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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테토칩 Oct 12. 2023

S2. 원초적 본능

11. 시기심의 법칙, Envy


 시기심은 타인이 알아채기 어려운 본능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성인은 본인이 느끼는 시기에 부끄럽다 생각하며 일차원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회하여 분출한 시기심은 욕망, 분노, 슬픔 등의 모습으로 변해 타인에게 닿는다.


 시기심이란, 개인에게 중요한 영역에서 나보다 뛰어난 혹은 비등한 능력을 가진 상대보다 열등함을 인정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자극 삼아 발전하는 것이 시기심의 가장 이상적 효과겠지만, 오히려 고등 교육을 받은 집단에게 열등감이란, 기존보다 배로 치명적인 시기심을 불러온다.



 

오늘은 다학제 세미나가 열리는 날이다.

이번 세미나의 주제는 “심정지환자의 치료에 대한 고찰”이지만 실상을 헤쳐보면 흉부외과, 심장내과, 그리고 응급의학과의 기싸움이 맞붙는 날이다. 아마도 지난 심정지 환자의 치료 방향에 대해서 세 과가 모두 다른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일 것 같다. 세미나 실에 들어가며, 발표 준비를 하고 있는 각 과의 저년차 레지던트의(발표도 교육의 일부이기에 보통 저년차 레지던트들이 외다시피 하며 밤을 꼬박 새우며 준비한다) 비장한 얼굴을 보자니 이놈의 지긋지긋한 세미나가 시작도 전에 끝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tPA(혈전 용해제) 대신 ECMO(체외순환심폐유지기)를 먼저 쓰셨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

“현실적으로 ECMO를 달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tPA가 최선의 방법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

“tPA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complication(합병증)이 적었을 것 같습니다. “


 발표는 진작에 끝나 볼 빨간 호빵맨 같았던 레지던트의 얼굴이 허옇게 변한 지 한참이지만, 각 과의 수장, 그리고 교육위원 교수님들의 토론은 끝이 없다. 말투는 부드러우나 자세히 들어보면 본인의 주장을 방어하고 상대의 주장을 반박하는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저게 바로 고상한 싸움인 걸까, 혀 위의 말들이 부딪히는 소리에 귀가 시렸다. 이럴 거면 시술권을 넘기라는 내용까지 이야기가 흐른 걸 보니, 흥분은 최고조에 달은 듯했다. 그렇지만 그 뒤로도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야 길게 이어지던 세미나가 끝났다. 이번 다학제 세미나는 모름지기 각 과가 협력하여 질병을 예방 및 치료에 합의된 가이드라인을 도출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그것은 저 멀리, 다가갈 수 없는 존재였다. 준비 자료를 챙기며 각 과 교수님들이 다음 주에 다시한번 모여서 논의하자고 의견을 모으셨다. 하지만 이전에도 비슷한 세미나는 관심도가 떨어지자 세미나 일정이 미뤄지길 반복하며 유야무야 열리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주제 역시 이렇게 마무리 될 것 같다.


“선생님, 그래서 다음에 혈전증에 의한 심정지 환자 오면 어떻게 해요?“

“…그러게 말이다.“


후배의 물음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밤새 준비한 후배가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자 시무룩한 표정을 한다. 나도 덩달아 시무룩해졌다. 정말로 모르겠기 때문이다.


————

 

 병원에서 근무하다 보면, 질병의 치료법은 절대적인 하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똑같은 질병에 대한 치료도 상황에 따라 수술, 보존적 치료, 약물 치료 등 여러 가지이며, 이는 환자의 상태나 의료 자원 등에 따라 매우 달라진다.


 가끔 어떤 케이스를 복기하다 보면 ‘그때 이렇게 하면 예후가 더 좋았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든다. 수술했더라면, 혹은 수술은 하지 않았더라면. 의료진의 선택이 환자의 예후에 절대적이므로 최선의 진료에 대한 열망은 모든 의료진이 가지고 있는 자신감이며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존심이다. 하지만 이것은 가끔 상대, 질병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진 의료진과 부딪히며, 때로는 그들이 실수하길 기다린다. 협력해야 하는 의료진 사이의 경쟁은 아이러니하다. 자신의 의견에 대한 지나친 믿음은 다른 실력자들의 과업을 무시하고, 옳은 치료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치료의 방향이 본인의 주장과 달라지면 불공정한 외압에 의해 피해받았다고 상상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시기심이다.

 

 시기심은 상대에게 분개, 비난, 독설을 우선적으로 표현하게 한다. 경외, 존경심의 표현은 체면치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시기심이 비할 바 없이 깊어서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회화 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은 칭찬으로 포장하려 한다. 만약 선을 넘는 칭찬 같은 독설에 상대가 불쾌함을 표시한다면, 짓궂은 자신의 언행을 농담으로 포장하여 가볍게 사과하고 상대가 받아들이길 강요한다. 하지만 본능의 시기심은 이성의 가면보다 짙은 성질을 가지고 있어 티가 나기 마련이다. 그 누구도 진실된 칭찬과 거짓 칭찬으로 범벅된 독설을 헷갈리지 않는다.


 시기심을 제대로 사용한다면, 자신을 발전시키는 주춧돌이 될 수 있다.

 시기심의 상대를 이겨야겠다는 근시안적 목표를, 자아 발전의 거시안적 목표로 변신시켜 보자. 이 과정에서 자라나는 불안은 자기 발전에 도전하는 첫걸음으로 생각하자. 나의 시기심과 불만의 표적이 되는 상대를 보고 배워서 그들이 가진 장점을 가져오자. 시기심은 원초적인 본능임과 동시에 고등 동물이 가질 수 있는 최고로 발달된 본성이다. 이를 잘 활용하여 고차원적인 발달로 갈 수 있는 기회로 삼자.


[Reference : "인간 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 위즈덤 하우스, 2019]

[사진 출처 : “일곱 악덕 중 ‘시기’”, 조토,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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