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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언어 시험 준비하기

독일 의사가 되기 위한 마지막 시험

by 포테토칩

2025년 10월 6일.

그러니까, 제가 작년 11월 말에 도착했으니 일 년이 조금 안된 지난 10월, 드디어 시험을 치렀습니다. 6-7개월이면 시험을 치르고 지금쯤 일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꽤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한국에서의 면허(국가 공인 면허 포함), 대학 졸업장은 유럽에서 바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영사관 / 대사관에서 아포스티유(이 서류가 진짜임을 '국가'에서 보증합니다!라는 확인서)를 받았다고 해도, 그 서류가 '진짜'일뿐, 그 내용이 유럽 기준에 맞는지는 모르거든요. 제 면허가 아포스티유를 받는다 한들, '한국의 진짜 의사 면허'일뿐이지 그것이 '유럽(독일을 포함한 Euro에서는 면허를 공유합니다)'의 의사와 동등한 면허로 효력을 받을 수 있는지는 차차 알아봐야 합니다. 그것을 '동등성 평가(Annerkennung)'이라고 하고, 면허 / 대학 졸업장 / 자격증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평가가 이뤄집니다. 서류만으로 처리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추가적인 시험, 언어 능력 등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독일은 추가 시험이나, 수련이 필요 없대."

지난 10여 년 간, 독일은 줄어드는 인구 정책의 일환으로 다른 Euro 국보다 개방적으로 '고숙련 기술자들의 이민'을 장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고숙련 기술에는 의료도 포함됩니다. 독일의 의료, 특히 의사는 호봉제(개인 병원이 있다면 모르지만, 응급의학처럼 어느 병원에 고용될 경우는 특히 더)이기 때문에 '독일에서 공부한 의사들'이 추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인근의 Euro 국가, 미국, 호주 등으로 이민 가기 때문이지요. 어쨌거나 다른 나라에서 일을 할 때, 추가 수련이 필요 없다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그리고 제10여 년 간의 경력이 모두 인정될 경우, 여기서의 호봉에 맞춰서 월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위의 도식과 같이, 외국인 의사가 독일에서 일하려면 서류 준비하고, 최소 전문언어시험만 보면 됩니다.

전문성 시험은 의사국가고시 같은 것으로, 동등성 평가를 대신하며, 통과 시 바로 면허인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제 '전문의 경력'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저는 전문언어시험만 보고, 동등성 평가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브레멘은 1년 정도 걸린다고 해요). 전문성 시험 같은 경우는 국가에 따라, 해당 국가의 의료 교육체계가 독일의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될 경우 반려될 수 있습니다(인도네시아 친구는 반려됐다고 함). 한국은 아직 그런 말이 없는 것 같아 일단 시험을 치고, 동등성 시험을 기다려 보는 루트를 선택하기로 합니다.


4월 초, 독일어 시험 합격증서를 끝으로, 기본 서류를 인터넷으로 제출한 뒤, 4월 중순, 브레멘 '여성 건강국' 공무원과 인터뷰를 잡았습니다. 이때는 간단한 인터뷰(왜 독일에 오나)와 최소한의 서류 실물 대조 (여권 / 가족관계증명서 / 기본증명서 / KMLE(한국의사국가고시) 합격증 / 의사면허증 / 범죄회보열람서 / 독일어 자격증)가 이뤄집니다. 이때의 서류들은 전문성 시험을 보더라도, 최소한으로 필요한 서류들입니다. 이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우편으로 편지가 한통 오는데, '동등성 평가할 것인 지, 전문성 시험을 볼 것인 지 정해서 알려줘'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동등성평가를 할 것이기 때문에 '동등성 평가 진행하겠음'이라고 쓰고, 나머지 서류들을 챙겨서 '원본'을 우편으로 보냅니다. 4월 초에 인터넷으로 제출하긴 했는데, 일단 원본을 내라고 하니 우편으로 다시 보내줍니다. 이때, 이전에 번역한 서류 중 잘못된 곳을 확인해서 재번역하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고, 5월 중순에서야 서류 제출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면 '여성 건강국' 측에서 '시험 보고 싶을 때 연락하면 시험 날짜 정해줄게!' 하고 알려줍니다. 이때 바로 시험을 신청해도 되지만(브레멘은 어차피 시험 신청한 뒤 3-4개월 뒤에 시험 볼 수 있음), 저는 좀 쫄려서 + 9월에 한국에 갔다 올 일정이 있어서 넉넉하게 7월쯤 신청했습니다. 이때, '빈자리가 있다면 빨리 보고 싶습니다'라는 걸 체크하는 칸이 있어서 했는데, 이 경우 피치 못할 결원으로 비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만, 비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요. 어쨌거나 독일에 처음올 때 계획보다 늦춰졌지만,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일찍 봤으면, 합격 못했어요...


서류를 내고 나면, 시험 준비를 시작합니다.

브레멘에는 2-3개의 어학원에서 별도의 FSP 시험 코스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보통 2-3개월 집중 코스이긴 한데, 제가 다니던 학원은 중간에 문제가 생겨서 코스가 없어졌어요(말하기도 싫음). 정말 당황하고 화도 나고,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친구의 추천으로 인터넷 강의를 듣기로 했습니다. 시험 시뮬레이션 형식으로 진행되는 인터넷 강의는 다른 사람들이 어디를 힘들어하는지, 어떤 유형들이 있는지 모든 질병에 걸쳐 내가 원하는 시간 대에 진행할 수 있어서(녹화본 있음), 오히려 더 효율적이었습니다. FSP 시험 준비는 지정된 학원의 경우(이런 경우 보통 4개월 이상코스, 한 달 800유로 정도임. 인터넷 강의 / 실강 모두 해당) 국가에서 보조해 주기 때문에, 시간만 잘 맞추면 무료로 들을 수 있지만 제가 시험을 준비하려고 할 때, 학원비 보조가 되는 실강을 가진 학원이 없었고, 국가 보조를 신청하는 인터뷰를 잡는데 2개월 이상이나 걸려서, 보조는 포기하고 그냥 인터넷 강의로 진행했어요. 제가 들었던 인터넷 강의는 6개월에 300유로가 조금 안됬으니까 저렴한 편입니다.


시험의 포인트는 '정확한 독일어', '의학 전문용어와 일반 용어 간 자유로운 변경', '의료 지식' 순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일단 엄격한 독일어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먹었냐, 밥?' 정도의 문법 틀리는 것은 일상 대화나 일반 독일어 능력시험에는 허용되지만, 이 시험에서는 큰 감점요소입니다, 발음도요.

그리고 '팔 부러짐'과 '요골골절' 등을 독일어로 빠르게 바꿔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쪽은 환자 설명용, 다른 쪽은 의사끼리 대화용이죠. 의료지식이야, 어떤 병인지 알아만 낸다면 '피검사하고, CT 찍고, 필요시 수술' 정도로 말하고 마무리할 정도입니다. 사실 저는 응급의학과였기 때문에 질병을 파악하고 치료계획 짜는 덴 특화되어서 의학 지식 쪽에서는 어려움 없이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독일의 주(Stadt)마다 텔레그램에 KP/FSP 준비반 그룹이 있는데, 그 그룹에서 이전 시험문제들 파악이 가능합니다. 저도 우연한 기회에 친구가 초대해 줘서 들어갔는데, 거의 시험문제 유출일 정도로 자세하게 증례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보통 20-30개 내외의 증례가 있고, 저도 마지막 2-3개월은 그것만 준비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저 중, '정확한 독일어'구사였습니다.

일단 발음이 문제였어요. 발음이 안 되는 것도 많고, 이미 혀가 영어에 익어있어서, 영어식 발음이 종종 나온다고 지적을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2개월 정도는 10회가량 개인 과외를 받았습니다. 요즘엔 App이 잘 되어있어서, 한 언어 과외 App을 통해서 수업을 들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도움 되었습니다. 제 개인 과외 선생은 브라질에 거주하는 독일 의사였는데, 제가 익혔던(외웠던) 말투나 문장은 옛날에나 썼던 거라고 했습니다. 한국말로 치자면,


'환자 아무개, 11월 18일에 탄생. 좌편 통증으로 인한 약물 주입 필.'

뭐 이 정도? 그래서 그 과외 선생이 실제로 병원에서 사용하는 용어나 말투 등을 교정해 주었고, 독일 의료의 전반적 시스템이나 굴러가는 방법도 대충 알려주면서 '이럴 땐 그냥 이렇게 말해'라고 팁을 줬기 때문에 굉장히- 굉장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의학 전문용어는 따로 단어 플래시카드 App을 만들어서 익혔습니다(프로그래밍 만세). 처음에는 하루 300-400 단어, 나중에는 500-600개까지 하루에 쭈욱 보면서 눈에 익혔습니다. 물론, 이것도 나오는 단어만 나온다고 하니, 텔레그램을 주시하다가 그 단어들 위주로 정리했는데, 추려보니 약 500 개 단어 내에서 제출되는 것 같습니다.


7월쯤 까지, 혼자 인터넷 강의로 공부하다가 8월부터 개인 과외를 같이 진행했고, 9월 말, 드디어 시험 날짜가 정해졌다는 공식 우편을 전달받았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어 FSP 시험에 출석하겠다고 확인한 후, 10월 6일, 대망의 FSP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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