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언제나 엔딩은 쪽팔렸다. (5분짜리 드라마 대본 형식
s#1. 리사집, 작업실 / 저녁
모니터 화면으로 보이는 1 호남과 리사의 채팅
리사 - 죄송합니다. 저는 그쪽이 유부남인 줄 몰랐어요.
1호남 -........ 알고 계신 줄 알았어요. 죄송해요.
리사 - 아뇨 죄송은 제가 하죠. 언제 밥 한번 제대로 살게요. 연락 주세요. 캣휠도 조립해 주시고 집 청소도 해주셨는데
1호남 -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제가 유부남이 아니었다면 문제가 없는 건가요?
리사 - 아마도 시작은 해봤겠죠.
1호남 - 저 각방 쓴 지 십 년 되었어요. 부부사이 정이 없어요. 애 때문에 이혼 안 하고 있는 거예요.
리사 - 전 남자를 공유하는 질투심 때문이 아니에요.
리사의 전화벨이 울리자 전화를 받는 리사
1호남(E): 남들 다 만나고 다 바람 펴요. 애인 따로 있고요.
리사: 제말 이어서 할게요. 끊지 말아 주세요. 전 일할 때면 계약서를 써요. 그 계약서의 마지막 조항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란 대목이 있어요. 저 또한 도덕적으로 성숙한 사람 아닙니다. 다만 저로 인해서 제 작품에 관련된 사람들이 피해를 보면 안 되기 때문이에요. 우선 톡으로 이야기해요. 끊을게요.
전화를 끊고 다시 톡을 하는 리사
리사 - 그리고 제 심장이 정말 뜨거워서 그것 또한 감당하겠다는 마음이 있었다면 좀 더 고민을 했겠지만 아직은 그런 감정이 아니네요. 죄송합니다.
1호남 -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리사 - 편하게 친구로 보면 안 될까요? 가끔 밥 먹고 수다 떠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리사(NA): 나는 이 남자가 나에게 목적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목적이 아니라 약점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남자에게 헤어지는 연인이 하면 안 되는 가장 잔인한 말을 했다. 친구로 지내자는.......
톡창이 보이던 모니터 화면으로 보이는 영상
s#2. [플래시백] 양꼬치집 / 새벽
일어나 가려고 하는 리사를 붙잡는 전 남자 친구. 리사가 돌아보면
전남친: 우리 예전처럼 친구로 지내면 안 될까?
리사: (상냥하게) 친구가 되면 같이 밥도 먹을 수도 있고, 같이 술도 먹을 수도 있고, 예전처럼 밤마다 만나서 커피도 마시면서 연애 상담도 하고 참 좋겠다 그지
전남친: ???(이와중에 상냥한 게 무섭다 느끼는)
리사: 네가 애인을 사귀면 같이 만나서 이 새끼는 내가 자봐서 아는데 오랄 몇 번만 해도 일찍 싸버리니까 오랄은 하지 마시고,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그 가게 적자니까 더치페이 잘하시고 어차피 섹스해도 별 감흥 없으니까 세상 아까운 모텔비 쓰지 말게 하세요라고 말해줘?
전남친: ...........너..너.....(충격과 쪽팔림에 말을 못 하며)...
리사: 왜 더 해줘? 연인이었던 사람에게 친구 하자는 문장을 직역하면, 너 말고 딴년이랑 사랑하고 싶은데 너랑 누리던 일상을 포기하는 건 아까우니까 그건 그대로 해줘라는 말이야. 근데 너랑 나랑 누리던 일상이 뭔지 알아? 주말이면 맛난 거 만들어 너 직원들 밥 해주는 거 귀찮을까 봐 가져다주고, 조족근막염에 좋다는 신발이라고 하면 사다 주고, 불면증에 좋다는 거 있으면 주문해 주고, 쿠팡 주소란에 너네 가게 주소 입력해 놓고 써보고 먹어보고 좋은 건 다 주문해서 보내주고, 적자 나는 가게 매상 올려주고 싶어서 손님 데리고 너네 가게 매상 올려줬던 븅신 같은 호구짓이었거든.
s#3. 리사집, 작업실 / 저녁
영상이 사라지고 1 호남과의 채팅창이 보인다. 아무 대답 없는 1 호남에게 다시 채팅을 하는 리사
리사 - 제가 실언했습니다. 친구로 만나자는 말은 없었던 말로 할게요. 그럼 우리 여기서 마지막 인사해요.
1호남 - 당신이 저를 선택하지 않으면 저는 용기를 낼 수가 없습니다.
리사 - good bey
s#4. 리사집, 거실 / 저녁
맥주캔을 따며 소파로 가는 리사의 눈에 보이는 남자 슬리퍼
s#5. 차 안, 국도 / 저녁
조수석에는 슬리퍼가 담긴 파바 종이쇼핑백이 있다.
이어폰으로 통화를 하며 가고 있는 리사
리사: 그래. 내일 일요일이니까 내일 소개팅 당장 주선해 니가 그날 그랬잖아. 일주일에 한 번씩 소개팅 석 달 동안 시켜주겠다고! 그럼 열두 번은 시켜준다는 말이잖아.
덕진(E): 야 근데 솔직히 삼세번은 만나봐야 하는 거 아니야. 처음에 소개팅하고 일주일에 한 번 세 번은 만나보고 판단해야지 매주 소개팅을 어떻게 주선하냐! 한 달에 한번 그렇게 12번이면 일 년이네!
리사: 아~ 보자마자 싫은 사람을 어떻게 세 번이나 만나. 경우에 따라 다르지. 암튼 너 분명히 그날 그랬다. 못해주면 한건당 벌금 십만 원 주기로!
덕진(E): 근데 너 이 밤에 어디가?
리사: 그 새끼한테!
덕진(E): 삼일 남친?
리사: 응.
덕진(E): 너 그 남자 못 잊었니?
리사: 미쳤어. 그 새끼가 우리 집에 뿌려놓은 똥 가져다주러 간다.
덕진(E) :뭔데?
리사 :슬리퍼. 그 사람 사고로 다리가 불편했잖아. 그래서 그냥 바닥에 발 못 디뎌서 슬리퍼 가져다 놨거든
덕진(E): 핑계야. 그거 그냥 택배로 보내지
리사: 그 집 가게 마당에 던져놓으려고 가는 거야. 그게 아버지 유품이라고 했거든
덕진(E): 미쳤군. 넌 진짜 왜 그렇게 쓸데없이 착해. 그냥 무시해. 니가 받은 상처가 얼만데 죽은 남의 아버지 슬리퍼까지 챙겨. 그게 유품이겠니 그냥 안 버리고 놔둔 거지
리사: 어쨌든 입구에 던져놓으면 되지. 그리고 나 이거 일종에 의식이야. 머리 자르는 거. 불태우는 거 같은
덕진(E): 그런 의식을 하는 게 아직 마음이 남아 있는 거야
리사: 아니거든. 나 이제 되게 약게 살 거야!
덕진(E): 웃기네. 야 너 그때 내가 신던 신발 그거 편해 보인다고 조족근막염 있는 사람들이 신기 편한 신발이라니까 네가 그놈 사다 줬잖아. 근데 그놈이 지 편하게 신을 슬리퍼 가지고 오면서 너네 집에 다 떨어진 슬리퍼 봤을 건데 네가 신을 슬리퍼 하나 안 사 왔잖아. 넌 그때 알았어야 해. 그 새끼가 이기적인걸
[인서트] 리사의 다 떨어진 욕실 슬리퍼
리사: 맞네. (헛소리를 듣고) 근데 너 지금 이게 무슨 소리야?
덕진(E): 응 스크린
리사: 야!!!! 나 끊어!
덕진(E): 쪽팔린 건 아냐! 너 일주일 전에도 실연당했다면서 두 시간 울면서 통화할 때 그때도 새벽에 친구들이랑 스크린 왔을 때야. 쪽팔린 건 지금 이 통화가 아니라. 그 새끼한테 슬리퍼를 챙겨주는 지금의 니 모습이야! 당장 버려!
끼익 거리며 갓길에 서는 리사. 자신의 조수석에 있던 종이봉투를 밖으로 내다 던진다
그리고 다시 출발하는 리사의 차.
500미터 정도 가다가 다시 서는 리사. 내려서 걸어온다.
한참을 걸어오는 리사의 모습이 점점 가까워지고 그런 리사의 모습과 함께
보이는 떨어진 슬리퍼 봉투
리사(NA:) 오십 년을 살아온 내 인생을 돌아보면 사귀었던 사람들의 학력과 외모. 재력은 모두 달라도 헤어질 때 모습은 같았다. 다, 같은 이유로 헤어졌다. 그 말은 내가 사랑하는 방식에 분명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나는 두세 번의 이별 후에 알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와 맞는 그 사람을. 그런데 아닌 걸 알았다. 분명 나는 변해야 했다. 이 쓸데없는 슬리퍼를 밖으로 던지듯이 나는 조금 이기적일 필요가 있었고 나는 감정과 배려에 헤프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럴 수 없는 인간으로 태어났다. 나는 이런 사람으로 태어났고 사람은 쉽게 바뀌질 않는다.
슬리퍼가 든 봉투를 안고 돌아서 차로 가는 리사 (6화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