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서류는 디폴트!
안멜둥(거주지 등록)을 마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집니다. 혹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나 전전긍긍한 게 엊그제 같은데, 예상보다는 빠르게 집등록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이제 남은 것은 이 안멜둥을 발판 삼아 진행해 봅시다.
집 등록 후에 진행한 것들입니다.
(1) 우편함 이름 바꾸기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우편함의 이름표를 바꿔야 합니다. "Mail Box Label" 변경이 안되면 서류, 택배가 반송되기 때문이에요. 우체국에 맡겨둘 테니 찾아가라고 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반송하게 되면 한국으로까지 반송비용을 내야 합니다.
집주인 밑으로 들어가서 주소에 "OO 씨 밑에 살고 있는 XX"라고 써도 되지만, 결국 이 나라는 서류의 나라이기 때문에 복잡함과 번거로움, 그리고 오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Mail Box Label 변경 가능한 집으로 이사해야 합니다.
대충 Anmeldung 할 수 있는 거주지면 Mail Box Label을 변경할 수 있는데, 에어비엔비나 렌트업체를 끼는 경우, 불가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잘 알아보고 해야 합니다. 우편함의 이름표 역시 내가 직접 바꾸는 게 아니라,
Hausmeister에게 연락 >
바꿔도 된다고 허락받음 >
이름표 바꾸기
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은 절차에 따라야 해요. 꼴랑 이름표 바꾸는데 2-3일 걸린다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쉬운 편이니까요.
+ 열쇠 받기
"폴(집주인), 집에 열쇠가 하나야?"
"응, 하나야."
"헉! 나 집에 두고 밖에 나왔는데, 어떻게 하지?"
"관리인한테 연락해 둘게, 근데 바로는 안되니까 옆집 초인종 눌러봐. 열어줄지도 몰라"
"알았어..."
독일의 대부분의 구축은 열쇠를 사용합니다.
깜빡하고 집에 열쇠를 두고 나온 경우 다른 사람이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거나, 이웃집의 초인종을 눌러서 열어달라고 해야 합니다. 관리인이 오는데 2시간 동안 밖에서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요.
열쇠 복사도 집주인과 Hausmeister의 허락 없이 진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독일인들도 집 주위 여기저기에 열쇠를 숨기고 다닌다고 해요.
(2) 비자 신청하기
저는 '무비자 입국 > 90일 내 비자(정확히는 Aufenthalt이지만 이해하기 쉽게 비자라고 합시다) 신청' 방법을 진행했습니다. 어학 비자에 필요한 서류는 ’ 여권, 사진, 신청서, 어학원 등록증(집중반으로 3개월 이상), 슈페어콘토(은행 잔고), 보험(공보험이 안되니 사보험으로), 그리고 Anmeldung 서류'였습니다.
브레멘은 비자 발급 신청 인터뷰 테어민(Termin, 약속) 인터넷으로 신청하지 못하고, '이메일로 서류 발송 > 인터뷰 확정 날짜가 적힌 답장'의 형식으로 진행되고, 그게 얼마나 걸릴지 모릅니다.
보통 6-8주 걸린다고 해서, 부랴부랴 이메일을 보냈지만 8주가 지난 1월 말까지 까지도 연락이 없습니다. 전화로 인터뷰를 예약할 수도 있긴 한데 연결이 굉장히 어렵습니다(팁 : 고객센터가 아침 8시에 오픈이면 대충 7:59에 전화하세요. 그러면 연결됨).
연결이 되어도 번번이 '네 이메일을 찾을 수가 없어. 우리가 연락 다시 줄 테니 이메일 남겨줄래?'라고 해서 이메일 주소를 10번은 남겼지만, 답장은 단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우편"으로 다시 한번 서류를 보냈고, 그제야 2주 만에 답장을 받았습니다. 독일에서는 우편과 같은 실물 서류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공적인 서류는 이메일보다는 종이 우편을 선호합니다.
2달 동안 불법이민자 될까 봐 엄청 마음을 졸였는데 다른 외국인 친구들은 이렇게 답하더군요.
터키 : 모든 일은 항상 모든 방법을 동원하라고. 여긴 독일이잖아? 나라면 처음부터 이메일과 우편을 같이 보냈어.
콜롬비아 : 그냥 방문해서 도와달라고 해. 근데 나는 안됨. (그럼 나도 안 되겠지...)
독일 :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의 잘못이 아니야. 보낸 이메일 잘 가지고 있어? 증거 가지고 있으면 됨.
(독일은 약간, 법을 지키기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존재하기 위해 법이 있다는 마인드로 살아야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여기까지도 케바케입니다.
저는 마음고생은 했지만 90일 내 비자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와 같이 온 친구는 이메일, 우편에도 답장이 없었습니다. 추후 제가 인터뷰하러 외국인청에 방문했을 때 알아보니 이메일이 '스팸'처리가 되어서 그동안 보낸 이메일들이 다 수신이 안된 거라고 하더군요 - 우편은 뭐 우체통이 뜯겼나 - 열받아서 이메일과, 우편, 팩스까지 보내고 나서야 '친구, 너의 친구 서류받았어. 검토할 테니 제발 팩스까지 보내지 말아 줘'라는 전화를 직접 받을 수 있었고, 그 후 3개월도 더 지나(결국 입독 5개월 만에 받음) 비자가 나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학을 떼고 집에 돌아가도, 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가끔 커뮤니티에 입독후 비자가 안 나와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는 질문이 심심치 않게 올라옵니다. ‘서류를 제출했으면, 답장이 올 때까지 체류해도 된다’가 정답이지만, 제 친구처럼 아예 서류접수가 안 된 경우도 있기 때문에 꼼꼼하게 다 챙겨보세요. 그래서 우편이 최고입니다.
(3) 각종 어플 가입하기
장장 5개월 동안 매일 아침마다 안 되는 독일어로 휴대전화를 붙잡고 비자 발급을 위해 더듬대다 보니, 다른 작업들은 매우 수월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Aufenthalt -주민증- 이 날아와야 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일단 AusweisApp(핸드폰이나 전자기기에 까는 공인인증서. 비자받고 나서 2-3주 만에 날아오는 Aufenthalt가 있어야 가능. 한국 신여권으로는 인식 안됩니다), 인터넷 뱅킹 카드발급(은행 계좌는 열리지만, 앱카드는 위의 AusweisApp을 통해서 가능), DHL(우편 : 없으면 생활이 귀찮아짐. 한국에서 보낸 짐 받을 때 주소만 있으면 되긴 하지만, 추적이나 맡김 서비스가 어려움. 그리고 추후 아마존이나 택배 시킬 거면 등록하는 게 매우 이득), 편의점/마트 앱 등등.
의외로 허술한 것 같으면서도 꼭 뭔 단계가 많은 지. 특히 Aufenthalt 가 나오기 전이라면 전자여권으로도 확인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어서 종종 애를 먹었기 때문에 애증의 비자받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번 '서류를 준비해 보자(https://brunch.co.kr/@975118b472f44cf/65)'를 보면 아시다시피, 한국에서 한 반년 간은 끊임없는 서류 작업에 학을 떼었고, 대충 A4 100 매정도 되는 두터운 서류들을 가지고 오면서 '이 정도면 됐겠지' 했는데도 역시 독일에 와서 보니 또 다른 서류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독일, 특히 관공서에 '제출(확인하고 바로 돌려주는 거 아니라 제출)'해야 하는 서류는 '공증 번역 인증'이 있어야 합니다. 한국에서 '아포스티유'를 받아 독일의 공문서로 만들고, 이것을
(1) 독일에 거주하는 공증된 번역인이,
(2) 번역하고,
(3) 공증하는 절차라서, 광화문 옆 공증 사무소 통해 공증 번역한 뒤 아포스티유를 받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번역과정을 믿지 못하는 것이죠.
저는 한국에 오기 전 브레멘 근처의 번역가님과 연락이 닿아서 번역을 의뢰드렸고, 제 서류의 양이 방대한 터라 거의 번역에만 3개월 정도 걸렸습니다(이것도 빠른 편입니다. 문의드렸던 다른 번역가분들도 최소 2개월 정도 말씀해 주셨어요).
일단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원본을 우편으로 보내드립니다. 잃어버릴까 봐 매우 떨리는 손으로 아침 일찍 편의점 DHL 창구로 Einschreiben(등기 개념)으로 보냈습니다. 나중에 완성되면 받으러 가면 됩니다.
의사 면허증/ 전문의 자격증은 영어로 발급받고(certification of good standing이라는 문구가 들어가려면 영어로 발급, 한국에서도 발급 최대 1주일 걸리니 서두릅시다), 마찬가지로 영문 공증번역가님께 부탁드렸습니다. 영어는 한국어보다 확실히 저렴하고 빠릅니다. 역시 수요와 공급이란...
그렇게 준비하고 서류 보내고 기다리고, 번역이 완료되어 직접 서류를 찾은 뒤(이것 또한 우편으로 하면 2-3일 걸려서 하루라도 빠르게 하기 위해 직접 갔다 옴), 서류에서 오류를 발견했습니다.
한국서 서류 다시 발급 →
대리인 통한 공증 및 아포스티유(인감필요) →
국제등기 →
다시 번역(일이 많아서 한 달 걸림) →
우편 수령(이때는 힘없어서 그냥 우편수령)
이렇게 서류 고치고 나서야 모든 서류가 완성되었습니다. 이때가 2025년 3월이었고, 그 사이 독일어 능력시험 2급 시험합격서를 손에 넣고 나니 드디어 독일 브레멘 여성-환경청에 '의사 면허 인증을 위한 절차를 위한 인터뷰'를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인터뷰일 뿐).
입독이 24년 11월이고 인터뷰가 25년 4월이었으니 딱 5개월 걸립니다. 그 전후로도 많은 서류 작업이 있었지만 한두 달 허덕이다 보니 익숙해집디다.
확실히 한국보다 느리고 여러 단계가 필요하지만, 일단 발급받으면 서류의 효력에 아무도 이의신청하지 않는다는 장점은 있습니다.
독일도 역시 자본주의 국가입니다.
서비스가 주요 사업인 경우, 서류 같은 거 필요 없이 바로 됩니다. 휴대전화(한국 SK/LG/KT 같은 대형 통신사 말고 Freank 같은 알뜰폰 같은 통신사) / 인터넷 뱅킹(오프라인지점이 있는 은행들 말고 온라인 위주의 은행들은 큰 금액은 적합하지 않으나, 초기라면 이것으로 충분) / 어학원 등록(당연. 돈만 내면 됨) / 슈페어콘토(비자 신청 시 재정확인서류) / 보험(이것 역시 비자용) 은 인터넷만으로도 가능합니다. 심지어 이런 애들은 문의사항도 한국처럼 24시간 온라인 채팅상담도 가능하다고요!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 못했던 우편이 도착합니다. 무려 독일에서 제 이름으로요,
"내 이름을 아는 곳이 어디지? 올 곳이 없는데...? “
알고 보니 독일방송(ARD, ZDF)입니다.
독일은 안 멜 둥 하는 즉시, 그 사람에게 방송 수신료를 청구합니다. TV나 인터넷 사용 유무에 상관없습니다. 무조건 한 집에 한 명이상이 방송 수신료를 내야 해요. 가족 중에 1명, 친구와 같이 산다면 그중 한 명은 3개월에 1회씩 약 55유로를 지불해야 합니다. WG(게스트하우스처럼 여러 명이 한 집에 사는 것)여도 마찬가지로, 한 명이 대표로 내고 1/n 등분해서 나눕니다.
갑자기 날아온 청구서에 놀랐지만 어차피 내야 해서 지불했습니다(물론 집값에 포함되었는데, 고지서 날아와서 집주인과 이랑 방송국이랑 이야기하느라 또 머리 깨진 건 안 비밀).
독일스럽지 않게 이런 건 또 친절하게 인터넷으로 지불하거나, 정기 구독, QR 코드로 지불하기, 우편으로 지불하기가 모두 가능하더라고요.
(역시 돈 받는 데는 어디나 빠릅니다)
우스갯소리로 '독일은 서류의 나라잖아'라고 할 정도로 모든 일에 있어서 서류가 필요합니다.
한국의 인터넷 발급시스템처럼, 직접 출력한 서류나 날인 혹은 서명이 없는 서류, 사본이면 ‘사본 인증’ 없이는 공식 인증 안 해주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학원 등록하고 그만둘 때도, 헬스장 등록하고 탈퇴할 때도, 인터넷 이메일이 아닌 서류로 영수증을 발부해 주는 나라입니다. 하도 서류 작업이 많으니, 우편으로 전달되는 서류를 스캔해서 보관해 주는 서비스까지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코로나 이후로는 이런 작업들이 많이 간추려졌지만 아직 독일은 서류와 절차에 나라입니다. 답답하지만, 인터넷의 나라에서 넘어온 한국인들이 파고들 틈새가 많다고 생각하면 무궁무진한 기회이기도 하죠 (실제로 앱으로 되는 것들 보여주면 기절하려고 함).
이제는 서류 작업에 적응만 하면 꽤 살기 좋다고 느껴지는 걸 보니 적응은 잘 마친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