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시선 12

다시 쓰는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스토리 #12

by freeart k

직장 생활과 함께 주말에는 아동미술교육과 나의 그림 작업을 병행하며 이어 나가던 어느 날 북 카페 오픈을 위해 퇴사했던 전 직장에서 연락이 왔다. 직원이 필요하여 다시 재입사 제안을 받았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은 계약직이고 급여도 적기 때문에 투잡으로 여러 활동을 하고는 있었지만, 이직을 하면 업무 양도 지금보다 많고 시간적인 여유도 부족할 것 같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나 급여 부분에서 생각해 본다면 제안을 받는 게 나에게는 유리했다. 일단 중견기업이고 칼퇴근이 가능했고, 그림을 그리는 나에게는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다. 주말에는 따로 나의 개인적인 일을 해도 크게 무리가 될 일은 없었다. 그래서 제안을 받아 들었고 그렇게 11년 만에 다시 재입사를 하게 되었다.


11년이라는 세월을 무시하지 못했다. 많은 업무 프로세스가 바뀌고 또한 새로운 직원들도 있어 적응해야 했지만, 팀장님과 부서 사람들이 잘 도와줘서 함께 열심히 배워 나갔다.


이직을 하고 몇 달간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업무 배우기도 바쁜데 역시나 업무량 또한 적지 않았다. 퇴근 후 돌아오면 밥 먹는 것조차 귀찮고 힘들었다. 그냥 멍하니 애꿎은 TV 채널만 왔다 갔다 반복이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니 5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제대로 완성한 그림은 한 작품도 없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하여 재입사를 했는데 업무에 대한 욕심이 생기고 일을 더 많이 배우고 능력을 키우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또다시 뒷전이 되어 버린 그림 작업에 스트레스만 쌓여 갔다. 대학교처럼 과제를 제출하는 것도 아니고 의무적으로 그림을 그려야 할 이유도 없었지만 스스로 조급함을 느끼고 있었다.


몇 년간 그려온 작품으로 매년 단체 전시는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개인전을 한 적이 없어 늘 가슴 한구석에서 꿈틀대기만 하고 세상 밖으로 나오질 못하고 있다. 개인전을 할 용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직장 생활을 하고 늘 바쁘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였고 그만큼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한구석에 그냥 밀어 넣고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늘어나는 나이만큼 욕심도 늘어났다. 그만큼 더 노력하고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스스로 자책을 하면서도 늘 그 자리에 안주하는 내 모습이 싫어서 가끔 울기도 하였다. 그러다 정신 차리고 또 시작하기를 반복했다.


흔들릴 때마다 곁에서 위로해 줬던 것은 그림과 책이었다. 그리고 답답하면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가서 그림 감상으로 치유를 받았다. 작품들을 보며 다시 잘할 수 있다는 격려를 받았다.

내가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하는 이유는 나와 같이 아웃사이더 화가 같았다. 그래서 더 애정이 가는 화가이다. 그는 죽고 나서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작품처럼 반짝이는 별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모든 그림은 나의 세계를 찾지 못하고 우주 속을 떠다니는 먼지처럼 헤매는 나에게 용기와 아이디어를 주었다. 먼지가 반짝이는 별이 될 때까지…


그림2.jpg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그림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그림 작업은 항상 설레고 행복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에 부딪히고 말았다. 기회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오는 것이 아니었다. 기회의 기다림은 계속되었고 외로움이었다. 늘 나만의 스타일이 확고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화가와 명작들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


지금까지도 찾지 못한 나의 그림 세계를 찾아 헤매는 중이다. 어린 시절 사생대회에서 상을 받고 선생님께서 나에게 하셨던 말씀을 가끔씩 꺼내어 생각하며, 현재까지도 일상 속의 복잡한 생각과 고민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을 쓴다. 그러다 보면 나의 그림 세계가 구현될지도 모른다. 현재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라도 좋고 행복하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행복이고 그리움이다.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지 않고 보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다. 예술가로서의 꿈과 의지가 있다면 그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예술가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도 충분히 이루어 낼 수 있다. 노력하고 꾸준히 작업을 이어 나간다면 분명 원하는 기회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엄청나고 대단한 예술가는 아니지만 지금껏 내가 겪어온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예술가로서 오래가기 위해 유념해야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작품을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실패작이든 습작이든 그 어떤 그림이든 모두 소중한 작품이다. 지난 9년 동안 그려왔던 그림들을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다. 이유는 지금도 복층 원룸에 살고 있지만 그림들을 보관할 장소가 부족했고,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들은 가마에서 나와 실패한 도자기들을 깨부수듯이 캔버스를 칼로 찢어버렸다. 찢어 버린 캔버스를 보고 있으면 노력한 시간들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가끔 어린 시절이나 중고등학교 때 그린 그림들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초등학교 사생대회에서 첫 상장을 받았던 풍경화를 어른이 되어서 바라보는 나의 초등학교 그림은 어떻게 보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또한,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한 나의 첫 전시 작품마저 지금은 없다. 사진과 전시 도록마저 분실되고 없다.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작가들의 어린 시절에 그린 스케치나 미완성 그림까지 전시되어 있다. 습작들을 지금까지 보관했다는 것이다. 유명 작가의 습작들을 볼 때마다 마음 한편에는 아픔이 있다. 나도 작업실이나 넓은 집이 있었다면 지금껏 그려왔던 그림들을 보관하고 생각날 때마다 열어 보았을 것이고 차후 그것 또한 하나의 작품집이 되고 만들 수 있었을 것인데….


이후, 3년 전부터는 버릴 그림들은 사진을 찍어 외장 메모리에 보관을 하고 있다. 9년 전에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하는 후회가 자꾸만 밀려온다.


두 번째, 전시회에서 본 작품들을 보고 꼭 감상문을 적어야 한다. 거창하게 적으라는 것은 아니다. 짧은 글이라도 좋고 일기 형식으로 적어도 좋다. 현실과 기억은 너무나 다르다. 희미한 기억과 보았던 영상을 아무리 끄집어 내려고 해도 안 될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꼭 그 순간을 글로 적어야 한다


작은 기록과 흔적들은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비밀 같은 이야기이며, 그림이 어떻게 의미가 되는지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기록들이 모여 작품이 되기도 한다. 꼭 그림만이 예술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글도 작품이 된다.


그동안 많은 전시관을 다니며 전시 관람을 하였지만 그 모든 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기록보다는 머리와 가슴으로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희미해져 가기 때문이다. 그 희미한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지금은 전시를 관람 후 꼭 기록을 한다. 우리의 기억은 기록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여행을 하거나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앞서 말하듯이 여행은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고 그만큼 생각도 깊어진다. 깊음 속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멋진 풍경은 그림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하다.

책 또한 아이디어와 창작을 연결시켜준다. 한동안 그림 그릴 주제를 찾지 못해 붓을 놓은 몇 개월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모르겠고 고갈된 소재들을 어떻게 끄집어내야 할까? 고민에 고민을 했었다. 일상 속에서 주제를 선택하여 캔버스에 옮기는 과정이 힘들었다. 나의 상상력과 아이디어는 여기까지 인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던 중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편독이 심했던 내가 독서모임을 참가하며 소설책과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문득 책을 읽다 보니 책 속의 글들이 확장되어 그림 주제가 떠올랐다.


김춘수의 <바람>이란 시를 읽으며 바람을 그리고 싶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형체에 색을 입혀 그렸다. 색을 입은 바람은 색에 따라 계절까지 표현되었다. 그리고 <우주에는 경계가 없다>책을 읽으며, ‘비밀의 문’이라는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행복한 예술가의 길을 걸으려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순수하게 관람자로 즐길 수 있고 또는 투잡의 개념으로 즐길 수도 있으며 전업 예술가로 활동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본인이 선택해야 하지만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여 자신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 알아야 한다.


한동안 예술적 열정과 경제적 안정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었던 기간이 있었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행복한 예술가가 되려면 반드시 찾아야 했다.



to be cou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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