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학습의 모멘텀

어떻게 원하는 영어를 낚시할 수 있는가?

by Younggi Seo


영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어휘력? 문법? 순발력? 네이티브와의 커넥션(연줄)?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 파블로 피카소




한국인에게 있어서 영어의 요체는 '암기력'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 번에 암기할 수 있는 양(chunking)이다. 영어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영어를 구사하기 위해서 실제 그 영어권 국가에서 쓰는 말과 글을 그대로 자신의 머리에 집어넣을 수 있는 인풋(입력)의 파워가 그 영어를 얼마나 그대로, 더 나아가 조합해서 아웃풋(출력)하는지를 결정하는 9할 9푼 9리다.



학원 네이티브로부터 받은 첨삭에서 콘텐츠 속의 원어민이 쓴 글을 그대로 훔쳐서 인용한 데는 빨간펜의 흔적이 거의 안보였고, 네이티브가 내뱉은 말에서 어설프게 단어나 구를 바꾼 부분은 빨간 줄이 쫙쫙 그였다. 그래서 이틀 걸러 다시 영작한 오늘 쓴 글은 다른 원어민이 쓴 글을 완벽하게 훔치리라 작정하고 똑같은 문형에 내용어만 바꾼 영작문을 제출했다. 과연 다음 주에 보게 될 이 영작의 결과는...



한 3, 4년 전에 이태원에서 중학교 동창과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토익점수 높은 거랑 영어 잘하는 거랑 인과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로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었다. 그 친구가 당시 변리사가 되기 전 따놓은 토익 점수가 750점(변리사 시험 자격 커트라인)은 넘겼는지라, 아마도 토익 점수를 어느 정도 따놓았긴 따놓았을리라 짐작한다. 그때 본인은 토익은 영어실력(회화나 어감 능력)과는 상관관계는 있어도(왜? 문장의 5 형식과 몇 가지 동사 쓰임에 대한 규칙은 서술적 지식으로 머릿속에 외우고 있다고는 전제하므로), 그것이 실력으로 비례하는 인과관계는 없다고 으름장을 놓자, 친구가 왈, 영어를 잘하면 토익점수도 높고 다른 영어 시험 점수도 다 높다는 식의 내가 한 말의 '대우' 명제에 '이'를 끼워 넣은 듯한 논리를 내세웠다. 어쨌거나 그 말은 당연히 맞는 말 아니냐?



대우 명제.png



내가 말하려고 했던 바는 토익 점수로 영어실력의 출력(쓰기, 말하기)을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상식에 대해서 말하려는 건데, 자꾸 다른 말로 토익의 가치를 절하하지 마라고 하더니만, 친구는 또 토익이나 영어는 '단어'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필자는 당시 시험 삼아 본 아이엘츠 모의고사에서 리딩 과목에서 7점대를 찍은 상태라서 단어 하면 아카데믹 분야의 어휘력에선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토익과 관계없는 영어 원서를 세월아 네월아 읊고 토익을 쳤는데 점수가 700점은 가뿐하게 넘게 나온다고 대꾸했다(사실 이 점수는 지금으로 보면 아주 약과일 거다.). 그리고 단어보다 맥락, 즉 문장 간의 관계(이야기의 흐름)를 통한 이해력(어감)이 더 중요하다(이 당시 내가 이것만 고집했던 것도 지금 봤을 때 반드시 옳은 것만도 아니다. 영어 원서도 본인이 알고 있는 문법 지식과 어휘량에 따라서 즉, 아는 만큼 이해된다.)고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도 계속 티카타가 했다.



지금 와서 서로의 말을 떼놓고 생각하면, 특정 영어 시험에서는 그 특정 분야의 단어가 중요할 수도 있고 혹은 출력을 위한 영어 시험과 영어 자체를 즐기는 목적에서는 맥락을 살필 수 있는 문해력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더 높은 산 꼭대기에서 영어라는 대양을 제대로 바라본다고 치자. 결국 제대로 된 영어를 피부로 느끼고 구사하려면 둘 다(어휘와 문장 이해력) 정복해야 한다. 단어도 분야에 따라서 어휘력의 수준이 천차만별이기에 친구가 한 말은 단지 토익에서 비즈니스 용어에 나오는 보편적인 용어를 많이 알면, 쉽게 점수를 얻을 수 있다고 일반화할 수 있겠다(하지만 토익의 끗발은 정말 보편적이지 않은 어휘력의 승부로 갈린다고 한다). 또한 단어의 중요성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문장의 구조(문법)와 그리고 이 구조를 아예 기본 베이스(체화)로 완전히 깔아놓고 어떠한 헷갈림도 없이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구나 절의 범위(청킹)를 넓혀서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정확한 해석력(어감)이다.



이를 테면 다음 문장을 보고 몇 초 안 걸려 해석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원어민이 가지고 있는 청킹(한 번에 들어오는 단어의 개수를 7개를 넘어감)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Only you can prepare your organization and invest in ways that take advantage of the rapidly dawning digital age.

당신만이 조직을 준비시킬 수 있다. (and only you) 디지털 시대의 급속한 출현을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에 투자할 수 있다.



여기서 and의 쓰임이 중요한데, 거의 대다수의 토익 응시자는 and가 접속사 but(서로 반대되는 문장 연결)과 전치사 according to('원인과 결과' 관계) 등과 달리 '그리고'라는 의미로만 연결되는 줄 안다. 하지만, 대등 접속사 and는 '그래서, 그러고 나서' 등의 다양한 문맥에서 다양한 뜻으로 쓰인다. 더 나아가 and의 진면목은 앞에 콤마가 있냐 없냐에 따라서 독자에게 신호를 보내는 역할도 한다. 앞에 콤마가 찍히고 and가 나오면 이게 마지막 항목이다(!)라는 방점을 찍는다고 보면 된다. 반대로 and 앞에 아무것도 없으면, 이것들 외에도 다른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위의 문장에서 and는 앞에 콤마가 없기 때문에 "~방법들에 투자하는 것 말고도 당신이 할 수 있는 게 더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and 뒤에 (Only you can)이 생략되어 있으므로, 병렬 접속사 역할도 한다.


이 문장을 정확히 해석하려면 문단 전체의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이 글은 빌 게이츠의 '생각의 속도(Business@The speed of thought)'의 챕터 5에서 마지막 단락 앞의 문장이다. 전체 문단은 아래와 같다.


The digital world certainly makes it(앞 문단 내용) tough and uncertain for business, but we will all benefit. We're going to get improved products and services, better responses to complaints, lower cost, and more choices(이거 이외는 없다!). We're going to get better government and social services(이거 말고도 있을 수 있다.) that cost a lot less. This world is coming. A big part of it comes through business using a digital nervous system to improve their processes. A digital nervous system can help business define itself and its role in the future, but success or failure depends on business leaders. Only you(business leaders) can prepare your organization and invest in ways that take advantage of the rapidly dawning digital age.



그러면 정확한 해석이 되었다는 전제 하에 읽고 듣고 단 번에 그것을 내뱉고, 쓰는 것(출력은 입력과정 이후의 부산물일 뿐이다.)까지는 조금의 인지과정을 반복한다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이게 '이해력'이다. 완벽히 이해하면 억지로 쥐어짜며 암기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영어 연설문 많이 외워봤자, 연설 끝나면 뇌리에서 사라지는 까닭은 뭘까?). 살면서 수백, 수천만 번 들어서 굳혀진 용례의 쓰임이 몸과 입으로 체화된 원어민과 달리 한국인은 그것을 한국어 어감을 빌려서 정확하게 해석해서 이해해고, 문법이라는 메타 지식(지식의 지식)을 빌려서 구조를 파악하고 쉽게 암기할 수 있다.



이것을 한 마디로 일반화하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익숙함'이다. 영어식 어감과 논리에 익숙해지는 사고의 변환 과정이 한국말의 적당한 어감을 빌려서 이해가 된 후 비로소 통째로 암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기 위한 논리로 성인학습자는 반드시 영어의 규칙, 즉 문법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문법 자체를 암기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용례를 어떤 말로 해석해야 하는지를 반복 학습해서 문법이라는 규칙성을 통해 문장의 구조를 한눈에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영문법은 외국어인 영어를 외국인이 쉽게 받아들이기 위해 일반화한 용어와 개념을 통해서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어를 쓰는 사람들 간의 약속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특히 '영어'의 문법은 수학의 논리와 같이 규칙적인 편(어순)이라서 마치 컴퓨터 언어를 배울 때 그 언어의 문법대로 코딩하지 않으면, 프로그램이 시작도 하기 전에 에러가 뜨듯이 말이다(프로그래밍 용어로 구문 오류(Syntax Error)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문법 오류다).



영어를 즐기는 데 있어서는 왜 어휘 하나하나를 외우기보다는 맥락을 살펴야 하는지의 이유는 아래와 같다.



특정 텍스트에서 나오는 단어를 미리 외우고, 그 책을 읽거나 관련 시험 지문을 읽으면 일단 대강 어떠한 맥락의 글(그 단어가 한국어로 번역한 뜻과 일치한다는 전제 하에)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영어 단어의 뜻이 한국말로 일대일로 딱 떨어지는 경우는 어려운 글일수록 드물 뿐만 아니라, 영어는 하나의 단어에 서로 상반된 뜻을 가진 단어들도 부지기수다. 그리고 인간은 본인이 알고 있는 것(보고 싶은 것만)을 보려는 경향이 뇌의 속성으로 박혀있기 때문에 외운 단어의 대표적인 뜻으로만 문장을 이해해버리면 뜻을 왜곡해버릴 수도 있다. 영어 난이도가 어려워질수록 그와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을 따로 외우려 하기보다는 주변부의 이미 알고 있는 쉬운 단어들의 뜻을 통해 어려운 단어를 유추할 수 있는 기술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이야기 흐름을 좇으면서 맥락을 이해하고 문장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 선행되어야 하는 지식은 '문법'이다. 문법은 왜 만들었을까를 영작을 위한 문법을 본인이 스스로 이해하고 간단히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 학습하면서 고민해보았다. 어떠한 영어 문장이라도 해석을 정확하게 하기 위함이고 곧 이렇게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서 필요한 규칙들을 일반화시켜 놓은 것이다. 즉 세상의 모든 영어 문장을 각자도생으로 이해하기보다 딱 하나의 규약으로 해석할 수 있는 요령을 짧은 분량(실제론 그렇지는 않지만)으로 정리해놓은 체계가 문법이다. 영어 문장의 구조를 외국인에게 그 나라의 언어(개념)로 일반화해놓고 이것을 해석하는 데는, 보편적으로 요렇게 해야 한다고 정의해놓은 약속이다.



이 문법이 기존의 모국어와의 어감과 다른 언어에 대한 규칙이라서 처음에 받아들일 때는 어색하고 쉽게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쉽게 영어를 익힐 수 있는 영어가 제2의 모국어로 받아들여지는 유아(초등학교 3학년 무렵 전의 나이대로 이 시기를 지나면 유아기 때 배운 영어는 까먹게 된다고 한다.)들과의 교육방식과는 많은 차이가 나서, 이제는 문법보다 무작정 외우고 덤비는 회화 혹은 문법은 조금만 알고 영어의 전 영역을 공부하는 것이 대세다. 하지만 성인 학습자에게 있어서 문법(헬스로 치면 힘(Power)!)이 견고하면 견고할수록, 나머지 영역은 저절로 따라온다. 그러면 토익 시험에서 문법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문제를 잘 풀어서 고득점을 거둔, 특히 한국인들은 왜 실질 영어 구사력이 떨어지는 걸까?



그들이 영문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러한 문법을 토대로 문장을 읽고 쓰고 들을 수 있다면, 영어로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는 기본기(헬스로 치면 힘과 기초체력)는 갖추었지만, 아직 영어에 대한 입을 못 뗀 상태로 볼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자신이 '정확하게' 알고 있는 문법을 통해 특정 영어 문장을 봤을 때,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는지의 구조가 눈에 들어온다면, 원어민만큼은 아니더라도 해석된 한국말이라는 해설이 있기 때문에 그 문장의 해석이 맞는지 여부의 확인(반추)과 반복(피드백)으로 쉽게 외울 수 있다.



결론은 원어민이 자주 쓰고 즐겨 쓰는 영여 표현들을 쉽게 외울 수 있는 밑거름이 바로 문법 지식(힘)과 그것을 통한 정확한 해석력(기초 체력)이다. 알고 있는 영어의 기반 지식(메타 지식)이 많으면 생소한 문장 구조라도 그 지식을 통해 *잔차 범위 10% 내에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외우기 쉬워진다. 즉 갖고 있는 문법과 어휘력이 촘촘할수록 네이티브들이 자주 쓰는 표현들을 선이해 후 암기가 되고, 이것을 그대로 말하거나 영작할 수 있다면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것이고, 이것을 넘어 훔치는 수준(다른 문형 간의 조합)까지 다다른다면 영어를 가장 잘하는 원어민들이 쓰는 표현들에도 견주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영어의 왕도는 결국, 네이티브들도 배우고 베껴 쓰는 네이티브(초중등학교 텍스트나 많이 읽히는 명서나 논문들의 저자)들의 말과 글을 얼마나 정확하게 암기하고 그것을 그와 같은 맥락에서 그대로 베껴낼 수 있느냐이다.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 파블로 피카소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많이 인용한 이 문구는 다른 모든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한 공식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어의 메타 지식(문법 지식, 어휘력, 분야별 새로운 표현 덩어리)을 얼마나 견고하고 촘촘하게 꿰매느냐에 따라서 거기에 낚이는(이해하고 암기할 수 있는) 영어 구문이나 문장이 많아질 것이고, 그것을 기반으로 응용할 수 있는 이해력(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단위, 청킹)이 커진다. 그렇게 어떠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표현 구문들을 쓰구나 하고 이해하는 낚시는 아마도 기본 베이스(문법과 해석력)가 깊고 넓어질수록 쉬워질 테고 그것이 사실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도 마찬가지의 습득 요령이 아닐까?



*잔차 : 잔차(residual)는 어떤 모델이 데이터의 정보를 적절하게 잡아냈는지 여부를 확인할 때 유용합니다. (발췌 : https://otexts.com/fppkr/residual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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