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독일에서 독일어 배우기

영어랑 비슷할 줄 알았는데...

by 포테토칩

한국에서 독일로 이주하기 전, 약 2년 간 독일어를 배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언어 배우는 걸 힘들어해서 서두르긴 했어요). 그리고 독일 도착 후 1년. 꼬박 1년을 독일어 학습에 쏟아부은 것 같아요.

인터넷 강의, 인터넷 개인 과외, 독학...

다행히 오기 전에 시험 하나를 통과했지만, 제가 통과해야 하는 수준인 B2가 아닌 B1이었고, 점수는 점수일 뿐, 말을 하는 것은 거의 갓난아이 수준이었기 때문에 오자마자 바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비자도 어학비자라 1주일에 20시간 이상(집중 수업(인텐시브 코스)), 3개월 이상의 수업을 들어야 합니다)


1. 어학원

브레멘에는 몇몇 개의 어학원이 있습니다.

어학원은 크게 사설 어학원, 국가나 도시에서 운영하는 어학원(VHS, Volk Hoch Schule, 모든 도시에 있음)이 있습니다. 저는 총 3군데의 학원과 인터넷 강의, 인터넷 과외를 모두 경험하였습니다. 사설학원 2군데, 국가 운영 어학원 1군데, 인터넷 강의 6개월, 그리고 발음 및 말하기 시험 준비를 위한 인터넷 과외.

모두 장단점이 있습니다.


사설은 비싸지만, 강의가 다양하고 진도가 빠른 방면, 국가가 운영하는 VHS는 강의가 적고, 조금 더 천천히 가르칩니다. 그리고, 매우 저렴한 대신, 빠르게 신청하지 않으면 선착순에서 밀려 등록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저처럼 시험을 빠르게 봐야 하거나 독일 비자 신청에 필요한 경우는 서비스가 빠른 사설 어학원이 좋지만, 여유 있게 천천히 그리고 자세하게 배우려면 VHS가 더 낫습니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사설학원과는 트러블이 있었지만, 그것을 제외해도 VHS 쪽이 선생 관리, 수업 체계 등에서 더 좋았습니다. 두 번째 사설 학원은 만족했기 때문에 사설은 케바케, 공설은 어느 정도 수업의 질이 보장된다 -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다른 도시들도 학원 사정은 대동소이할 것이고, 요즘에는 특정 학원의 인터넷 강의로도 인텐시브 코스를 수강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말'을 하는 게 목적이 이었기에 대면 강의를 듣기로 결정한 뒤 구글에서 보고 평점이 가장 좋은(제발, 구글 평점만 보고 가지 마세요! 요즘 외국인들은 Telegramm을 매우 활발하게 이용합니다. 지역별로 외국인들 그룹이 있는데 독일어학원 추천이나 후기 볼 수 있어요) 학원에 2개월 동안 B2 코스, 2개월 동안 FSP(의학전문어학시험) 코스를 등록했고, 그것으로 비자를 받았습니다.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시작된 독일어 학원 생활은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1시간은 개인 복습 시간), 월 - 금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렇게 매일 학원에 등원하다 보니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실전에서 독일어를 써야 하는 게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습니다.


"안녕? 나 오늘 처음 왔어. 일주일 정도 늦었어. “

"sdjgldfgk, ladgjagl! “

(대충 어서 와, 우리 반 학생 맞지?라는 뜻이었을 듯)


첫날, 2년 동안 배워서 귀는 조금 뚫렸다고 생각했는 데, 충격적 이게도 하나도 안 들립니다.

그때부터 진짜 독일어 공부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2. 시험공부

사람은 모름지기 목표가 있어야 효율 있는 공부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목표는 시험이지요.

문법이야 한국에서 주야장천 배웠으니 큰 문제는 없었지만 듣고, 말하는 게 꽤 힘들었던 저는, 도무지 혼자서 말하기 연습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었습니다. 다행히 같은 반 학원 친구들이 저와 같은 날에 7-8명이나 시험을 신청했고, 저를 포함하여 비자나 학교 입학, 직장 문제로 무조건 시험을 합격해야 하는 친구들이어서 매일 시험공부를 같이 했습니다. 일상 말하기도 늘었지만, 시험은 문법의 오류가 적고 고급진 단어를 써야 하는데, 이걸 매일 연습했죠. 그렇게 2개월 정도 벼락치기 한 뒤 '한국식 암기' + '매일 진행하는 말하기 시뮬레이션‘ + ’ 족보탄 문제(외국인 친구들이 많이 가지고 있어서 굉장히 도움 됐습니다)’을 통해 시험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암기로 말하는 것이 많긴 했지만, 어쨌거나 언어를 배울 때, 암기가 없을 순 없습니다. 초보라면 더욱 그렇고요. 지금도 그때 외웠던 구문을 잘 써먹고 있습니다.

학원에서 사용한 책들. 지금은 꼴도 보기 싫어서 싹 다 버렸습니다.


3. 드라마, 영화 독일어로 보기

시험 이후 저의 수준은 '외국인과는 대화가 가능'하지만, '독일인과의 대화를 하려면 독일인의 노력이 매우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독일인들의 속도를 제가 따라가지 못하거나, 제 발음을 독일인들이 못 알아듣거나, 아니면 책에서는 알 수 없는 구어체 때문에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1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 독일인과의 자연스러운 대화는 어렵습니다)


시험을 보고 나서, 원래는 바로 '의학전문어학시험'을 위한 수업을 들으려고 했지만, 이 정도 수준으로는 힘들 것 같았고, 시험 결과 발표까지 2개월 정도 시간이 걸리는 관계로 다른 어학 수업을 들으면서 생활 독일어를 조금 더 배우기로 했습니다. 학원은 별로였던 이 전 학원 대신 VHS(국가에서 운영)에 신청해서 들었고, 생활 독일어는 매체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뉴스나 라디오도 있지만, 의외로 정확한 아나운서의 발음으로만 듣기 연습을 하니, 일상 대화체를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물론 브레멘 악센트 때문이기도 함) 발음과 구문을 배우기 위해 독일어 드라마 시리즈나, 영화를 찾아봤습니다.


문제는 독일 영화나 드라마가 재밌는 게 많이 없다는 점입니다... 독일 오리지널 시리즈들은 우리나라가 구한말, 일제강점기 같은 배경인 드라마가 성행하는 것처럼 2차 세계대전 시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들이 많고, 스릴러 / 정치 / 드라마처럼 가볍지 않은 주제들이 많습니다. 그나마 독일에서 촬영한 'Doppelhaushälfte", "Türkisch für Anfänger"가 가벼운 일상 드라마 시트콤류인데 저랑은 취향이 맞질 않아서, 진득하게 볼만한 독일 영화나 드라마 고르는 게 어려웠습니다. 결국 할리우드 시리즈 중에서 독일어 / 한국어가 모두 더빙 / 자막이 있는 작품을 고른 다음에 2중 자막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공부했습니다. 물론 번역을 하면 듣는 대사랑, 스크립트랑 다르게 적혀있는 경우들이 있지만, 잘 찾아보면 똑같이 번역된 것들도 있어요. "외교관"시리즈, "블랙 도브"가 많이 도움이 되었죠.


이런 식으로, Chrome 확장 프로그램 중에 이중자막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두 가지 언어의 자막을 한 번에 볼 수 있어요.

이런 듣기 연습은 의외로 '영어식 라틴어 발음'에 익숙해진 우리의 귀를 뚫는 데 도움도 되고, 구어체를 많이 알 수 있습니다.


4. 독일인과 대화하기 - 친구 없이도 가능해요

드라마나 영화는, 구어체를 '듣는 연습'에는 굉장히 도움이 되지만, 문제는 내가 말했을 때 그 발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실제로 내가 듣고 써야 하는 연습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혀가 독일어에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독일어는 유창함과는 상관없이 상대방의 출신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아시아(중국 / 한국 / 인도 / 베트남 / 인도네시아.. 다 달라요), 프랑스, 영어권, 남미... 한두 마디 정도 들으면 그들의 모국어가 무엇인 지 각이 나옵니다. 'r' 발음이나 'ö'와 같은 독일어 특유의 발음보다 단어와 문장의 악센트와 톤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현지인과 외국인의 말투가 갈리는 게 신기합니다. 모 인터넷 어학원 선생이 말씀하시길 '톤과 악센트를 지배하는 자가 독일어를 잘한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딱 맞습니다.

독일어 선생에게 물어보니, 독일어를 말할 때 사용하는 구강근육이나 혀근육이 다른 나라 언어들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따라서 모국어가 비슷한 근육을 썼던 나라 친구들은 발음이 곧잘 나오는데, 한국을 비롯한 특히 동북아시아권은 힘들어한다고 하더라고요. 본인들도 익숙지 않으니, 똑같은 문장을 말해도 아시안의 문장은 이해하기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말이 어느 정도 나오기 시작하면, 발음 교정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원어민과 대화를 많이 해야 하는데, 학원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외국인들을 위하여 Sprach-Cafe(말하기 카페)라는 곳들이 운영됩니다.

은퇴한 독일인들이나 봉사자들이 이주 외국인의 독일어 학습과 연습을 위해 자발적으로 모임을 주최하는데, 독일 전역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브레멘은 꽤 잘 되어있습니다. 한 10-15개 정도의 단체가 있는데 각 모임 당 매주 1 ~2회 정도씩 교회, 카페, 학교 등에 모여 독일인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요. 주제가 주어지는 곳도 있고, 주제 없이 자유롭게 말하는 곳도 있습니다. 무료이고, 자유롭게 이뤄지다 보니 그냥 가서 이야기하고 돌아오면 됩니다. 잘만 짜면 1주일 내내 독일인과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 달 정도, 매일 나갔던 '브레멘 수펜엥엘(브레멘의 수프천사)'라는 봉사단체입니다. 실생활 독일어를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다만, 주제가 너무 깊지 않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집중적인 대화의 기회를 얻고 싶다면 결국 앱(App) 등을 통해서 독일인 친구를 만들어서 '통화'하거나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게 제일 좋죠. 다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일의 봉사활동 단체에서 일을 했었고, 전문의학언어시험 때는 개인 과외(Preply라는 앱)를 통해서 독일어 말하기를 연습했습니다.


아직도 전화받거나, 빠르게 말하는 독인 인들과 대화는 거의 알아듣기 힘듭니다. 단어 단어, 분위기와 눈치로 때려 맞추죠. 그래도 1년 전의 저에 비하면 굉장히 발전했고, 아마 일을 하게 되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영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비슷하지 않은 독일어가, 서류 작업보다도 독일에 살기에 가장 큰 걸림돌인 것 같습니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13화애증의 서류, 그리고 정착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