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르무 Dec 09. 2021

집의 의미 1

부모님 품을 떠나기까지

prologue

결혼 후, 우연히 영화감상 취미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이천사담'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감상 후 토론을 나눴다. 영화는 대구 이현동 재개발 관련 내용이었다. 감독님께서 관객들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 중 하나가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였다. 당시 결혼을 하고 신혼집을 꾸리고 지내며 '집'이란 공간에 대한 생각이 많던 때라 사람들과 알차고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리고 이 얘기를 좀 더 풀어서 브런치에 올려야지 마음먹었다. 첫 자취부터 지금까지 내가 거쳐온 '집'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려다 보니 글이 길어졌다.




1. 집에 들어가기 싫어요.


부모님과 함께 지내던 시절에 ‘집’은 내게 ‘억압’이었다.

화목하지 않은 집안은 아니었지만, 부모님만의 울타리 안에서만 머물러야 하는 암묵적인 압박이 숨 막혔다. 남들에 비해 자유로운 듯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보수적인, 그런 집이었다.

특히 엄마와의 관계는 대부분의 딸과 엄마의 관계들이 그러하듯 친한 듯 불편한 애증 관계였다. 엄마를 많이 닮았단 이유로 나는 늘 엄마 편이어야 했고 엄마는 자신의 모습을 닮은 나를 본인과 동일시했다.

‘나’는 죽이고 엄마가 원하는 모습만 꺼내놓고 살아야 했다.

서로를 잘 알기에, 서로에게 느끼는 불편함을 누구보다 잘 알아채 눈치를 봐야 하는 순간들이 이어지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외면할 수 없어 돌봐야만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어려울 수 있지만 딱 저게 엄마와 나의 관계였고 그래서 ‘집’은 내게 너무 ‘숨 막히는 곳’이었다.

집 밖으로 나와야만 나는 조금이나마 ‘나’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늘 친구들과 조금이라도 더 밖에 있길 원했다.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매일 약속을 잡고 혼자서라도 밖에서 해가 질 때까지 돌아다니다 집으로 들어갔다.




2. 나만의 공간이 생기다.


성인이 되면 자취를 하겠다 다짐했다. 대학교 1학년, 첫 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 동안 12시간씩 일하며 돈을 모았다. 2학기가 시작하기 전 나는 부모님 동의하에 자취를 시작하게 됐다. 엄마는 처음엔 같은 지역임에도 자취를 하겠단 내 말에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셨다. 내가 영영 나가 사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서운하단 이유로 본가에 남아있는 내 짐을 전부 다 갖다 버렸다.

어찌 됐든 그렇게, 드디어, ‘부모님의 집’에서 벗어나 ‘내 집’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

자취를 시작하고 깨달은 사실은 내가 ‘집순이’라는 것이었다. 늘 집에 있지 않고 밖으로 싸돌아다녀서 친구들이 ‘역마살 꼈냐’고 할 정도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돌아다니던 나였다. 그런데 자취방을 구하고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생기자, 밖을 나가지 않게 되었다. 놀 일이 있으면 친구들을 집으로 불렀다.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엄마와 나는 떨어져야 서로가 숨 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자취를 시작하고 엄마도 건강이 더 좋아졌다.

부모님은 내보내기 전까진 딸 걱정에 오만상이시더니 지척에 있는 딸 자취방을 일 년 내내 한 반도 보러 오지 않으셨다. 서운하진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그 덕에 나는 10평 남짓한 나만의 숨 쉴 구멍 속에서 ‘나’로서 온전히 숨 쉴 수 있었다.

태어나 처음 느끼는 자유였다.




작가의 이전글 내 글을 보고 신랑이 물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