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13)
그 친구를 알게 된 것은 일 년 정도 되었다.
그리고 그 친구와 친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새로운 캐릭터를 알게 되는 것은 나에게는 재산 같은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알게 되면 그 사람과 꽤 단시간에 밀도 있는 만남을 가진다.
그걸 좋게 이야기하면 관찰이고, 그걸 로맨틱하게 이야기하면 관심이다. 그러나 그게 변질되기 시작하면 간섭이 된다. 간섭이 되기 시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거리두기가 된다.
이 친구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나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나는 재미나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극혐 한다.
배우들의 끼는 일반인과 달라서 우리들의 술자리는 늘 유쾌하고 재미나다.
일반인들이 행여나 이 술자리에 끼어 있으면 무슨 개그 콘서트나 코미디 빅리그 정도를 관람할 정도로 재미있어한다. 그래서 주변에 말을 잘하거나. 센스 있게 하는 후배와 선배들이 많다.
물론 비방용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욕도 센스 있을 정도다.
칠 년 전, 한참 동창밴드가 유행했고 동창생들을 만나러 갔을 때. 나는 내 나이의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살까 가 궁금했었고 그래서 잦은 만남을 가졌는데 그 동창모임들이 재미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는 이미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개그코드에 적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동창모임 중에서도 꽤 진지한 삶에 대한 고민들을 이야기하는 부류들도 있었지만 2인이 넘어가는 모임의 이야기는 어떤 모임이라도 진지해지기는 힘들 것 아닌가!
그래서 내 주변에 사람들 중에서 재미없게 이야기한다는 이유로 내게 면박을 받는 사람들이 몇 있다.
서두가 너무 길거나,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도 재미없게 이야기한다거나, 너무 낮은 톤으로 길게 이야기하거나, 너무 큰 목소리로 일관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 나는 극혐 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의 내용이 자신의 자랑이거나 무용담으로 끝내는 경우는 두 번 이상 듣기 힘들어진다.
이야기에는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고, 이야기는 표면적으로 코미디 장르였지만 그 안에 해학도 있어야 하고 그 안에 반성과 깨달음도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것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화자는 그걸 생각하고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듣는 내가 그걸 캐치하면 되니까.
연애를 하거나 썸을 타는 남녀의 이야기는 아무리 재미없게 이야기해도 재미가 있어진다.
그 이유는 이야기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과거의 이야기 안에 자신을 어필할 만한 내용을 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상대를 조금이라도 알아내기 위해서 그것들을 경청하기 때문에 재미없는 이야기를 해도 두 사람은 재미있게 듣는다.
그러나 일반적인 만남에서는 상대를 알기보다는 나 자신을 알리고 싶기에 서로 이야기 하려고 한다. 그래서 경청하는 사람이 없어지기에 재미있게 말하지 않으면 서두가 조금만 길어도 그래서?라는 말을 한다.
혹은 본론만 이야기해. 결과가 어떻게 되었어. 언제까지 이야기할 거야? 너 이거 안 웃기면 죽일 줄 알아!
뭐 이런 태클들이 들어온다.
나는 내가 꽤 재미나게 이야기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야기하면 모두 깔깔거리거나, 혹은 눈물을 짓거나, 혹은 깨달음을 얻거나.
그래서 내 주변에 사람이 많고, 혹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을 하거나 혹은 수다를 떠는 친구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을 여지없이 깨는 일이 생겼다.
이 친구는 내가 이야기하면 항상
그래서? 결론이 뭔데? 서론이 왜 이렇게 길어? 뭐 하나를 물으면 이십 분을 이야기해?
씨.. 바...
처음에는 뭐지? 지도 이십 분 넘게 한 가지 이야기를 해놓고. 나한테 왜 이래?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서론이 길었다.
나는 그 결과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런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그 에피소드는 충분히 재미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에게는 그저 관심 없는 서론에 불과했던 것이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왜 나의 이야기가 재미없을까? 나 이제까지 이런 이야기 안들어봤는데......
그리고 생각했다. 아...이야기는 한편의 연극과도 같다.
재미가 없는 극이지만 아는 배우가 나오는 연극에는 관람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에 지켜보는 맛이 있다.
스토리보다는 한 배우에게 집중해서 보기 때문이다.
드라마도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씬에만 집중하고 조연들의 이야기는 아주 재미있지 않으면 빨리 감기로 보게 된다.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면 그 사람이 한 사소한 행동 안에서도 나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를 생각하고 경청하지만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면 그 스토리의 힘이 중요하다는 걸
그 친구와의 수다에서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친구의 이야기도 엄청 재미나진 않다. 다만 내가 그 이야기를 듣는 이유는
나와 다른 경험을 가진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게 내게는 소재고 취재이기에 나는 잘 듣는 편이다.
그 친구도 꽤 말을 길게 하는 친구이다.
지가 하는 말은 긴 줄 모르고 내가 하는 말만 길다고 하는 친구인데, 그 친구를 통해서 나는 나를 보았다.
그동안 내게 재미없는 말 길게 한다고 욕먹은 많은 친구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고
내가 쓰는 이 대본의 힘이 이야기인가, 혹은 내가 썼기에 재미있는 건가를 반성하게 되었다.
이야기의 힘.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서론이 길지 않지만 궁금증을 유발하는 힘.
그 힘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