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견과 함께 살기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종대의 눈동자에 스며들던 흐릿한 기운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들은 수의사의 한마디는, 그 불안이 현실임을 알게 했다. “당뇨성 백내장이에요.”
당뇨가 좀 잡힌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실명을 초래하는 백내장이라니.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또 하나의 폭풍이 밀려왔다. 일반 백내장보다 진행이 훨씬 빠르고 녹내장이나 포도막염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시력이 조금 남아있긴 하지만 사실상 앞을 보기 힘든 상태라고 했다.
며칠 전만 해도 날아가는 비둘기를 쫓느라 애를 먹이던 녀석이었다. 테니스공을 던져 달라며 짖던 게 엊그제인데. 왜? 왜, 왜! 이런 일들이 왜 갑자기 터지는 건지 답답하고 원망스러웠다. 언젠가부터 공을 놓치던 종대, 그냥 공놀이가 지겨워졌나 싶었다. 계단에서 휘청이고 벽에 부딪히는 걸 보면서도 흥분해서 그랬겠거니 넘겼다. 이름을 불러도 허공만 응시하는 모습에 역시 ‘바보 종대’라고 웃어넘겼는데…. 그 웃음이 이제 미안함이 되었다.
종대는 이미 백내장 3~4기. 수술을 더 늦추면 실명은 물론, 안구 적출까지 할 수 있다고 했다. 수술은 세 시간이 넘고 스테로이드제 때문에 혈당이 다시 치솟을 수도 있다고 했다. 더군다나 기저질환이 있는 노견에게 장시간 수술은 다른 병을 불러올 수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수술비가 걱정이었다. 입원비도 빠듯했는데 이제는 수백만 원의 백내장 수술비라니. 마음은 앞섰지만 바닥을 드러낸 지갑에 좌절했다.
하지만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 종대의 눈에서 희멀건 것이 비치는 순간, 어느 정도의 시력 감소는 예감했다. 그런데 그 뿌연 단백질 덩어리가 검은 눈동자 전체를 막아버릴 줄은 몰랐다. 미색 커튼이 내려앉은 지 닷새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새 서릿발처럼 굳어버렸다. 일부는 눈동자를 팽팽히 밀어내다 못해 수정체 밖으로 흘러나왔다. 흐릿한 액체가 눈 안을 떠돌며 염증을 키운 것이다.
공영 의료보험이 없는 세상의 그림자를 보려면 동물병원에 가보라고 했던가. 의료수가, 치료보장도 없는 세계에서 진료비는 오롯이 보호자의 몫이다. 가족이 된 이상 외면할 수 없지만 치료를 위해선 잔고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어쩌면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 경제적 여력도 등록 요건에 포함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면 애초에 입양 비용 자체를 웬만한 중형차 가격으로 책정을 하던지.
‘엄마가 돈이 없어서 미안해’ 밤마다 종대와 나란히 엎드려 눈을 맞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텐데도, 종대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눈동자 가득 터질 듯이 고여 있는 흰색의 액체 속에서 무언가가 유영하고 있는 듯하다. 혹시 저 기억 너머의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종대의 눈망울에 새겨진 하얀 물결의 잔흔을 헤아려본다. 조금이나마 지워지기를. 그렇게 기도하며 바라보다 보면 종대의 눈이 스르르 가늘어진다. 따라서 눈이 감기는 나. 며칠째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눈을 바라보다가 잠이 든다
오늘도 같은 기도를 한다. 내일 아침, 저 하얀 서릿발들이 기적처럼 녹아있기를. 보이지 않아도 나를 보는 너에게, 그 눈동자에 다시 빛이 스며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