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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를 등록해야, 진짜 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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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테토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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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말 제가 독일에 도착했을 때, 한국인은 유럽을 무비자로 입국 후 90일간 체류할 수 있었습니다 (내년부터는 유럽도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는 말이 있더군요). 3개월 이상 머무를 예정인 사람들은 한국의 한독 대사관에서 해당 비자를 발급받아 입독하는 방법도 있지만,

"인터넷 예약 > 비자 인터뷰 > 비자 발급"


까지 최소 3-4개월 걸립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무비자로 입독, 3개월 간 해당 비자 서류 준비, 비자 발급루트를 꿈꾸고 그냥 입독하지요.

당연히 저도 입독한 뒤 독일에서 비자를 받을 생각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기다리느니, 여기서 독일어나 배우자는 생각이었을 뿐인데, 역시 서류의 나라답게 쉽지 않습니다

(만약 독일에 3개월 이상 머무를 예정이신 분들이 있다면 무조건 비자는 한국에서 받아오시길 바랍니다. 꼭. 제발).

알고 넘어가야 할 게,

비자(Visum)와 거주지 등록(Anmeldung),

그리고 체류허가(Aufenthalt).


외국인으로 독일에 살 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비자는 "입국"하는 국경에서 쓰이는 용도이고, 일단 들어오고 나면 어디서 사는지, 어떻게 살지 본인이 직접 신고하지 않는 한,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국가 간의 신뢰가 바탕이 될 때, 즉 불법이민자로 넘어올 확률이 낮은 나라들만이(한국/일본/미국/호주 등), '무비자'로 유럽 입국이 가능합니다.


'너희 국민이 뭘 할지 모르지만 90일 이후에 떠날 거 같으니까, 묻지 않고 들어오게 해 줄게'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이 '독일'의 국경을 넘는 방법은 비교적 쉽습니다, 한국의 여권파워를 몸소 느낄 수 있어요. (물론 저는 국경에서 집 계약서, 어학원 등록증, 그리고 90일 후 돌아갈 비행기표까지 보여준 뒤(간혹 보여달라고 한다고 함) 통과했어요).


일단 들어왔으면 끝이냐?

그럴 리가요.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독일이나 유럽에서 90일 내내 여행을 목적으로 정착하지 않고 돌아다닌다면 필요 없겠지만, 한 곳에서 2주 이상 머무르는 사람은 무조건 '거주지 등록(Anmeldung)'을 해야 합니다. 자국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여기에 있어'라고 독일의 정부에 알려주는 것이지요.

법적으로 '2주 이내'에 해야 하지만, 베를린처럼 큰 도시는 관청 예약만 2-3개월 걸리므로 잘 지켜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제 잘못은 아니잖아요.

안 하면 안 되나 싶은데, 그러면 체류허가는 물론이고, 은행계좌, DHL(우편), 하다못해 헬스장 등록 등 기본적인 생활에 필수적인 것들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서류가 최우선입니다.

(따라서 2주 안에 독일에 입 독하여 집을 구한다? 그리고 거주지 등록(Anmeldung)까지 한다? 이론상 가능, 실질적 불가능입니다.)


다행히 저는 독일 오기 전 우여곡절 끝에 집을 구했고, 안멜둥에 필요한 서류(비자, 집계약증서)가 있었기 때문에 2주 안에 관청의 테어민(Termin) 잡기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방법은 도시마다 다르지만 크게 아래와 같습니다.

브레멘 관공서, 출처 : https://dlz-bremen.de/standorte/dlz-mitte/

1. 인터넷 홈페이지로 예약

2. 전화 예약

3. 당일 선착순 줄 서기


한국에 있을 때, 인터넷 홈페이지로 예약하기를 했지만 제일 빠른 게 12월 셋째 주인가, 넷째 주인가. 한 달은 꼼짝없이 지나가게 생겨서 3번에 희망을 걸기로 했습니다. 어느 도시는 무조건 인터넷 예약만 되는 곳도 있다는데, 후기를 보니 브레멘은 당일 줄 서기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어학원 친구들한테 물어봤더니 아침 6시부터 줄 서면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입독 후 1주일째쯤, 새벽에 관청에 줄을 스러 나갔습니다.

택시까지 타고 갔는데, 제 앞에 이미 2 가족이 먼저 줄을 서 있었고, 추위에 떨면서 기다리다가 한 시간 정도 후에 문이 열리고, 경비아저씨에게 손짓 및 짧은 독일어로 안멜둥 테어민 잡으러 왔다고 물어봤습니다.


"왜 왔어?"

"안멜둥 하고 싶어"

"테어민 잡았어?"

"아니."

"그럼 테어민 없는 것은 이거야. 이 번호표."


8:45분에 오라며 번호표를 뽑아주더군요. 생각보다 수월하게 끝나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기다리다 8:45분경 다시 도착한 관청에서 저는


'이것은 익스프레스 번호표인데, 이걸론 안멜둥 못해. 무조건 테어민 잡아야 해. 아마 혼선이 있었나 봐'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브레멘은 직접 줄 서기가 안되더군요. 역시 수월하지 않습니다.

(추후 다른 외국인 친구들에게 들어보니 수요일 오전에만 된다는 말도 있더라고요. 이건 가서 확인해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학원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이에요. 독일은, 케바케의 나라!)


이렇게 된다면 꼼짝없이 12월 중순 이후에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면 체류허가(Aufenthalt)가 그만큼 늦어집니다.

무비자로 살아갈 날이 줄어드는데, 불법체류자 신분이 될지도 몰랐습니다. 혹시, 전화가 되려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뭐라는 지 모르겠는 독일어가 쏟아져 나옵니다. 겨우 연결된 교환원과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냐고 하니 자기는 영어는 못한다고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해 보랍니다. 좌절한 채 독일어 수업(학원을 다니고 있었음)을 듣다가 혹시 몰라서 쉬는 시간에 다시 전화를 하니 이번 교환원은 영어를 할 줄 압니다!


"안멜둥 예약 잡고 싶어."

"언제가 좋아?"

"가능한 한 빨리."

"내일 오전 11시에 있어. 괜찮아?"

"...? 내일!? (그렇게 빨리?) 응, 정말가능해."

"그럼 이메일 주소 알려줘."


이번엔 진짜 운이 좋았습니다.

결국 입독 1주일 안에 테어민(Termin)을 잡았고,

인터뷰에 무사히 들어갔고, 별 질문도 없이(어차피 독일어 알아듣지도 못했음) 여권과 계약서를 복사한 뒤 10분 안에 안멜둥이 끝납니다.

독일은 가톨릭 국가여서 간혹 가다 종교를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만(종교세 걷어야 해서), 그런 거 없이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더럽게 맛없었던 독일 커피. 전반적으로 커피가 맛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거 아이스 아메리카노입니다. 세상에

안멜둥을 끝내고 온 날,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서류 작업은 모두 다 진행했습니다. 인터넷 계좌 열기, DHL(우편) 등록하기, 체류허가증 서류 완성하여 브레멘 이민청에 서류 제출하기, 기타 등등.

입 독한 지 1주일도 더 걸리고 나서야,

이제야 '독일에 내려앉아'봅니다.

그리고 아직, 저는 체류허가를 받지 못했어요.

이것이 시작이었던 걸요...


P.S.

체류허가(Aufenthalt)와 비자(Visum), 거주등록(Anmeldung)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국에 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시스템입니다.

순서대로 한다면 다음과 같죠.


비자(내가 독일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줘) ➔

거주등록(나 여기 산다고 신고할게) ➔

체류허가(나 독일에 '학교/어학/취업 등'의 목적으로 머무를 수 있게 허가해 줘)


여행이나 단기간의 출장 등의 이유라면 비자에서 끝나고 한국인은 비자 없이 국경을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90일 동안 체류허가가 나옵니다. 이게 '무비자 90일'을 의미합니다) 큰 문제없지만, 어쨌거나 정착할 사람들이라면 비자가 있건 없건 거주등록과 체류허가를 독일에서 진행해야 합니다.


1년짜리 어학비자를 한국에서 발급받고 들어오면 체류허가가 필요 없지 않을까?


필요합니다.

법적으로 1년간 국경을 넘나들 수 있다는 의미이지, 비자가 체류허가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체류허가증이 바로 신분증(민증)이기 때문에, 관공서, 카드 발급, 애플페이, 그리고 인터넷 상거래(우리나라 인증서 같은 것)가 다 이 체류허가증과 맞닿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러면 그냥 비자 없이 입독, 거주등록, 체류허가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긴 한데, 3개월 내에 체류허가까지 나오기가 또 마냥 기다린다고 되는 건 아니더군요.

물론, 지금까지 보아온 한국인들은 90일 넘으면 바로 출국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마음 졸이는 면이 있어요.

(실제로 대사관 홈페이지에 가면 '완벽한 서류를 갖춰서 Aufenthat/Visum를 신청한 경우, 비자 발권여부가 나오기 까지는 자동적으로 임시 체류허가가 발부된 것으로 간주한다'라는 안내문이 있어요. 문의가 많이 들어왔겠죠)


의외로 다른 나라 애들은 쉽게 생각합니다.


터키인 : 그냥 버텨!

베트남인 : 이메일로 하루에 10번씩 독촉해.

인도인 : 걔네 참 느려. 왜 그런다니?

독일인 : 서류 작업 지연은 네 잘못이 아니니까 그냥 있어도 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버티고 (뭉개어서) 기다리라고 조언합니다. 심지어 독일인도요. 그런데, 그 마음 졸이기 싫으면 비자받고 오세요.


일단 거주허가증을 받았지만,

앞으로 길이 구만리입니다.

그리고 벌써 구만리를 걸어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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