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날짜 표시창이 요지부동이다. 지난 13일 일요일 오후 9시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뎠다. 오른쪽 발가락 2,3,4번이 안으로 심하게 꺾였다. 손을 짚거나 몸이 쓰러지지 않았는데 많이 놀랐다. 계단에 쓸린 발가락 3개에 피가 흘렀다. 상태를 확인하자 통증이 몰려왔다. 다급한 마음에 속으로 괜찮겠지,라는 말을 연발하는데 심상치 않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잠깐 놀란 가슴을 추스르고 한 번 더 상태를 확인하려고 다친 발로 바닥을 디디자 어떤 발가락인지 모를 발가락에서 툭 소리가 났다. 하필이면. 섣부른 행동에 화가 났지만 어쩌랴 일단 병원부터 가 볼밖에.
같은 시각 시계도 할 말을 잃었는지 일부 기능을 멈췄다. 대비책은 있었다. 시계태엽 꼭지를 빼서 위로 돌리면 언제라도 날짜를 맞출 수 있다. 여러 번의 경험도 있고 보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부로 작정이라도 한 듯 시계 날짜는 움직일 줄 몰랐다. 태엽이 헛돌았다. 어떻게든 고쳐볼 요량으로 나머지 수단을 썼다. 헛수고인 줄 알면서도 시계를 풀어 세차게 흔들었고, 한나절 가만히 두면 정상으로 돌아오겠지 싶어 그날은 시계를 유독 나긋하게 다루기도 했다. 백약무효였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검색창에 ‘손목시계 날짜 미작동’이라고 치자 정보가 쏟아졌다. 기대한 만큼 실망도 크다던가. 유용한 정보는 단 하나. 날짜를 바꿔주는 금속판에 끊어졌을 테니 수리를 맡겨라. 남의 손에 맡길 수 없어서 그냥 차기로 했다. 불편하기는 해도 휴대폰으로 날짜를 확인하면 그뿐이라고 쿨하게 넘겼다. 당장 이틀 후에 유럽으로 날아가면 손목시계로 시간과 날짜를 꼼꼼히 챙기려던 계획은 반쪽이 되고 말았다. 시간은 시계로, 날짜는 휴대폰, 뭐 이런 식으로. 아쉽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날짜가 가지 않는다고 내내 차고 다닌 시계를 풀어던지는 건 영 내키지 않았다. 그런대로 봐줄 만은 했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회복
나흘이 흘렀다. 시계가 14일로 바뀌었다. 내가 한 일이라곤 출근길에 하나님이 정한 때에 관한 큐티를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였고, 정오를 갓 넘긴 시각에 지난날 도움을 받은 친구를 오늘 만나기로 했다며 사뭇 들뜬 목소리로 미주알고주알 그 시절 추억을 되짚은 지인과 통화한 것이 전부였다. 그 두 상황에서 난 심신이 충전되는 느낌을 받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 없다. 날짜가 바뀌었나? 날짜창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선명하게 찍힌 14일. 시차 없이 휴대폰 액정에 모 신문사 알림 창이 떴다. 다 잘 풀릴 거예요. 난 그 알림 창이 어떻게 설정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경우에 따라 어떤 일은 또 다른 일의 전망 혹은 예시가 되기도 한다. 사람 사는 일이란 정말 알 수 없다. 어떤 땐 쉽게 풀릴 문제가 거듭 꼬이고 또 다른 때엔 사방이 꽉 막힌 심정에 한줄기 거대한 빛이 비치기도 한다.
어떤 일이나 또 다른 일 앞에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겁을 먹든 겁먹지 않든 직면한 상황은 그 따위로 바뀌지 않는다. 만일 겁먹은 탓에 사정이 좋게 바뀌었다면 백번이라도 겁내는 게 옳다. 그렇지 않다면 반대로 내려놓는 게 순리다. 동원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한 뒤에는 흘려보내야 한다. 누가 되었든 무엇의 도움을 받았든 예를 들어 강물에 떠내려간 물건을 누군가는 건져낼 것이다. 때론 큰 나무에 걸린 채 주인이 나타날 때만 기다리기도 한다. 물이 마른 강바닥에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시계의 날짜가 갑자기 바뀐 까닭을 난 알지 못한다.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했었다. 수리점에 맡기는 것 빼고. 무작정 기다렸더니 해결되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막연한 기다림이라도 기댈 구석이 있다는 것, 그러니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내게도, 그리고 여러분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