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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테토칩 May 08. 2024

S2. 원초적 본능

16. 세대 근시안의 법칙


여러 사회학적 관점에 따라 ‘세대‘는 의미가 달라진다.


 생물학적 ‘세대’란, 생명의 출생과 사망하기까지의 기간을 의미하는 반면, 사회학적 ‘세대’는 가족의 구성과 와해까지의 기간을, 거시적으로는 동일 시대의 세대 집단을 뜻한다. 이 중, 우리가 쉽게 접하는 ‘세대’의 의미는 거시적인 세대 집단이다. 요즘 가장 영향력이 두드러지는 MZ 이전에도 세대가 있었다.  X세대, Y 세대, 밀레니엄 세대 등이 그것이며, 그 이전에는 386,486세대가 존재했다. 명칭은 시간에 따라 변하지만, 세대라는 시간 단위의 사회를 우리는 필연적으로 겪고 있는 것이다. 해당 세대에 속하는 개인은 각 세대의 독특한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으며, 전후 세대와 다른 점을 피력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세대 간의 고착화와 배타적 관점은 세대 간 유연한 교류의 제약을 가지게 하며, 미래 세대와의 소통을 어렵게 한다.




회식이란 문화는 참 신기하다. 표면적으로는 자율이지만 의무적으로 여러 세대가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만드는 풍습이다.


 전공의 때의 일이다. 이번 달은 회식이 없나 보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금일 데이 근무자들 시간 되면 저녁 먹자며 번개 회식이 잡혔다. 공식적인 근무 외의 시간은 개인시간이지만, 대부분의 전공의들은 그 시간을 비공식적인 회식에 헌납하곤 했다. 비공식적인 업무가 개인 사유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분위기 탓이었다. 회식은 그때마다 매우 분위기가 상이했는데, 순환근무를 하는 전공의들의 성향에 따라 회식 종목이 달라졌다. 나는 술을 즐겼기 때문에 회식 내 술자리가 잦은 편이었다. 그리고 어느 술자리와 같이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흘러나오는 여러 옛이야기들을 즐겨 듣곤 했다. 각자의 마음속에 담아둔 잊지 못할 환자 이야기나, 다른 과들과의 암투, 병원의 괴담 등 굉장히 흥미로운 야사, 비화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중 간혹 가다 술기운과 미화된 기억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비현실적인 무용담도 종종 흘러나왔다.


“아니, 1주일이 7일, 하루는 24시간이니 1주일은 168시간인데 어떻게 100시간을 근무해요?!”


 어떤 선배가 자신이 저년차 일 때는 1주에 100시간은 일했다고 막 말을 꺼낸뒤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공의 근무시간이 지금처럼 주 80시간으로 제한되지 않았으므로, 다른 과에선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응급의학과는 주간/야간근무로 나눠져 스케줄표가 나오는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흘러갔지만, 그 말을 들은 다른 선배는 그랬었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라면 하는 거지, 누구 하나 휴가 가면 남은 근무 채워야 하니까. 우리과에도 수련부에 제출하는 스케줄표 말고 이면스케줄표가 있었어. 이면 스케쥴표 없어진 거 진짜 최근이야. 그 때는 집에 갔다 올 시간도 없어서 병원에서 먹고 자고 했는데, 진짜, 다시 생각하고 싶진 않아... “

“으, 끔찍해. “

“에당 서면 일주일도 거뜬이지. “

“에당이 뭐예요?”

“에브리 데이 당직. 벌칙 같은 건데, 의국 규칙을 어기거나 하면 추가근무 하는 거야. 근무라지만 환자를 보진 않고, 의국에서 공부하거나 잡일 하면서 시간 보내는 거지.”

“와, 그냥 집에 못 가게 하는 거예요? 직장 내 괴롭힘 아닌가?“

“그땐 그게 괴롭힘이라고 생각못했어. 오히려 벌금 안 내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어(벌금 내는 과도 있었거든). 직장 내 괴롭힘보다는 추가 교육이라고 자신을 세뇌했던 것 같아. 그러게,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그런 게 없어졌더라? 아주 좋아졌어~”


불과 몇 년 전에도 존재했던 과거의 문화(라고 하는 괴롭힘)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지금은 없어져서 다행이라지만 선배들의 표정은 뭔가 아쉬워 보였다. 조심스럽게 이어지는 선배의 말은, 응급의학과처럼 압박이 심한 와중에 정확한 결단을 내리기 위해선 강한 정신력이 필요한데, 지금 아이들(후배 전공의들)은 너무 약하게 자라는 게 아쉽다고 했다. 물론‘요즘 세상이 달라져서 이런 극단의 스케줄이 아니어도 잘 교육할 수 있지’라고 말을 덧붙였지만, 이미 구관이 명관인 게 확실한 그들은 이전의 극단적이고 살인적인 근무 상황에서 생성되는 좀비 같은 생명력, 약간 미쳐있는 듯한 정신력, 남들에겐 예민하기만 한 카리스마를 그리워하는 눈치였다. 나의 반응이 미적지근 하자,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넘어갔고 몇 잔의 술을 더 마신 뒤, 회식은 끝났다.


 이런 회식이 몇 번 더 되풀이되면서 우리가 고년차가 되었을 때 비인간적인 문화는 지양하자고 다른 동기들과 몇 번을 다짐했는지 모른다. 물론 몇 년 뒤의 나와 동기들을 평가하는 것은 다음 세대의 전공의들이 몫이며 그들의 눈에는 우리나 더 위의 선배 들이나 똑같은 구세대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우리를 보면서 ‘우린 그러지 말자’라는 말을 되뇔수도 있다. 어쨌거나 조금씩 변화하는 의국 문화를 보며, 아무쪼록 이 방향이 옳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식인들은 어떠한 상황에 대해 분석하고 자기 의견을 생성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기성 세대는 그 의견을 피력하는데 익숙하다. 과거의 유산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 등을 토대로 합리적인 판단이라 생각된 의견을 토대로 심판하거나 훈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적인 행동이 아니라, 관습에 틀이 묶인 낡은 시대정신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변화를 느끼고, 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해야 우리가 아닌 내 다음 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기성 세대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미래는 그들의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옳다 그르다를 따지기 보다 이후 세대를 파악을 먼저 하는 것이 우선이며, 그다음에 이것이 그 후대에 끼칠 영향이 무엇일지, 경험과 지식에 빗대어 대응해야 한다.

 결국 역사는 반복되며, 우리가 생각하는 당찬 미래의 세대들도 그들의 다음세대에 거침없이 비판적인 판단이 이뤄질 것이다. 이제 우리는 모든 세대가 그 세대만의 특징이 다 다르며, 그에 대한 장단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중요한 것은 그 차이를 단점으로 착각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대차이와 변화를 인식하고, 각 세대를 유연하게 이으며, 나아가 앞으로 어떠한 세대가 출현할지 가늠하는 것이 경험한 ‘시간’이라는 자산에서 우러나온 혜안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내가 속하지 않은 모든 다른 세대에 겸손해야 한다.


[Reference : "인간 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 위즈덤 하우스, 2019]

[그림 출처: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다비드, 루브르 박물관,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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