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북한: '핵 포기 불가'와 적대적 국가 관계 선언의 의미
오늘 읽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Joint Security Area, 2000)》
북한은 신냉전 시대의 미·중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국제 정세의 혼란을 이용하여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굳히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은 스스로를 대한민국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더 이상 평화통일의 상대가 아님을 공식화했습니다. 이는 북핵 문제의 성격이 과거 '협상을 통한 비핵화'에서 '핵을 가진 적대적 국가와의 공존'이라는 근본적인 단계로 넘어갔음을 의미합니다.
'핵 포기 불가' 선언의 배경과 목적
북한이 핵무력을 고도화하고 핵 포기 불가 입장을 확고히 하는 것은 다음 세 가지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함입니다.
체제 안전 보장: 북한에게 핵무기는 '국가 생존의 보루'이자 '절대적인 억제 수단'입니다.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 붕괴 사례를 통해 핵을 포기하는 것은 곧 체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을 강화했습니다.
군사력의 우위 확보: 핵무력은 한국과 미국의 재래식 전력 우위를 상쇄하는 비대칭 전력의 핵심입니다. 북한은 핵을 통해 한반도 내 군사적 긴장 수위를 주도하고, 궁극적으로 주한미군 철수 등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 합니다.
미·중 갈등의 활용: 북한은 미·중 경쟁 심화 속에서 중국과 러시아라는 후견국과의 전략적 연대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제재 결의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며 사실상 북한을 감싸는 구도는, 북한이 국제 제재를 회피하고 핵 개발을 지속할 수 있는 외교적 공간을 제공합니다.
'적대적 국가 관계' 선언의 파급력
북한의 '적대적 국가' 선언은 한반도 내 긴장 수위를 질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남북 관계의 제도화된 적대: 이는 남북 관계의 근간이었던 '평화 통일' 및 '민족 공동체' 개념을 공식적으로 폐기하고, 언제든 무력 충돌이 가능한 '정상 국가 간의 적대적 경쟁 관계'로 규정한 것입니다.
한국의 '확장 억제' 재확인: 이에 맞서 한국과 미국은 '워싱턴 선언' 등을 통해 미국의 핵 우산(확장 억제)을 더욱 강화하고, 한국의 재래식 및 미사일 방어 능력을 독자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압력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9화 참조)
안보 환경의 군사화: 남북 접경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북한의 무력 도발(미사일, 핵 실험 등) 빈도가 증가하면서 한반도 전체의 안보 환경은 더욱 군사화되고 있습니다.
북한 리스크는 한국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11화 참조)이자, 한국 외교가 감수해야 할 최대의 '외교적 비용'입니다. 신냉전 시대의 북핵 문제는 더 이상 '해결'의 영역이 아니라, '안정적인 관리'와 '억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위기 관리의 영역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영화로 읽는 제18화] 《공동경비구역 JSA (Joint Security Area, 2000)》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남북 간의 극단적인 긴장과 그 안에 숨겨진 개인적인 교류와 비극을 다룹니다.
이중적 공간: JSA는 남북이 가장 가깝게 대치하는 최전선이지만, 동시에 영화 속에서는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비밀스러운 인간적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현재의 '적대적 국가' 선언에도 불구하고, 남북 관계가 여전히 '민족'이라는 특수성과 군사적 긴장이라는 이중적 구조 속에 갇혀 있음을 상징합니다.
오해와 비극: 영화의 비극은 선의가 오해를 낳고, 외부의 개입과 경직된 시스템이 개인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데서 발생합니다. 이는 한반도 안보가 미·중 등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남북한의 경직된 체제 논리가 얽히면서 오판(Miscalculation)에 의해 언제든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이 영화는 군사적 긴장이라는 껍데기 속에 숨겨진 남북 관계의 복잡한 본질과 오판의 위험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다음 회 예고]
파트 3 예고: 경제의 재편: 돈의 흐름과 미래 산업
파트 2를 통해 우리는 북한, 대만 해협, 우크라이나 등 신냉전의 주요 격전지를 분석했습니다. 다음 파트 3에서는 격화되는 지정학적 긴장이 글로벌 경제 질서와 돈의 흐름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는지 집중 분석합니다.
첫 번째 주제인 19화에서는 '안보 경제의 시대'를 다룹니다. "경제는 곧 안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수출 통제, 보조금, 공급망 재편 등 모든 경제 정책을 어떻게 안보화(Securitization)하고 있는지 분석합니다. 영화 《설국열차》처럼, 불평등이 극대화된 폐쇄적 시스템으로 재편되는 글로벌 경제의 위험성을 짚어봅니다. 파트 3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