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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Jul 01. 2024

조이의 언어 사전

'미미'를 아십니까?


조이의 인생 첫 단어는 엄마가 아닌 '아빠'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그 당시 조이의 입에서 나온 '아빠'는 단어라기 보단 소리에 불과했다. 조이가 일주일에 이틀도 채 보지 못했던 아빠였기에, 엄마는 더욱 열심히 사진을 보여주며 '아빠'를 소리 내어 가리켰더랬다.


물론 조이의 귓가에 맴돌던 여러 소리들이 모래알처럼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조이가 옹알이를 열심히 하다 걸린 것이 하필(?) '아빠'라는 소리였는데, 그 소리에 엄마와 아빠가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표정을 지었으니, 그 소리를 또 내지 않을 수 없었겠지. 말 못 하는 젖먹이의 입에서 '아빠'라는 소리가 나오기까지의 인풋과 아웃풋의 상관관계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고로, 조이의 인생 첫 단어는 '아빠'인 것으로 마무리 짓자. 탕탕탕.


조그마한 아기의 아주 작은 입에서 말 같은 것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조이가 아빠를 아빠라 부르고 엄마를 엄마라 부르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그 현상이 신기했고 신비했다. 아이가 엄마 아빠가 내는 소리를 비슷하게 따라 하기라도 하면, 그날 저녁식사 메뉴는 기쁨의 도가니탕이 되었다.


그것이 어찌 그리 기쁠까를 생각해 보면, 마치 신세계를 발견했을 때의 마음과 비슷하겠구나 싶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함으로 인한 기쁨, 아니, 그 이상의 기대감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곳에 발을 디딤으로 일어날 변화가 그려지니까 말이다.


우리의 눈앞에 우리를 쏙 빼닮은 존재가 나타났다. 그 존재가 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우리와 조금 더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났고, 그 과정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러니 아이가 의미가 담긴 소리, 즉 말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우리의 관계가 한층 더 역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화되어 갈 것을 알리는 사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소리'에 의미가 부여되어 점차 '말'이 되어가자 아이는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세상과도 연결이 되어갔다.


(아직 연약한(?) 단어 수준이지만) 조이의 작은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들을 때면, 조이의 세계가 보인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 지금 상태가 어떤지, 등의 내용을 파악하면서 알게 되는데,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조이의 세계는 조금씩 커져간다.


17개월의 조이는 컵을 '커-'로, 물을 '무우-'로, 공을 '꼬옹'으로, 꽃을 '꼬-'로, 맘마를 '맘마'로, 포크를 '포ㅋ'로 발음하며 지칭한다. '미끄럼틀'이란 단어를 들으면 미끄럼틀을 가리키고, '의자'를 들으면 의자로 간다. 또 조이가 좋아하는 '방울토마토'나 '포도', '우유'라는 단어를 들으면 곧장 냉장고 앞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엄마를 엄마, 아빠를 아빠라고 지칭하고 자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한 달 전쯤이었을까, 조이와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길 위로 지나다니는 개미를 보고 조이는 이렇게 말했다.


"미미-"


언젠가 들었던 '개미'가 '미미'로 발화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미미의 리얼 네임이 개미라는 것을 여러 차례 알려줬지만, 조이는 여전히 개미를 보고 "미미-"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 이후로 조이는 눈에 보이는 모든 작고 까만 것들을 "미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예를 들자면, 미역국에 미역이나 작은 고기,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작은 먼지, 엄마의 몸에 있는 작은 점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그 미미들이 다른 것임을 조이는 분명히 알고 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위에 있는 미미를 보면 밟으려고 하고, 미역국에 미미는 먹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 몸에 있는 미미를 가리키고 후엔 반드시 자신의 몸에 있는 미미를 가리킨다. 각각의 이름을 말해주고 말해주지만, 여전히 조이에게 모든 작고 까만 것들은 '미미'이다. 아무래도 조이의 '미미'는 '작을 미(微)'가 나란히 붙어있는 *미미(微微)인가 보다. 조이의 미미들이 그들의 고유한 이름을 찾게 되는 날이 기다려진다.

(*미미(微微): 보잘것없이 아주 작다.)



아마 오늘 밤도 조이는 꿈 속에서 새로 배운 단어와 표현을 조이의 언어 사전에 기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날이 갈수록 우리는 어제와 또 다른 조이의 성장을 보고 기뻐할 테고, 조이는 새로운 표현을 할 수 있음에 즐거워할 것이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골치가 아파진다고 많이들 말하지만,) 그렇게 기쁨과 즐거움의 시간들이 나날이 이어져 조이와 대화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우리의 세계, 그리고 조이의 세계가 만나 서로를 물들여가는 그날을 고대하면서.


"조이야, 너는 우리의 미미(美微)란다."

(*아름다울 미 美 / 작을 미 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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