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견과 함께 살기
“희진이가 집에서 외롭데. 강아지 키우는 게 소원 이래.” 큰 애의 간절한 말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딸이 모은 돈에 맞는 강아지가 있는 애견샵은, 막상 가보니 사료가 쌓인 작은 가게였다. 시멘트 바닥에 이불을 깔아 둔 울타리 안에서 아기 시츄 두 마리가 정신없이 구르고 있었다.
그중 유난히 장난이 심한 새끼 시츄. 다른 강아지를 툭툭 치고, 덮치고, 다시 뒹굴다가…. 헛디뎌 쓰러지자 우리 셋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 만에 웃는지 모른다. 그 소리 하나로 서로의 마음이 조금 열렸다.
그렇게 그 아이를 사료 박스에 담아 데려왔다. 강아지를 안는 것조차 서툴렀던 우리는, 어설프고도 조심스럽게 종대를 가족으로 맞았다. 예상대로 종대는 쾌활했고 먹성도 좋았다. 막내는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달려왔다. 종대가 뛰노는 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고성이 잦아들었고 혹시 밟을까 걸음도 조심스러워졌다. 말이 없던 우리 식탁에 “종대가 자라면 어떻게 짖을까.” 하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종대는 그렇게, 닫혀있던 문들을 하나씩 열어 주었다.
그러나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종대는 웅크린 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사료는 그대로 남아 있었고 배변패드는 묽은 소변과 찔끔거린 대변으로 엉망이었다. 병원에 데려갔지만 돌아온 말은 냉담했다. “우리도 사체 처리하려면 곤란하니까 데려가세요.”
다시 집안에 드리운 적막. “이래서 사람이나 개나 정을 주면 안 되는 거였어.” 그렇게 운명을 원망하며 울었다. 들이지 말걸. 하지만 점점 ‘살려야겠다’는 오기가 치밀었다. 북어와 계란을 넣어 죽을 끓이고, 매실액과 꿀을 섞었다. 주사기에 담아 30분 간격으로 아주 조금씩 입에 넣었다. 휴가가 길어지자 회사 눈치가 보였고 아이를 데려온 사료 가게에 사정했다. 출근하는 동안만 맡아달라고.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지 가게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아지가 이유 없이 죽으면, 집안의 우환을 거둬가는 거래.” 큰애와 막내는 무당 같은 소리를 속닥였다. 재난처럼 덮친 집안의 변화 속, 그 작은 생명 하나에 온 마음을 기대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없어지게 되었으니 아무 의미나 갖다 붙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함께 앓았고 함께 위로했다.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는 가족 간의 벽. 그리고 종대의 병세에도 차도가 보였다. 주사기로 먹이던 음식을 아이스크림 스푼으로 떠먹이게 되었고 곧 사료 한두 알도 스스로 씹을 수 있게 되었다. 사지를 쭉 뻗은 채 미동조차 없던 아이가 배를 끌고 조금씩 이동하더니 한 두 발짝씩 걷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기적이었다. 종대는 다시 집안을 누볐다. 왕성한 식욕이 살아나고 꼬리를 흔들며 장난을 쳤다.
그렇게 가족의 고비를 넘기며 종대와 함께한 시간이 10년을 훌쩍 넘었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 사춘기, 입시까지 종대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대학생이 된 딸들이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발소리만 듣고도 문 앞으로 달려갔다. 아무리 오래 떨어져 있어도 종대는 기가 막히게 알아챘다. 우리는 간혹 과거를 회상하며 말한다. “종대 덕분에 집이, 집이 되었다”라고.
사실 종대가 시츄인지도 모르겠다. 발과 발목이 두툼한 걸 보니 믹스견인 것도 같다. 흔한 손 내밀기, 하이파이브 같은 개인기 하나 없는, 그저 먹는 것만 밝히는 바보 종대. 하지만 우리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다.
종대는, 우리 가족의 중심이다. 유난히 굴곡이 많던 우리를 조용히 이어준 아이. 우리는 그렇게, 종대라는 작은 이름으로 다시 가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