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바보 종대 10화

애도 유기견이에요?

당뇨견과 함께 살기

by 규아

큰 아이의 도움으로 종대가 백내장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안과 전문 병원은 예약이 밀려있었고, 한 달 뒤에나 수술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좌절했다. 종대의 백내장과 안구질환은 하루하루 급속도로 진행되는 상태여서 하루라도 미루면 안구를 적출하게 될지도 몰랐다.


수의사 선생님이 유학시절, 아픈 강아지를 앞에 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무력감 때문에 이 길을 택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이 사람이라면 종대의 긴박함을 외면하진 않을 거다'라는 확신이 들어 종대의 수술을 하루라도 빨리 서둘러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렸다. 감사하게도 선생님은 야간 수술을 감행했고 그 결과, 종대는 무려 6시간 이상의 수술을 잘 버텨냈다.


수술 후에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았다. 대기시간이 한 시간도 넘는 이곳에서는, 선한 눈을 가진 보호자들끼리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서로의 고충을 토닥이고, 공감의 눈빛을 나누며, 위로를 주고받았다. 세상은 유기견과 동물 학대 이야기로 시끄럽지만, 이곳엔 끝까지 함께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푸근한 온기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애도 유기견이에요?” 옆자리의 보호자가 나와 종대를 번갈아 보더니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악의 없는 눈빛이었다. 60대쯤 되어 보이는, 소녀 같은 그녀는 한쪽 눈이 없는 푸들을 품에 안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종대를 바라보니 웃음이 피식 나왔다. 며칠간 씻기지 못해 푸석한 털, 몇 달 넘긴 미용, 소독약과 인슐린 냄새가 섞인 꼬릿한 냄새. 영락없는 유기견의 몰골이었다. “수술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래요. 오래 함께 한 아이예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그녀도 따라서 미소지었다. 자기 강아지가 유기견이라 반가운 마음에 물었다며, 아이가 자꾸 아파서 마음이 무너진다고 했다.


안과 전문병원이라 그런지, 눈이 아픈 아이들이 많았다. 고개를 돌리니 종대와 닮은 시츄 한 마리가 벽에 부딪히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양쪽 눈이 없었다. 종대의 수술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저 아이처럼 안구를 적출했을지도 모른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 시츄는 부부와 함께 왔다. 보이지 않아 자꾸 부딪치지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싶어 하기에 그냥 다니게 둘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부부는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말했다. 너무 마음에 아파서, 그럴 자신이 없다고 했다.


무언가를 곁에 둔다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다. 함께 살아간다는 건, 생명의 무게까지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가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강아지가 뭔데, 병수발까지 해?”, “그냥 죽게 두지.” 처음엔 먹먹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키워보지 않은 사람의 말이라는 걸. 나는 그냥 웃으며 말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함부로 들이는 건 아니죠. 안 들였으면 몰라도, 들인 생명을 버리는 건 도리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모두가 그런 마음을 지닌 건 아닌가보다. 얼마 전 미용실에서 들은 이야기. 강아지를 비싸게 샀다고 자랑하던 신혼부부가 집을 비우고 사흘간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동안 혼자 남겨진 강아지는 양말을 삼켰고 물도, 밥도 못 먹고 끙끙 앓고 있었다고 한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상태로 병원에 갔지만,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돈이 아까워서 그 죽어가는 생명을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고 한다. 허세 부릴 때는 언제고, 불편해지자 손절하는 그들의 태도에 미용사는 몸서리를 쳤다.


생명을 장식처럼 사고팔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는 사람들. 그들은 정말 몰랐을까. 이 아이들도 감정을 느끼고 사람의 눈빛과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지. 분노가 치밀다가도 나도 모르게 죄책감이 밀려올 때가 있다.


내가 버렸던 흰 개, 백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얗고 뽀송하던 털은 잿빛으로 변해가고, 커진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짧은 줄에 늘 매여있던 아이. “이 집 것들은 왜 이렇게 더러워!” 백구를 향한 외숙모의 막말과 발길질은 나를 때리는 듯 아팠다. 나 또한 유기되었기에 그 옆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백구가 미웠다. 그놈의 개 때문에 내가 더 구박받는 것 같았다.


누추한 백구처럼 내 하얀 타이즈도, 에나멜 구두도 점점 빛을 잃어가던 시절. 끌려가면서도 자꾸 뒤돌아보던 백구에게 나는 소리쳤다. “어서 가버려.” 포기와 원망, 자책이 뒤섞인 그 때 나의 매정함은 아직도 가슴 어딘가를 아프게 친다.


요즘 종대의 눈을 소독할 때면 백구의 눈이 자꾸 겹쳐 보인다. 백구는 무슨 생각으로 나를 돌아봤을까. 갑작스러운 아빠의 죽음으로 고아나 다름없던 어린 소녀에게 살려달라고 했던 걸까. 아니면, 자기마저 사라지면 세상 어디 하나 기댈 곳 없을 것 같은 내가 걱정됐던 걸까.

keyword
규아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207
이전 09화오늘 잠시 쉬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