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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맛, 기억의 냄새

by 콩코드

텅 빈 식탁과 갑작스러운 상실의 맛

​오늘도 부엌은 고요했다. 창밖으로 들려오는 늦은 저녁의 소음—퇴근하는 차들의 경적, 옆집에서 새어 나오는 텔레비전 소리—만이 바깥세상이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알렸다. 하지만 이 좁은 아파트의 중심, 어머니의 그림자가 가장 길게 머물렀던 이 부엌은 마치 깊은 바닷속처럼 정지해 있었다.


​나는 낡은 식탁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식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밥그릇도, 국그릇도, 꼬깃꼬깃 접힌 김도, 간장 종지도 없었다. 몇 년째 이곳은 그저 빛바랜 나무 무늬와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닦아낸 흔적만이 남아 있는, '텅 빈 공간' 그 자체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이 식탁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문득, 갑작스럽게, 코끝을 맴도는 익숙한 냄새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것은 환상이었다. 분명했다. 하지만 그 냄새는 너무나 생생해서 폐부 깊숙이 스며들어 내 심장을 쿡쿡 찔러댔다.


시금치 된장국.


​찬물에 된장을 풀고, 멸치 몇 마리를 푹 끓인 육수에 다듬어 놓은 시금치를 툭 던져 넣는,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그 된장국의 냄새. 그 구수하면서도 쌉싸름하고, 왠지 모르게 달큼한 그 냄새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된장국은 다른 집 국과 달랐다. 어머니의 손을 거친 된장국은 언제나 끓기 직전, 불을 낮추고 뚜껑을 살짝 닫아두는 마지막 3분의 시간이 있었다. 그 짧은 기다림의 시간이 국물에 깊은 맛을 우려냈고, 그 시간만큼의 '기다림과 정성'이 냄새 속에 배어 나왔다.


​나는 눈을 감았다. 된장 냄새를 따라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그 냄새는 어머니의 얇아진 손목에 묻어 있던 비누 냄새와 섞여 있었고, 혹한의 겨울날 부엌 가득 피어오르던 희뿌연 김과 함께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음식의 냄새가 아니라, '그때 그 시절의 시간과 온도' 그 자체였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자 현실은 다시 텅 비어 있었다. 냄비는 차갑고, 부엌은 정막했다. 아무리 코를 킁킁거려도, 남아 있는 것은 희미한 먼지 냄새뿐이었다.


​그 맛은 이제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레시피를 따라 해도, 아무리 좋은 재료를 써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절대적 상실'이었다. 그 맛을 만들어내던 어머니의 손길, 어머니의 시간,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이 영원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텅 빈 식탁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냄새가 이끌고 가는 기억 속으로, 아주 조용히 침잠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어머니의 된장국을 먹었던 가장 오래된 날로 돌아가고 싶었다.


음식에 담긴 시간과 사연

​기억은 언제나 냄새를 따라 움직였다. 그 시금치 된장국은 나에게 단순히 아침 식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이 끓어 넘치던 증거이자, 세상의 모든 모진 풍파로부터 나를 격리시켜주는 따뜻한 벽이었다.


​나에게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된장국의 맛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안 형편이 가장 어려웠던 겨울날의 기억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에는 늘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고, 학교에서 돌아와도 어머니는 침묵 속에 무거운 한숨만 쉬곤 하셨다. 어린 나는 그 불안감을 해소할 길이 없어, 일부러 학교에서 친구와 싸움을 벌이고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왔다.


​"싸움은 왜 했니."


​어머니는 늘 그랬듯 나를 다그치지 않으셨다. 뺨이나 손등을 때리는 대신, 어머니는 늘 불 앞에서 말없이 일을 하셨다. 그날도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부엌으로 가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전체에 퍼지는 구수한 냄새. 시금치 된장국이었다.


​나는 훌쩍이며 부엌 문턱에 앉아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았다. 어머니는 쪼그리고 앉아 냄비의 뚜껑을 열고 국을 휘젓고 계셨다. 뜨거운 김이 어머니의 얼굴 위로 몽글몽글 피어오를 때마다, 어머니의 눈가에 깊게 팬 주름과 피로가 얼룩진 손등의 핏줄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된장국은 멸치 육수가 아니라, 어머니의 피로와 눈물이 우러나온 것처럼 느껴졌다.


​어머니는 국을 다 끓이고 난 후에도 나에게 아무 말 없이 밥상만 차려주셨다. 그리고는 밥상 귀퉁이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뜨거우니 불어 먹어라."


​그때 나는 밥상 앞에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된장국이 뜨거워서가 아니었다. 짠 된장국의 맛이 내 혀끝에 닿자, 그동안 참았던 모든 서러움과 불안함이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그 맛은 너무나도 구수하고, 너무나도 익숙하고, 너무나도 '변함없는' 맛이었다. 온 세상이 흔들리고 모든 것이 사라질 것 같던 그 불안 속에서, 오직 이 맛만이 나에게 "괜찮다, 너는 안전하다"고 속삭여주는 것 같았다.


​나는 밥과 국을 정신없이 먹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시기만 했다. 내가 국그릇을 비울 때쯤, 어머니는 조용히 입을 여셨다.


​"시금치는 달지. 추운 겨울을 이겨내서 그래. 사람도 그렇다. 힘든 시간을 견뎌내면, 그 안에 단맛이 생기는 거란다."


​어머니의 그 말씀은 어린 내게 복잡한 비유였지만, 나는 그 말이 곧 이 된장국의 레시피라는 것을 직감했다. 된장의 짠맛, 멸치의 씁쓸함, 그리고 시금치의 단맛.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이뤄내는 완벽한 '위로의 맛'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그 된장국을 '어머니의 위로'라고 부르게 되었다. 내가 성인이 되어 타지에서 생활할 때도, 큰 실패를 겪고 좌절했을 때도, 전화기 너머 어머니의 목소리보다 더 먼저 떠올랐던 것은 그 따뜻한 냄새였다.


​그러나 어느새 나는 그 위로의 맛을 잊고 살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멀리 산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따뜻한 시금치 된장국을 당연하게 여겼다. 나에게는 언제나 '내일'도, '다음 주'도 어머니의 따뜻한 국그릇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라는 오만함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이 텅 빈 식탁 앞에 앉아있는 나에게 가장 날카롭게 박히는 가시가 되었다. 그 시절, 어머니의 땀과 희생으로 끓여졌던 그 된장국 속의 시간과 사랑을 나는 그때 왜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을까.


재현되지 않는 맛의 발견

​그날 밤, 나는 충동적으로 부엌으로 향했다. 더 이상 그 냄새의 환영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맛을 붙잡아 두고 싶었다. 서랍 속에서 가장 오래된 수첩을 꺼냈다. 어머니가 생전에 깨알 같은 글씨로 남겨두었던 레시피가 거기 있었다.


​시금치 된장국: 시금치는 뿌리째 깨끗이 다듬을 것. 쌀뜨물 한 컵, 멸치 5마리 (대가리는 꼭 떼기). 된장은 장독 맨 밑의 것. 마지막 3분 약불.


​나는 레시피대로 움직였다. 새벽 시장에 가서 가장 싱싱한 시금치를 골랐다. 뿌리가 붉고 단단한 시금치만이 어머니의 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었다. 멸치의 머리를 떼어내는 동안, 내 손끝에서는 미세하게 멸치 내장이 터지는 비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어머니가 수없이 반복했을 노동이었다.


​냄비에 쌀뜨물을 붓고 멸치를 넣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것과 가장 비슷한 빛깔을 가진 시판 된장을 크게 한 숟가락 풀었다. 구수한 냄새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이 냄새야.' 나는 속으로 외쳤다. 성공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이 끓어오르는 국물처럼 부풀었다.


​드디어 시금치를 넣을 차례. 나는 정성껏 다듬은 시금치를 끓는 물에 조심스레 넣었다. 푸른 시금치가 뜨거운 물에 닿아 색이 선명하게 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레시피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구절. '마지막 3분 약불.' 나는 불을 최대한 낮추고 냄비 뚜껑을 덮었다. 어머니의 비밀이 이 3분 안에 농축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3분이 지나고, 떨리는 손으로 뚜껑을 열었다. 김이 확 피어올랐다. 눈을 찡그리며 국자로 국물을 한 국자 떠서 작은 그릇에 담았다. 김을 후후 불고, 드디어 국물을 입 안에 넣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것은 시금치 된장국이었다. 구수하고, 따뜻하고, 시금치의 단맛이 잘 살아있는. 완벽하게 '맛있는' 된장국이었다.


​하지만 '그 맛'이 아니었다.


​혀끝에 감도는 맛은,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맛'이 아니었다. 내가 만든 국은 짠맛과 단맛이 분리되어 따로 놀고 있었다. 된장의 짠맛 뒤에 시금치의 단맛이 뒤따라왔다. 반면 어머니의 국은 그 모든 맛이 하나의 '온기'처럼 혀 전체를 감싸 안으며 동시에 느껴졌었다. 마치 사랑과 위로, 그리고 잔소리가 한 번에 터져 나오던 어머니의 말투처럼 말이다.


​나는 실패했다. 완벽하게 재료를 준비했고, 레시피를 따랐고, 정성까지 다했지만, 재현은 불가능했다. 나는 좌절감보다 더 깊은 종류의 깨달음을 얻었다.


이 맛은 기술의 영역이 아니었다.


​부족한 것은 된장의 품질도, 시금치의 신선함도 아니었다. 부족한 것은 그 수많은 세월이었다. 어머니가 그 된장을 담그기 위해 보냈던 햇빛 아래의 수많은 날들,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며 나를 키워냈던 시간의 농축액, 그리고 묵묵히 가족을 지켜냈던 삶의 깊은 무게감이었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어머니의 부재를 완전히 인정했다. 그 맛은 이제 이 세상의 것이 아님을.


​하지만 슬픔이 아니었다. 재현에 실패한 이 따뜻한 국물을 바라보는 순간, 오히려 마음속에 새로운 종류의 평온함이 찾아왔다. 흉내 낼 수 없다는 것은 곧, 어머니의 사랑이 '대체 불가능한 영역'에 속해 있다는 증명이었다. 그 사랑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이제 영원히 내 마음 가장 깊은 곳, 가장 따뜻하고 고요한 방에 보존될 유일한 보물이 된 것이다.


​나는 실패한 국을 한 술 떠서 입에 넣었다. 이 맛이 어머니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같았다. "완벽하려 애쓰지 마라. 네가 이 맛을 기억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홀로 남은 식탁 위의 잔향

​나는 더 이상 그 맛을 따라 하려 애쓰지 않았다. 굳이 흉내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남긴 시금치 된장국의 맛은 물리적인 그릇에 담긴 액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내 입맛을 형성했고, 내 삶의 기준이 되었으며, 나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서정(抒情)으로 나의 피와 살에 스며들어 있었다.


​나는 내가 끓인, 맛은 좋지만 '그 맛'은 아닌 된장국을 식탁 위에 올려두고 홀로 앉았다. 텅 비어 보이던 이 식탁이 이제는 다르게 보였다.


​식탁의 이 모서리에는 내가 훌쩍이며 울었던 어린 날의 기억이 있고, 저쪽 귀퉁이에는 어머니가 국물을 식혀주기 위해 부채질을 하시던 따뜻한 바람이 남아 있었다. 나무의 낡은 표면 위에는 어머니의 닳아 빠진 국자 소리가 잔향처럼 맴돌았다. 이 공간은 텅 빈 것이 아니라, 사랑과 기억으로 가득 찬 가장 풍요로운 곳이었다.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 어머니의 레시피대로 끓였지만, 결국 나 자신의 맛이 된 이 국을 말없이 먹기 시작했다. 된장국의 짠맛이 주는 위로, 시금치의 단맛이 주는 희망. 그 맛을 천천히 음미하며 나는 어머니에게 속삭였다.


​"어머니, 저는 이제 어머니의 맛을 잊지 않을 거예요. 흉내 내는 대신, 이 맛이 저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기억되도록 할게요."


​어머니의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 사랑의 결정체인 음식의 서정은 고스란히 나에게 건네졌다. 그 따뜻함은 이제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의 근원이자, 내가 앞으로 누군가를 위로할 때 건네야 할 가장 깊은 온기의 기준점이 되었다.


​나는 밥 한 그릇을 비웠다. 숟가락을 내려놓자, 고요함이 다시 찾아왔다. 하지만 이전의 고요함과는 달랐다. 이전에는 상실의 고요함이었다면, 지금은 충만한 평화의 고요함이었다.


​창밖의 소음은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내 마음은 고요했다. 나는 빈 그릇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으로 채워졌던 그 맛의 기억을 온전히 소화해 낸 기분이었다.


​오늘 저녁,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그 된장국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아주 따뜻하게, 그리고 아주 고요하게 혼자 밥을 먹었다. 그 맛은 이제 나의 미래 속에 함께 흐르는 강물이었다.



사진, 블로거 '행복한 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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