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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코드 Oct 12. 2024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회

금번 수상이 순수/참여 논쟁의 트리거, 좌우격돌의 대리전이 되어선 안 돼


한강발 서점 오픈런: 노벨상 수상작은 물론 그 외 책 전부 내놓기 무섭게 팔려

한강발 서점 오픈런이 거세다. 서점마다 문을 열기도 전에 미리 줄 선 구매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고. 줄을 서더라도 한강의 작품을 손에 넣을 장담을 할 수 없을 정도란다. 유명세를 실감할 만하다. 이틀새 30만 권이 팔렸다는 기사까지 났다.



서가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소장책의 수가 늘수록 책장도 그만큼 늘었다. 거실과 방은 물론 벽과 벽 틈, 심지어 옷장은 물론 팬트리와 신발장에도 책장을 짰다. 더러는 새로 기성품 책장을 들여놓았다. 책은 삽시간에 불어 수 만 권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런 데서 한강의 품을 찾는 것부터 무리였다. 소설칸을 따로 두지 않은 것이 문제를 더 키웠다.



서가의 10분의 1쯤 뒤진 뒤에 그만두었다. 노벨상 수상작 《채식주의자》와 한강의 품으로는 드문(?) 추리소설 형식의  《바람이 분다, 가라》를 손에 것이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좋게 생각해서 빈손을 면했으니까. 나머지 책은 다시 찾기로 하고 선선히 물러났지만 언제 다시 서가를 뒤질지 장담이 서지 않았다. 책을 모조리 꺼내놓고 가 사랑음을 자랑할 성격의 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하나하나에 얽힌 감상이나 추억을 시시콜콜 섬길 일도 아니었다.



개인 서가에서조차 꼭꼭 숨어버린 한강의 책들

채식주의자》는 지인이 빌려달라고 한 터였다. 혹 지인이 그 책의 연작 중 한 편-채식주의자에는 모두 세 편의 소설이 실렸다-을 읽었을지 모른다고 가정 하에 차선책인 바람이 분다, 가라》를 들고 가기로 했다. 겨우 얻어걸린 책을  읽었을지 몰라서 가져왔다는 말과 힘께 《채식주의자》에 끼워 지인에게 건네기가 멎쩍긴 했다. 서가를 훑는 과정에서 한강의 또 다른 작품인 《내 여자의 열매 함께 읽어보라고 권할 참이었었다. 특히나  자의 열매서가에 두 권이 꽂혀 있어  찾기가 수월할 줄 알았다.



소장한 책의 20분의 1쯤 훑었을 무렵 손에 넣은 책은 《채식주의자》 단 한 권에 그쳤다. 현자감이 따갑게 밀려왔다. 5만 권에 육박하는 책들 속에서 분류조차 안 한 책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란 걸.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의 자각. 재확인은 눈에 강렬한 충혈의 흔적을 남겼다. 검지손가락을 구부려 뒷등으로 뻑뻑한 눈을 서너 번 부빈 뒤에야 퍼뜩 《바람이 분다, 가라》를 재구입한 까닭이 떠올랐다. 그날 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 책을 어디 뒀는지 찾기를 포기하고 서점으로 달려갔었다. 그때와 지금의 다른 점은 크고 작은 서점 모두 한강의 책을 사기 위한 오픈런 상황이라는 것. 대기줄에 섰더라도 차례가 올지 기대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지인은 내가 건넨 두 권 모두 반색했다. 다행이었다. 대신 <몽고반점>은 읽은 터라 《바람이 분다, 가라》 먼저 읽겠다고 했다.  지인에게  책의 경향을 간단히 설명해 줬다.





지인에게 책을 건네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이 많아졌다. 오픈런 상황이 해제될 때까지 궁금증을 꾹꾹 눌러 담았다가 나머지 책을 재구입해야 할지, 끝내 서가 뒤지기 리벤지 매치에 나서 기필코 그의 저작 전부 전리품으로 가져가야 할지 기로에 선 걸 직감했다. 한강의 이름이 호명되면서 재차 시작된 '앓이' 비슷한 게 내 안에서 스멀거렸다. 한강은 내가 원픽하는 몇 안 되는 작가군에 속해 있었다. 천 갈래로 뻗어나갈 것 같은 작품 경향은 물론이고 그로테스크한 상황 전개에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이질감을 서럽게 공감 가는 개연성으로 뒤바꾸는 빼어난 묘사, 인간 내부의 근원적 불안을 켜켜이 끄집어내 마침내 신원하는 기묘한 분위기에서 그를 당해낼 작가가 없을 거라 믿었다. 2007년이었다.



좌우에 몰아친 편향, 때아닌 순수참여 논쟁 촉발 우려

이후 그가 5.18과 4.3에 관해 소설을 낸 것에 많이 놀랐다. 전작 어디에도 그가 그쪽에 경도될 만큼의 문학적 배경이나 단서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단히 개인적인 문제에 천착하는 작가, 관계 확장의 결말도 종종 개인으로 귀결되곤 하던 특유의 회귀성에 견줘 난 그가 확연히 다른 방향 혹은 그렇게 인식될 작품을 쓰리라고는 그 흔한 징후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그가 광주 출신이라는 사실 외에. 출신배경이 사상의 자유를 거스를 결정적인 요인은 될 수 없다. 당시엔 그렇게 믿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가 순수와 참여 논쟁의 복판으로 들어선 것이 안타까웠다. 한동안 말을 아낀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누구나 짐작하듯이 5.18과 4.3은 소모적인 논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다분한 주제다. 논쟁에 앞서 문단과 그 이상의 범주에 깊은 골을 낼 주제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분단과 지역 갈등 상황에서 한 발 치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심정적으로 분단과 지역 갈등자장에서 꽤 벗어났다고 주억거릴  실제로는 좌 아닌 좌 행세로 이득을 얻는 허위 좌파가 득세하거나 우는 우대로 보수를 가장하며 판판히 제 발등 찍은 일로 허송하는 게 오늘 현실이다. 상대를 뜯어먹고사는 존재. 어쩌면 아주 오래전 유행한 용어인 '적대적 공생관계'를 의심할 정도로 정치권싸우며 지들 배만 불려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정치가 여타 영역을 쥐락펴락하거나 뒤흔드는 이 라에서 말이다. 그러니 문학을 위시한 범 문화든, 경제든, 사회든 남아날 재간이 있을 싶지 않다.



죽했으면 어쭙잖은 논쟁이 수없이 벌어지는 곳, 알맹이라곤 없는 소모적 논쟁으로 세기를 살아온 이 에서 기댈  고작 대망이던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사실이 바뀌진 않는다. 걸핏하면 혁신 세력의 등장을 대망하는 정신 나간 짓이 벌어지는 것이 이곳이다. 우지는 않고 요행만 바라는 세상에서 각개약진이란 질펀한 정치생리와 헛짚은 정서에 견줘 얼마나 신선한가.



이런저런 이유로 편향적일 수 있는 판단은 잠시 보류하자. 작가적 성향 자체에 대한 비판은 나중에 도 늦지 않다. 지금은 한국의 첫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는 자리로 족하다. 그 정도도 축하하지 못할 만옹색해서야 쓰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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