체의 안락한 침묵을 위협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그는 왜 자신의 안정적인 삶을 위협하면서까지 '이처럼 사소하지 않은' 결단을 내려야 했을까요? 소설의 제목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침묵'이 빚어낸 거대한 악을 우리가 어떻게 대면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키건은 펄롱의 시선을 통해 아일랜드의 가장 깊은 상처 중 하나였던 '막달레나 세탁소(Magdalene Laundries)'를 조명합니다. 이 시설들은 수세기 동안 가톨릭교회의 이름 아래 '타락한 여성'들을 강제 수용하고 무보수 노동을 시켰던 곳입니다. 1980년대에도 여전히 운영 중이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곳의 어두운 실체를 알면서도, 혹은 알지 않으려 하면서도, 생존과 평화를 위해 기꺼이 눈을 감았습니다.
이 에세이는 펄롱이라는 평범한 영웅의 내면을 따라가며, 한 개인의 도덕적 용기가 어떻게 거대한 침묵의 공동체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지 탐구할 것입니다. 키건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이 안정을 위해 외면하고 있는 '사소한 것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침묵의 비용은 과연 누가 치러야 하는가?
ㅡ '겨울의 심장'에서 피어난 가장 평범한 영웅
클레어 키건은 주인공 빌 펄롱(Bill Furlong)을 1985년 아일랜드의 냉랭한 겨울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그는 석탄 상인입니다. 그의 삶은 연기와 석탄 가루, 그리고 새벽의 추위로 얼룩져 있습니다. 소설의 첫 문장부터 독자는 펄롱의 성실함과 고단함을 동시에 느낍니다. 그는 부지런히 일하며 아내와 다섯 딸을 둔 가장으로서, 평범한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내는 인물입니다. 그의 일과는 마을의 모든 집과 심지어 수녀원까지 석탄을 배달하며, 그들의 삶 깊숙이 스며들어 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세상의 중심에서 한 발짝 비켜서 있습니다.
두 개의 그림자: 과거의 선의와 현재의 안락
펄롱의 현재 삶은 안정적이지만, 그의 내면에는 지워지지 않는 두 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 그림자는 그를 단순한 석탄 상인 이상의 인물로 만듭니다.
첫 번째는 그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입니다. 펄롱은 미혼모였던 어머니의 품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아일랜드 사회에서 미혼모는 격렬한 사회적 냉대와 차별을 받아야 했습니다. 펄롱의 어머니 역시 혹독한 시선을 견뎌야 했지만, 다행히 그들을 거두어 준 자비로운 여주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주인은 펄롱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편견 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주었습니다. 펄롱의 가슴 깊은 곳에는 이 '선의 기억', 즉 어려움 속에서 받은 인간적인 온정의 기억이 '부채'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약자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내적 자산을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두 번째 그림자는 그가 살고 있는 시대의 빈곤입니다. 1980년대 아일랜드는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과 가톨릭교회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펄롱은 석탄 상인으로서 마을 사람들의 궁핍함과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를 매일 목격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그에게 '모두가 각자의 사정으로 힘겹다'는 냉철한 현실 인식을 심어줍니다. 이 냉철함은 곧 펄롱이 안정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사소한 것들'을 못 본 척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압박으로 작용합니다.
평범함의 힘: 영웅이 아닌 인간적인 선택
클레어 키건은 펄롱의 '평범함'을 강조함으로써 소설의 주제에 무게를 더합니다. 거대한 사회악에 맞서는 사람은 흔히 드라마에서처럼 초인적인 성자나 정의감 넘치는 혁명가가 아닙니다. 펄롱은 자신의 평안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아내의 걱정 앞에서 망설이는 극히 인간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펄롱의 평범함 속에 숨겨진 '선의 부채'를 부각합니다. 펄롱의 도덕적 갈등은 추상적인 정의론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특정한 개인적인 경험과, 현재의 생존 현실 사이의 충돌입니다. 그는 지금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있지만, 과거 어머니를 통해 받은 상처와 온정의 기억은 그가 현재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펄롱의 초상은 독자에게 질문합니다. "가장 평범한 사람이 가장 비범한 용기를 낼 수 있는가?" 펄롱의 덧없는 삶은 곧, '사소한 것'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한 개인의 결단이 거대한 사회적 침묵을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일 수 있음을 암시하며 다음 장을 예고합니다.
ㅡ 성자의 이름 뒤에 감춰진 아일랜드의 그림자
클레어 키건은 주인공 빌 펄롱의 일상을 통해 막달레나 세탁소(Magdalene Laundries)라는 아일랜드의 어두운 역사적 현실을 무대 위에 올립니다. 이 시설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85년에도 여전히 운영 중이었으며, 마을의 외진 곳에 위치하여 마치 보이지 않는 블랙홀처럼 존재했습니다.
역사적 배경: '타락한 여성'의 수용소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아일랜드를 비롯한 여러 가톨릭 국가에서 운영된 수녀원 소속의 시설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죄지은 여성'들을 구원한다는 종교적 목적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미혼모, 성폭력 피해자, 정신 장애가 있는 여성, 심지어 가난하거나 고아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버려진 수많은 여성을 강제로 수용하고 무보수 강제 노동을 시킨 수용소나 다름없었습니다. 소설의 배경인 1985년은 이 시설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던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 사회의 강력한 종교적 권위와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그 어둠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소설 속 묘사: 펄롱의 '사소한' 목격
펄롱은 석탄 상인으로서 이 세탁소에 정기적으로 석탄을 배달해야 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징후들을 외면할 수 없는 위치에 놓입니다. 펄롱은 눈에 띄게 마른 소녀들, 엄격하고 차가운 수녀원장의 태도,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것은 석탄 창고에 감금되어 굶주리고 있는 한 어린 소녀를 목격하게 됩니다. 이 소녀는 추위와 공포에 떨고 있었지만, 펄롱에게는 그보다 더 차가운 마을의 집단적 외면의 상징처럼 다가옵니다.
펄롱은 배달을 하는 동안 굶주린 소녀들에게 돈과 간식을 건네려 하지만, 수녀원장은 그를 차갑게 저지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집에서 하느님의 뜻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이 말은 종교적 권위가 어떻게 비인간적인 착취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둔갑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침묵의 이유: 생존을 위한 합리화의 비극
그렇다면 왜 마을 사람들은 이 명백한 비극에 대해 침묵했을까요? 키건은 그 이유가 단순한 악의(惡意)가 아닌, 생존을 위한 합리화와 두려움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합니다.
종교적 권위의 공포: 1980년대 아일랜드에서 가톨릭교회는 단순한 종교 기관을 넘어 국가 운영에 깊이 개입하는 거대한 권력이었습니다. 교회에 반하는 행동은 곧 사회 전체에서 매장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경제적 의존: 세탁소는 마을에 일자리를 제공했고, 자선 단체로서 기부금을 모으며 지역 경제에 일정 부분 기여했습니다. 펄롱 자신조차 세탁소와의 석탄 거래를 통해 자신의 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정의를 외치는 행위는 생계의 단절을 의미했습니다.
사회적 압력과 평판: 마을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내려온 '튀어나온 못은 망치에 맞는다'는 교훈을 본능적으로 따랐습니다. 펄롱의 아내 역시 "괜한 일에 끼어들어 우리 가족의 평판을 망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침묵은 곧 공동체 속에서 평화롭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었습니다.
이러한 침묵의 카르텔은 거대한 악이 특별한 괴물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기적인 합의 속에서 유지됨을 보여줍니다. 펄롱의 도덕적 갈등은 이제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가 짊어진 비극적인 선택으로 확장됩니다.
ㅡ 이처럼 사소한 것들: 펄롱을 움직인 사적인 기억
빌 펄롱이 석탄을 배달하던 중 수녀원의 석탄 창고에서 발견한 굶주린 소녀의 모습은, 그가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마을의 어둠을 갑자기 터트리는 방아쇠가 됩니다. 이 목격은 펄롱의 내면에서 거대한 도덕적 쓰나미를 일으킵니다. 그가 발견한 것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영혼이 썩어가는 징후였습니다.
내면의 싸움: 생존과 정의 사이의 딜레마
펄롱의 갈등은 추상적인 정의와 이념의 대립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존'과 '선(善)의 부채'라는 극히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가치 사이의 충돌이었습니다.
현실의 압박(생존): 펄롱은 아내와 다섯 딸을 둔 가장입니다. 그는 성실하게 일하지만, 조금이라도 마을의 평판을 거스르면 당장 생계가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아내는 그에게 "괜한 일에 끼어들어 우리 가족의 평안을 망치지 말라"고 간청합니다. 아내의 경고는 안전한 침묵을 지키라는 공동체의 목소리를 대변합니다.
과거의 힘(선의 부채): 펄롱을 움직인 힘은 '정의의 깃발'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과거, 즉 미혼모였던 어머니와 그를 편견 없이 거두어 준 자비로운 여주인에게 받은 구체적이고 따뜻한 선의 기억이었습니다. 펄롱은 소녀의 모습에서 차별과 멸시 속에 홀로 남겨졌던 어린 시절의 자신과 어머니를 봅니다. 이 개인적인 감정의 울림이야말로, 그가 거대한 사회적 침묵을 깨고 행동하게 만드는 유일한 내적 동력이 됩니다. 키건은 이 지점을 통해 진정한 도덕적 결단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닌, 개인적인 공감과 기억에서 비롯됨을 강조합니다.
결단의 순간: 사소한 행동의 거대한 무게
펄롱이 소녀를 구출하기로 결심했을 때, 그는 이미 마을의 질서와 안전한 삶과의 단절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는 수녀원장의 차가운 경고를 무시하고, 밤중에 석탄 창고로 되돌아가 소녀를 데리고 나옵니다.
이 행동은 물리적으로는 '이처럼 사소한 것'일 수 있습니다. 단지 한 남자가 굶주린 한 소녀를 데리고 나온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사소한 행동이 지닌 무게는 공동체 전체의 비겁한 합의를 깨뜨리는 파괴력을 갖습니다. 펄롱의 행동은 마을 사람들에게 "우리가 외면했던 진실"을 억지로 보게 만드는 거울이 됩니다.
클레어 키건은 이 결단의 과정을 서정적이고 절제된 문체로 묘사하며, 펄롱의 행동이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행위였음을 역설합니다. 그는 외부적으로는 공동체의 적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내적으로는 비로소 과거 어머니에게 진 선의 부채를 갚고, 스스로 도덕적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됩니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도덕적 나침반은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가? 생존 본능인가, 아니면 당신에게 심긴 '선의 기억'인가?
ㅡ 세상은 침묵했지만, 나는 당신을 보았다
빌 펄롱이 굶주린 소녀를 수녀원에서 데리고 나오는 순간, 소설은 사실상 끝이 납니다. 클레어 키건은 독자에게 극적인 구원이나 달콤한 보상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대신, 펄롱의 등을 스치는 겨울의 차가운 공기처럼, 그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대가에 대한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 펄롱은 소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지만, 이는 곧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의 단절이자 싸움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아내는 그의 행동에 대해 "우리 가족의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며 경고합니다. '정의로운 행동'의 결과가 개인의 파멸일 수 있다는 비극적인 현실을 소설은 외면하지 않습니다.
침묵의 비용과 선의의 역설
펄롱의 도덕적 결단은 그가 어머니에게 받은 '선의 부채'를 갚은 행위였을지 모르지만, 이는 곧 가족의 '안전 비용'을 치러야 하는 희생이기도 했습니다. 소설이 보여주는 가장 큰 역설은 여기에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침묵함으로써 '평화'를 샀지만, 그 평화는 수녀원에 갇힌 소녀들의 고통 위에 쌓아 올린 위선이었습니다. 반면, 펄롱은 '평화'를 팔아 한 소녀의 '인간성'을 샀습니다.
이 행동이 영웅적이면서도 고독한 이유는, 펄롱을 지지하는 공동체가 부재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행동은 마을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비겁하다"고 소리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펄롱의 고독한 결단은, 정의가 항상 다수결의 합의나 보편적인 지지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때로는 가장 작고 사적인 기억과 공감만이 거대한 침묵을 찢어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진정한 의미
소설의 제목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표면적인 의미와 극명하게 충돌하며 독자에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소녀의 고통은 사소하지 않다: 수녀원에 갇힌 소녀들의 고통과 비극은 결코 사소하지 않으며, 한 시대의 가장 거대한 죄악이었습니다.
선의 행동은 사소하게 보인다: 펄롱이 소녀에게 석탄을 건네거나, 결국 집으로 데려오는 행동은 마을의 거대한 질서 속에서 '괜한 참견', '사소한 일'로 치부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소하게 보이는 따뜻한 행동이야말로 공동체의 죄악에 맞서는 가장 거대한 도덕적 행위입니다.
키건은 이 제목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가'를 되묻습니다. 생계를 위한 일상의 염려와 가족의 안전이라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가장 비겁한 선택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인간 존중은 결코 사소한 것이 될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현대적 시사점: 우리 시대의 '막달레나 세탁소'
클레어 키건의 소설이 현대 독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불편함을 직시할 용기'입니다.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는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우리 시대의 침묵과 외면은 여전히 수많은 '디지털 막달레나 세탁소'를 만들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의 혐오와 집단적인 괴롭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직적인 외면, 그리고 진실을 알고도 생존을 위해 눈 감는 기성세대의 합리화. 이 모든 것들이 펄롱이 살았던 1985년 아일랜드 마을의 침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선의 기억을 품고 있는 평범한 사람, 바로 우리에게는 펄롱처럼 행동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인식하고, '사소하지 않은 것'을 위해 기꺼이 침묵을 깰 결단. 펄롱의 작은 행동이 일으킨 파문처럼, 우리 각자의 삶에서도 침묵을 깰 용기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 막달레나 세탁소 사진과 사진 설명 글, 위키피디아와 한국일보, 블로거 미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