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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놀기

독일에서 취미생활이란...

by 포테토칩


독일에 대한 가장 대중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예를 들자면, '독일은 재미없다', '놀 게 없다' 등등이 있을 겁니다. 어느 정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독일에 사는 이유는 '그럭저럭 찾아보면 즐길거리'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처음 독일에 도착해서 유럽의 정취에 눈이 돌았던 1달 정도가 지나고 나면, 독일 생활이 지루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일단, 오후 6-7시면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기 시작하고, 주말에는 마트가 안 하니, 퇴근하고 난 오후 시간에는 대부분 집에서 가족과 보냅니다. 물론 대도시에 살거나,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는 곳이라면 (위험하지 않다는 전제하)에 밤늦게 까지 밖에서 보낼 수 있지만, 유흥가나 주점이 한국만큼 접근성이 좋지 않아요.


한국 살 때는 저녁에 심심하면, 운동가 거나(헬스장 10시까지), 마실 나가거나(24시간 편의점), 놀러 가거나(영화 / 마트 구경 / 도서관), 사람들 만나거나(술집, 커피숍) 등등 집 밖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았는데 여기서는 쉽지 않습니다. 걸어서 마실 가서 치맥 할 수 있는 그런 주택단지 상가가 없으니(있어도 치맥이 아니라 케밥...), 저녁 시간이 너무 지겹습니다. 넷플릭스 정주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독일 TV는 알아듣는데 한계가 있고...


그런데, 그래도 1년이 지나고 나니, 적응만 한다면 즐길 게 많습니다. 동아리나 클럽(Verein : 운동 / 언어 / 뜨개질 / 봉사활동 등)을 들어서 활동하기도 하지만, 독일은 혼자 놀기 혹은 가족과 놀기 좋은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자극적이진 않지만, 꽤나 아기자기하죠.


1. 각종 공휴일과 축제?

테마에 맞춰서 놀아봅시다.


'오늘부터 2주일간 방학입니다'

12월 학원을 다닐 때,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약 2주간 방학이 주어졌습니다. 특이하게도, 독일은 성탄절을 기점으로 성탄이브(성탄 전날이니까) - 성탄절 - 성탄다음날(선물 풀어야 해서)까지가 모두 쉬는 날입니다. 12월 31일도 Silvester라고 부르며 다음 해를 위해 새롭게 마음을 다지기 위한 휴일입니다. 하지만 '연말'이라는 테마(Thema)가 있다? 독일인들 미치기(좋은 의미로) 시작합니다. 12월부터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나면서, 모든 이야기와 놀거리, 삶이 '연말 연휴'에 집중됩니다. 마트에 가도, 10월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지고, '그린치' 디자인의 각종 제품들이 진열되고, 공연과 연극은 물론, 심지어 거리 벽의 그라피티까지 '즐거운 크리스마스, 행복한 새해'라고 쓰여있습니다.

그린치 양말. 연말 시즌에만 나오는 특별 상품입니다.
"Adventskalander". 12월 1일부터 24일까지 하루에 하나씩 까보는 작은 선물 달력.

특히 12월 초가 되면, Adventskalander 를 가족, 연인들에게 주고 받습니다. 성탄절에 선물 받는 것도 기분좋은데 매일매일 선물을 받으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보통은 초콜릿, 과자, 젤리 같이 작은 주전부리를 넣거나, 직접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마트에 가면 각종 테마로 Adventskalander 상품이 즐비합니다. 과자는 당연하고, 주전부리, 차(Tee), 위와 같이 레고(하루에 하나씩 해리포터 레고 굿즈가...!), 장난감, 화장품, 운동 용품...끝도 없습니다. 저는 이걸 보면서 독일인들의 기묘한 놀거리에 대한 집착을 엿보았죠.


이 외에도 휴가-특히 종교와 관련된 휴가가 많고, 거기에 잘 맞춰 놉니다. 부활절은 Osterferien이라고 불리며, 약 1주일 정도 휴가가 이어집니다. 가톨릭 국가인 독일에서 부활절은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축제이기도 하지만, 봄의 다산(多産)과 생명을 상징하는 달걀과 토끼라는 민속적 전통이 결합되어, 부활절 아침에 독일 아이들은 신발이나 베개 밑에 숨겨진 달걀이나 토끼 모양의 초콜릿을 찾는 이벤트를 즐깁니다.

부활절 토끼(Osterhase). 부활절에 저런 초콜릿을 많이 볼 수 있어요. 출처 : gettyimages.de


여기서 중요한 것은, 테마(Thema)가 있는 날이다?

그럼 십중팔구 테마와 관련된 축제나 볼거리 / 먹거리 / 놀이거리가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테마'가 있어야 놀 마음이 생기나 봐요(나는 그냥도 놀 수 되는데..).


어머니의 날, 여성의 날이니까 시내에서 여성들에게 꽃을 나눠주고, 브레멘(브레멘 음악대였으니까)이니까 매년 8~9월에 '음악축제'가 열리며 시내 곳곳에서 무/유료 음악제가 열립니다. 그것 외에도 날이 길어지는 여름에는 박물관의 날(Lange Nacht der Museen)이라 야간 박물관 개장을, 11월 말부터는 연말이니까 '크리스마스 마켓'을... 어떻게 생각하면 한국도 24 절기에 맞춰 먹는 음식이나 놀이가 있듯이, 여기도 일 년 내내 테마를 가진 축제가 계속 이어집니다. 비록 화려하지 않고, 내가 즐기고 싶을 때 즐길 수 있는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은근히 축제를 기다리는 '맛'이 있습니다. 소소한 즐거움이에요.


2. 집에서 가족과, 친구와 놀아봅시다.


아직 아날로그인 감성이 남아있는 독일은, 서로 시간을 나누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아요. 당연히 인터넷 게임도 많이 하지만, 보드게임이 엄청 발달해 있어요. 체스, 모노폴리는 당연하고, 보드용 '방탈출 게임'이나 숨은 그림 찾기까지. 연령과 인원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이 엄청 많습니다. 처음에는 '왜 컴퓨터 게임이나 휴대전화 게임을 안 하지?'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서로 별다른 배움없이 할 수 있는 보드게임류가 굉장히 많아요. 해보면 은근히 재밌고 (심지어 어려움), '저녁에 시간 가는 줄'모릅니다.

이건 보드게임 Adventskalender. 보드게임과 연말의 조합! 참 독일스러워요.

3. 취미를 챙겨보아요.

아무래도 '24시간 할 수 외부활동'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보니, 혼자 꾸준히 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합니다. 물론 영화, Youtube, 인터넷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집니다. 오후 4-5시면 모두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니까, 자기 전까지 5-6시간 시간이 나요. 쉬는 것도 좋지만, 쉬는 게 계속되니까 뭘 하고 시간을 보낼 지, 고민하게 됩니다.


- 정원 가꾸기 : 거의 모든 집에 작은 발코니라도 있습니다. 먹거리를 키우기도 하고, 철에 맞춰 꽃도 키웁니다. 정원이 있는 집은 잔디 가꾸기, 나무 가꾸기 등 목숨 걸고 합니다


- 운동 : 헬스장, 달리기 등 개인운동도 많이 하고, 축구, 테니스, 하키 같은 팀 운동도 많이 합니다.


- 강아지 산책 : 법적으로 하루에 1 - 2번 , 총 1시간 이상 해야해서, 아침 저녁으로 강아지들과 인사할 수 있어요.


- 요리 : 외식할 만큼 저렴하고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도 없고, 배달은 오래 걸리고, 그리고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대부분의 가정에서 요리는 간단히 데워먹거나 직접 해먹어요. 물론 싫어하는 사람들은 빵 + 햄 + 치즈 조합이 디폴트. (저게 끝. 아벤트에센 / 아벤트 브롯(Abendessen / Abendbrot) 이라고 부르는데, 굉장히 가볍게 먹어서 저 덩치에 기동력이 나올까, 했는데 나옵니다.)


- 베이킹 : 독일은 집집마다 파이/케이크 레시피가 있다고 할 정도로 케이크 굽는 거 좋아합니다.


- 스포츠 관람 : 90% 축구. Sports Pub에 가면 다들 열정적(무서울정도로 과하게)으로 즐깁니다.


그밖에도 뜨개질, 미싱, 독서, 잡지 읽기, 여행, 악기 연주... 다양하게 즐길거리들을 찾습니다. 잘 모르겠다? 여기도 한국 문화센터 같은 곳이 있기 때문에(Volkshochshule, 독일어 강습이 열리는 그곳) 거기에서 알맞은 클럽이나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만의 취미를 찾으면 됩니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는 불규칙한 근무시간 때문에, 잔업 및 회식 때문에 9시 ~10시에 퇴근하는 게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을 쪼개어 밤늦게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운동을 하기도 했지만 항상 시간에 쫓기는 취미나 여가 생활을 즐겼던 것 같아요. 클래스도 원데이 클래스를 듣지, 어른을 위한 취미학원도 많지 않고요. 친구를 만나도 밥 한 끼에 커피 마시면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됩니다. 하지만 독일은 아무래도 여유 시간이 많다 보니, 어른을 위한 여가 학원도 동아리도 많고, 친구를 만나도 하루 잡고 길게, 시간에 쫓김 없이 즐깁니다. 물론 가끔 너무 느리고, 느긋한 생활양식에 '얘네는 성취감이라는 게 없나? 성공에 대한 원동력이 없나 보네?' 라는 생각이 들지만, 은퇴하고의 삶을 꿈꾸며 열심히 일하는 우리와, 적당히 일하며 현재를 즐기는 이곳의 문화 차이인 것 같아요.


일할 때도, 놀 때도 화끈하게 노는 한국과, 밍밍한 것 같은데 은근은근 잘 즐기는 독일.

일단 양쪽 다 저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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