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의 위기
21세기 중반, 세계 경제의 진정한 심장은 어디에 있는가? 많은 이들이 그 답을 실리콘밸리나 월스트리트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대만의 한 작은 섬에 위치한 기업에 있었다. 바로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다. TSMC는 거의 모든 첨단기술 제품의 핵심이 되는 반도체를 공급하는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였다. 스마트폰, 자동차, AI 시스템, 우주 탐사 장비, 의료기기까지 TSMC의 반도체가 없는 제품은 거의 없었다. 그들의 반도체는 지구의 신경망과 같았고, 그 신경망을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50년에 접어들면서, 이 거대한 기업은 상상도 하지 못한 압력 속에 놓이기 시작했다. 대만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과 중국의 경제적 야망은 세계를 혼란에 빠뜨릴 위기를 가져왔다. 한편, 반도체 부족 사태는 기업과 국가 모두의 불안감을 극도로 증폭시켰고, 이는 TSMC를 거대한 전쟁의 한가운데로 몰아넣었다. 이 장은 바로 그 전쟁의 중심에 있는 TSMC가 어떻게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고립과 포위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쳤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TSMC의 역사는 대만의 경제적 발전과 맞물려 있다. 1987년에 설립된 TSMC는 반도체를 설계하는 회사가 아닌, 오로지 제조에만 특화된 최초의 파운드리로 시작했다. 당시 많은 이들은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에 회의적이었으나, 곧 전 세계의 주요 기술 기업들이 자신들의 반도체를 직접 제조하는 대신 TSMC에 외주를 주기 시작했다. TSMC는 뛰어난 기술력과 비용 절감 효과로 단숨에 업계의 리더로 떠올랐고, 21세기 초반에는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게 되었다.
특히 TSMC는 매년 엄청난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지속적으로 기술적 진보를 이루었다. 그들의 5nm, 3nm, 2nm 공정은 반도체의 성능과 에너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핵심 기술로, 이들 기술은 AI, 클라우드 컴퓨팅, 자율주행차, 6G 통신 등 모든 첨단 기술의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대만이라는 작은 섬에 위치한 TSMC는 그 위치상 외부의 위협에 취약했다. 지정학적 갈등, 특히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TSMC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었고, 이는 글로벌 공급망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었다.
205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만과 중국 간의 긴장은 점점 더 고조되었 다. 중국은 대만을 자국의 일부로 간주했으며, 이를 되찾기 위한 경제적, 군사적 압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중국의 목표는 단순히 영토 확장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대만을 통해 TSMC를 손에 넣음으로써 세계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한편, 미국은 이러한 상황을 주시하며, TSMC를 보호하는 데 막대한 관심을 보였다. 미국의 주요 기술 기업들은 대부분 TSMC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TSMC의 반도체가 없으면 미국의 첨단 산업은 거의 모든 면에서 마비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미국은 대만과의 군사 동맹을 강화하고, TSMC의 기술을 보호하는 데 주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TSMC는 점점 더 외부의 압박에 시달리게 되었다. 중국은 대만에 경제 제재와 사이버 공격을 감행했고, 그들의 군사적 위협은 날로 커져갔다. 동시에 미국은 대만에 막대한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며, TSMC의 반도체 기술을 자국 내로 이전하려는 압박을 가했다.
TSMC의 CEO 마크 리우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엄청난 중압감을 느꼈다. 그는 회사의 생존을 위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으나, 점차 외부의 압력이 그를 그 원칙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있었다.
미국은 TSMC에 기술 이전을 강력히 요구하며, 그들의 최첨단 2nm 공정을 미국 본토에서 생산하길 원했다. 이를 통해 TSMC가 중국의 위협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리우는 이 요구가 TSMC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중국은 그에게 대만에서의 생산을 계속 유지할 것을 요구했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분명했다. 그들은 대만을 통제함으로써 TSMC의 기술을 손에 넣고, 세계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려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우는 자사 기술을 어느 한 국가에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대신, 독자적인 생존 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사 기술을 다각화하고, 글로벌 생산 체인을 확장하여 어느 한 국가에도 종속되지 않도록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그는 유럽, 일본, 인도 등 다양한 국가에 새로운 공장을 설립하려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막대한 비용과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쉽지 않았다.
동시에 TSMC의 공급망 역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전 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사태는 팬데믹 이후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었고, 이에 따라 TSMC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수요는 공급망의 긴장으로 인해 충족될 수 없었다.
특히 TSMC는 자사의 핵심 장비와 재료를 전 세계 여러 국가로부터 수입하고 있었으며, 이들 국가 간의 정치적, 경제적 갈등은 공급망에 심각한 차질을 초래하고 있었다. ASML과 같은 네덜란드의 장비 공급업체는 중국과의 무역 제재로 인해 TSMC에 필요한 최첨단 EUV 리소그래피 장비를 제때 공급하지 못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TSMC의 2nm 칩 개발이 지연되었다.
또한 TSMC의 주요 고객사들은 공급 부족으로 인해 자사의 생산 라인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었고, 이는 글로벌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생산을 중단하거나 줄여야 했고, 스마트폰과 전자기기 제조사들 역시 제품 출시에 차질을 빚고 있었다.
TSMC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미국과의 협상이었다.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제조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었고, 이를 위해 TSMC의 협력이 절실했다. 미국 정부는 TSMC에게 자사 기술의 일부를 미국 내 공장으로 이전할 것을 요구했고, 이에 대한 대가로 막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TSMC 내부에서는 이러한 결정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일부는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대만과 중국 간의 정치적 갈등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반대파는 미국의 요구가 TSMC의 독립성과 기술적 우위를 훼손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결국 리우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부분적인 기술 이전을 허용하되, 최첨단 공정은 여전히 대만에서 유지하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이는 미국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았으나, 리우는 이 결정을 통해 TSMC의 독립성을 어느 정도 지킬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중국의 압박은 날로 거세져갔다. 중국은 대만을 통일하기 위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했고, 이는 TSMC와 그들의 글로벌 고객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중국 정부는 TSMC가 대만에서 철수할 경우, 대만을 공격하겠다는 위협까지 내놓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TSMC는 더 이상 대만에서의 운영을 지속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되었다. 특히 TSMC의 글로벌 고객사들은 이 위협이 현실이 될 경우, 자사 제품의 생산에 막대한 차질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며 TSMC에 대한 주문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점차 외부의 압박이 심화되면서, 마크 리우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는 회사의 생존과 기술적 우위를 지키기 위해 대만에서의 일부 생산을 다른 국가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TSMC에게 막대한 비용을 초래했으나, 동시에 회사의 장기적인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리우는 미국, 유럽, 일본 등에 대규모 생산 시설을 설립하며 TSMC의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확장했다. 이로 인해 TSMC는 더 이상 대만과 중국 간의 갈등에 휘말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결국, TSMC는 이러한 위기를 통해 생존할 수 있었다. 그들은 대만에서의 생산을 줄이는 대신,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강화하며 어느 한 국가에도 종속되지 않는 독립적인 운영을 가능하게 했다. TSMC는 여전히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으나, 그들의 미래는 이제 더 이상 대만의 작은 섬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이 TSMC와 대만, 그리고 전 세계에 미친 여파는 앞으로도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