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견과 함께 살기
하루 이틀이면 나올 줄 알았던 종대의 퇴원이 미뤄졌다. 수의사는 종대의 혈당이 내려갈 기미가 없다며 호르몬이나 장기 이상, 염증성 질환 등 다양한 원인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혹시 쿠싱 증후군일 수도 있고요. 중성화 안 한 것도 영향을 줄 수 있어요.” 그 말이 가슴을 콕 찔렀다.
“중성화를 왜 해야 하죠? 길고양이도 아닌데요”, “요즘은 강아지도 수명이 길어서요. 나이가 들면 자궁이나 유선에 문제가 생기거나 성호르몬 관련 질환이 자주 나타나거든요”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성견이 되기 전에 중성화를 마친단다. 결국 나의 무지가 종대의 병을 키운 셈이었다.
하필이면 입원 이틀 뒤, 3박 4일의 출장이 예정되어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보다는 병원이 낫다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태어나 한 번도 집을 떠나본 적 없는 아이가 걱정됐다. 입원실에서 내 등을 꼭 안고 놓지 않던 종대. 그 아릿한 순간. 내가 없으면 자기가 어떻게 될지 아는 몸짓이었다. 아이는 분명, 불안과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종대와 나는 5일 동안 떨어져 있었다. 출장을 마치자마자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입원실에는 네모반듯한 수 십 개의 케이지들이 빼곡하게 놓여있었다. 강아지들의 짖음과 낑낑거림이 뒤섞인 공간. 그 속에서 종대는 가만히 웅크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놀라지 않게 조심스레 불렀다. “종대야….”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두어 번 더 부르고서야 눈을 가늘게 떴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눈. 꿈속 환청인 줄 알았던 걸까. 한참을 그렇게 먼 곳을 바라보던 종대는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다 문득,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눈이 동그래졌다. 놀라움과 반가움이 한꺼번에 터진 듯한 눈빛. 곧장 꼬리를 흔들며 케이지 문을 열라고 연신 고갯짓을 했다. 안절부절 문고리를 긁다가 허둥지둥 날뛰었다. 그 모든 몸짓이 말하고 있었다. 어서 나를 꺼내달라고. 집에 가고 싶다고.
케이지 문을 열자 온몸을 파묻으며 떨어지지 않았다. 종대는 집에 가고 싶은 그리움을 꾹꾹 눌러 참아왔던 것이다. 또다시 혼자 남겨질까 봐 내 어깨에 올라타서는 앞발로 등을 꼭 붙잡았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종대의 전부였다는 것을.
아이를 두고 올 수는 없었다. 며칠 휴가를 내고 통원 치료를 하기로 했다. 혈당 곡선은 내가 직접 그리면 될 일이었다. 마침 수의사도 종대의 혈당이 잡히지 않았던 이유를 찾았다고 했다. 쿠싱 증후군. 호르몬 이상이 고혈당을 유발한다고 했다.
퇴원하면서 혈당 체크기, 인슐린, 쿠싱 호르몬제를 처방받았다. 강아지도 우리처럼 병을 앓고,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치료받고 있었다. 동물 의료가 부족한 부분은 사람용으로 보완한다고 했다. 종대가 차는 실시간 혈당 체크기도 사람이 쓰는 기기였다.
사람과 개는 완전히 다른 종이라고 생각해 왔다. 어쩌면 집에 있는 인형 중 하나쯤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도, 고통도, 치료도 닮아 있었다. 감정은 더욱 그러했다. 이 아이들도 희로애락을 느낀다. 기쁨도, 슬픔도, 그리움도 안다. 상대의 감정을 읽고, 꿈을 꾸기도 한다. 한 침대에서 자다 종대의 잠꼬대에 깬 날도 많았다. 갑자기 웅얼대고 짖다가 느끼던 밤들. 그 모든 것들을 보아놓고도 나와 다르다는 벽에 갇혀 그 아이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종대의 당뇨가 그 벽을 허물어주었다. 평생을 함께 가는 병, 당뇨. 그 길을 견디고 살아내는 일은 종대와 나, 우리 둘의 몫이 되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함께 가야지. 종대가 내게 기대듯 나 역시 종대를 통해 삶을 버티고 있으니. 우리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세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