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맛보지 못한 세 가지의 카페인
오랜만이다. 브런치에 나의 수필을 올린 지 꽤 된 거 같은데...
새해 첫날, 밤잠을 못 이루게 한 내 생애 최고의 카페인 세 가지를 소개합니다.
1. 폴바셋 시그니처 블렌드-풀 포텐셜
첫 번째는, 롯데마트에 들러서 우연히 구매하게 된 핑크빛 포장재에 든 폴바셋 원두커피다.
집에 커피머신을 들인 지는 작년 초반이었던 거 같다. 네이버 쇼핑을 통해 검색한 가장 싼 머신이다. 지금은 완전히 동나서 단종제품으로 검색되는 것 같은데, 그 기기에 첫 번째와 두 번째 원두는 온라인으로 지인이 추천해 준 홀빈(원두) 제품을 사서 내려 먹었었다.
하지만, 매장에 직접 가서 진열된 제품 중 처음으로 택한 제품이 폴바셋 시그니쳐 블렌드였는데, 이른바 핑크 원두였다. 롯데마트에서 가장 많이 진열된 제품이어서 본인의 단순한 논리로 '가장 많이 팔리는 이유가 있겠지' 하고 고른 거였다.
그런데, 처음 내리고 맛본 커피맛은 황홀감 그 자체였다. 집에서도 이런 커피를 마실 수 있구나 하고 신세계를 경험했던 것이다.
2. 파이크 플레이스 로스팅 원두커피
두 번째는, 스타벅스 매장에 들러서 직접 구매한 '파이크 플레이스 로스팅 원두커피'다. 본래 '별다방' 원두를 구매하려고 했는데, 동나서 한국인이 선호하는 산미맛이 가장 약한 원두로 이것을 추천받았다. 커피 메이커 에스프레소용으로 그라인딩 해주기를 어떨 결에 주문했는데, 생각해 보니 커피 머신에 넣는 원두는 홀빈 그대로였구나 하고 아차 싶었다.
하릴없이, 오랜만에 드립커피 기구를 이용해 위의 '스벅 커피'를 내려 마셨다. 이런 적이 온라인으로 주문했을 때도 한 번 있어서 환불이 어렵다는 걸 알고, 일찌감치 시간도 때울 겸 커피를 내렸다. 은은한 커피 향에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아뿔싸... 커피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또 느꼈다.
이래서 고급원두는 어디든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고르거나 혹은 추천받는 게 정답이라고 결론지었다. 예전에 블루 보틀 삼청동점에 들려서 진열되어 있는 원두 종류별로 구매해서 지인에게 선물을 드린 적도 있었는데, 이때 원두는 그라인딩 한 것보다 홀빈 자체로 보관하는 게 오래간다는 것도 매장 직원이 귀띔해 줬다.
3. '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
세 번째로, 밤잠을 못 이루게 한 카페인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였다. 신년이 오기 전에 새롭게 출간된 아래 현대지성 출판사의 책을 주문했었다.
필자는 월스트리트 잉글리시라는 국내 영어회화 학원을 대학생 때부터 꾸준히 수강했었다. 학교는 대구였고, 직장은 서울 혹은 경기권, 때로는 부산에서 전국 각 지점을 옮겨 다니면서 다녔었는데 아마도 대구에서 만난 한 영국인 네이티브 매니저와 상담할 때였던 거 같다.
젊고 말쑥하게 생겼던(마치 '두 도시 이야기'에 등장하는 마네트 박사의 사위 찰스 다네이와 같은) 그 네이티브가 본인에게 영어를 공부하는 조언을 몇 가지 해줬었는데, 대화 가운데 본인이 인생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이라고 말해줬다.
또한 당시 학생이었던 내가 석사 과정을 밟는다면, 호주로 취업해서 밟는 게 좋을 거라고 조언해 줬다. 왜냐하면 학원에서 만난 사람마다 호주 이민을 계획하고 있다고 입에 달고 다녔었기에, 한국에서 취업해서 석사까지 밟는 거는 회사에서 곱게 보지 않을 거라는 것까지 외국인인 그조차 알고 있었던 거 같다.
필자가 초등학생 시절, '크리스마스 캐럴'로 유명한 찰스 디킨스에 대해서 잘 알았기에 그의 책이라면 조금 유치하지 않을까 하고 미루고 있었다. 10년 이상 지난 지금에서야 '위대한 유산' 말고, '두 도시 이야기'로 그 유명한 작가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총 600페이지 이상되는 재출간 책에서 200페이지가량 넘겼을 때 나의 끈기보다 이 책의 유명세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 어젯밤 자기 전 다시 이 책을 들었는데 무려 새벽 1시 반까지 한 페이지도 거르지 않고 완독 했다. 이른바, 영어로
Page-turner* 였던 거다.
그보다 30대 이후에도 필자는 사실 밤 10시 넘어서 자는 거를 대개 꺼려하는 성향이라, 그렇다고 긴 잠을 푹 자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그 어느 카페인보다 진한 각성효과를 느꼈다. 이거야말로 세상 어느 스토리 텔러라도 인정할 만한(러시아의 도스도옙스키도 인정했으니...) 미친 말발의 전개였다.
아래 카페인 각성 효과에 빗대서 '두 도시 이야기'의 몰입감을 나타내자면,
흡수 및 초기 효과 (250~300 페이지 이후): 찰스 다네이가 고국인 프랑스로 넘어가면서 필자의 혈류로 흡수되기 시작하며 심박수와 혈압이 상승합니다.
최고 각성 상태 (300~400 페이지): 찰스 다네이가 다시 잡혀 들어가 사형을 판결받은 다음날, 시드니 칼튼이 찰스가 갇혀있는 감옥에 잠입해서 그와 옷을 바꿔 입은 이후 24시간 혈중 카페인 농도가 최고조에 달해 집중력 향상, 졸음 감소 등 각성 효과가 가장 강하게 나타납니다.
효과 감소 및 지속 (400~500 페이지): 로리와 마네트 박사와 딸 루시 등 가족 일행이 프랑스를 빠져나갈 때 시드니 칼턴이 단두대에 처형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카페인 농도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고 각성 효과가 점차 감소합니다. 이때부터 피로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체내 제거 (반감기 3~7시간)
: 카페인의 반감기는 3~7시간으로, 개인의 대사 능력에 따라 몸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데는 10시간 이상 걸리기도 합니다.
포인트는 세상의 어느 카페인보다 가장 각성효과를 진하게 느끼게 해 준 " '두 도시 이야기'는 '개'명작이다."라는 것이다.
*Page-turner: 흥미진진한 책이라서 페이지가 술술넘어간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