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바보 종대 06화

엄마, 종대 시의원 됐어!

당뇨견과 함께 살기

by 규아

어느새 한 달, 종대 케어도 나름 손에 익기 시작했다. 인슐린 주사에 떨던 손도 익숙해지고, 약도 흘리지 않고 먹일 수 있게 되었다. 매일 30분 이상씩 산책을 시키자, 인슐린으로도 잡히지 않던 혈당이 서서히 내려앉았다. 사람이든 강아지든, 역시 운동이 최고의 처방이라는 걸 또 한 번 배운 셈이다.


어느 날 주말, 종대를 산책시키던 중이었다. “얘가 종대야?” 익숙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같은 아파트에 사는 ○종대 시의원이 서 있었다.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우린 한참을 웃었다. 그가 당선되었을 때, 아파트에 걸렸던 현수막, ‘○종대, 시의원 당선을 축하합니다’ 그 문구에 막내가 호들갑을 떨었다. "엄마, 종대 시의원 됐어" 온 가족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종대, 잘 모셔야겠네." 그 농담은 한동안 가족의 유행어가 되었다.


이 의원과는 첫 인연은 공식 회의 자리였다. 예민한 사안을 두고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중, 나는 불쑥 말을 던졌다. “우리 강아지도 종대예요.” 순간 정적이 흐르더니, 회의실에 웃음이 터졌다. “근데 오줌을 잘 못 가려서 혼내기도 해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저는 때리지 마세요.” 어색했던 공기가 누그러지고, 낯섦과 경계가 함께 녹아내렸다.


그 후로 아파트에서 종대를 산책시키다 마주칠 때면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종대의 안부를 묻곤 했다. 종대는 그렇게 또 하나의 인연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다. 하지만 조직 내 이야기는 전혀 달랐다. “강아지 이름을 일부러 종대라고 지었데. 아부하려고.” 함께한 지 10여 년이 넘은 반려견이었다. 그 사실조차 외면한 채, 사람들은 그럴듯하게 비틀고 꾸며댔다. 좁은 조직 속, 우물 안 개구리들의 상상력은 종종 잔인했고, 무해한 일상조차 기괴한 소문이 되곤 했다.


이 도시에 처음 왔을 때부터 나는 이방인이었다. 타지에서 왔다는 이유로, 이혼했다는 이유로, 일에 몰두한다는 이유로. 어느 순간부터 ‘딴 데서 온 게 주요 부서만 간다’는 욕심쟁이 프레임이 씌워졌고 아버지 같은 전직 시의장과의 관계도 의심받았다. 그는 엄마의 오랜 친구였고, 나를 딸처럼 챙겨줬지만 사람들은 “사모님이 알면 어쩌려고?”라며 수군거렸다. 억울함에 엄마 같던 사모님께 하소연하자 단호하게 돌아온 한 마디. “미친 인간들. 돌은 사람 얘기를 왜 신경 써요?”


그런 ‘돌은 조직’ 안에서 버티려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한직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두 달 후, 종대가 당뇨 진단을 받았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만약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종대를 제대로 돌볼 수 있었을까. 쫓겨난 게 아니라 나를 위한 탈출이었다. 바로 그 문 밖에서 종대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종대는 내게 많은 걸 물고 왔다. 기억을, 위로를, 새로운 세계를. 절망으로 기울어질 때마다 그 작은 몸은 나를 삶 쪽으로 끌어당겼다.


세상은 가끔 불운을 가장한 기회를 건넨다. 그걸 알아채는 건, 상처 너머를 바라보는 눈에 달려 있다. 이전의 나는, 개를 사람처럼 대하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당뇨견 카페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식단과 증상 변화를 기록하며, 종대와 대화를 나누고 공을 던진다. 그 과정에서 이름도 몰랐던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고, 우연히 마주친 행인과 웃음을 건넨다. 세상이 넓어졌고, 그 안에서 내 마음도 자라났다.


하지만 절망처럼 보였던 시간이 기적으로 바뀌기도 하듯, 지금 이 평온도 유예된 것일지도 모른다. 혈당이 안정되며 내려앉은 안도감 뒤로, 다시 불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서릿발처럼 꽝꽝 얼어붙은 기운에 자주 깨어나는 밤들. 잠결에 느껴지는 종대의 숨결은 여전히 따뜻하지만 어딘가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마치, 또 한 번의 폭풍이 다가오는 듯함 예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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