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견과 함께 살기
“아아아악!”
누군가 괴성을 내지르며 병원에 뛰어 들어왔다. 입구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기 몸집보다 큰 개를 안고 황급히 달려오는 여자. 축 늘어진 개가 거의 숨이 넘어갈 듯 안겨있었고, 주인은 울부짖다 못해 비명을 토해냈다. 사람들은 웅성거렸지만 슬픔 앞에 아무도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뭐 저렇게까지. 다른 사람 생각도 좀 하지’ 속으로 힐난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물이 뚝 떨어진다. 가슴 깊숙한 속에 묻어두었던 설마가, 두려움이, 공포가 부서져 쏟아졌다. 억눌러왔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졌다. 흐느낌은 제어되지 않고, 꺽꺽 울려댔다. 이제는 나에게 쏠리는 시선들.
종대의 백내장 진행 여부와 수술비용을 상담하러 동물병원에 다녀온 길이었다. 그날 밤 여자의 울부짖음이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늙어가고 병들어간다는 사실을 이토록 선명하게 목격한 건 처음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내 곁에 영원히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하나의 병이 도미노처럼 몸 전체를 무너뜨려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니, 살아가는 게 무서워졌다. 관계를 맺는다는 건 언젠가 영영 이별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인생 자체가 비극인 것 아닌가.
종대의 눈에서 희멀그레한 것이 비칠 때, 어느 정도의 시력 감소는 예감했다. 하지만 뿌연 단백질 덩어리가 되어 검은 눈동자 전체를 막아버릴지 몰랐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이 갑자기 찾아오면 나는 어떻게 될까. 그 두려움 위에 병원에서 본 여자의 오열이 겹쳐졌다. ‘종대가 잘못되면 나도 그렇게 되겠지’. 상실감이 종대의 눈에 어린 그 불투명한 덩어리와 뒤엉켜 망상의 세계를 휘저었다.
쿵! 갑자기 거실에서 큰 소리가 났다. 나가보니 종대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침대에서 항상 종대와 함께 잤는데 경황이 없어서 방에 못 데리고 왔다. 혼자 남은 종대는 나를 찾다가 청소기에 부딪쳤고, 그 충격에 아슬아슬 놓여있던 청소기의 헤드 부분이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보이지 않아도 애타게 나를 찾는 종대에게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다시 한번 마이너스 통장을 헤아려봤다. 대학생 두 명의 학비와 생활비로 바닥난 통장, 한도까지 다 써버린 대출. 수술비 삼백만 원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현실이 처절했다. 필름처럼 지나가는 내 삶의 잔상들…. 2년 전 암이 발견되어 갑상선 제거 수술을 했다. ‘장기 떼어서’ 받은 암진단금이 입금되었을 때 속없이 좋아했는데. 한순간뿐, 빚만 늘어가는 인생이다. ‘내가 정말 살아야 할 사람일까?’ 신이 나만 저주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목을 조였다.
휴대폰이 울려댄다. 큰아이였다. 무음으로 돌려놓고 받지 않았다. 모두가 싫었다. 왜 나 혼자만 고민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짊어져야 하는지…. 한참을 번쩍대는 전화에 못 이겨 통화버튼을 눌렀다. “엄마, 울어?”. 자존심에 눌러 담고 있었던 그간의 일을 털어놓았다. 내 신상에 대한 서러움과 함께.
“엄마, 내가 보탤게. 종대, 수술하자!”, “무슨 돈으로….”, “과외해서 모은 돈이 있어.” 마냥 아이인 줄만 알았던 딸이 위로한다. 옆에서 듣던 막내가 한마디 한다. “나도 용돈 아껴 모을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이들의 말끝에서 문득 알았다. 나만 종대를 돌본 게 아니었다. 종대는 아픔 속에서도 우리를 껴안고 있었다. 보이지 않아도 서로를 느끼게 하며, 하나로 이어주었다.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또 어떤 결심이 필요할까. 오늘 밤도 여전히, 종대와 눈을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