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고 꿇고 끊고
정상은 한산했다. 날이 따뜻해서 옷을 껴입을 필요도 없었다. 작은 오두막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팔았다. 우리는 라면을 주문했다. 사장과 직원이 서로 떠들 뿐, 대꾸를 하지 않았다. 밖에서는 모닥불에 모인 사람들이 마시멜로우를 구워 먹고 있었다. 눈처럼 하얗던 것이 노릇노릇해졌다. 하지만 입에 들어가면 사라지는 건 같았다. 시장을 느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에게 갔다. 그는 그제야 나를 보더니 주전자를 하나 주었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푯말을 가리켰다. 뜨거운 물은 self. 그의 쌀쌀맞은 태도에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바닥에 모닥불을 피웠다. 밖에 나가 솔방울과 나뭇가지를 주워왔다. 이윽고 모닥불이 완성되고 냄비에 물을 부었다. 연기가 실내에 가득 차도 주인은 내려다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또 자기들끼리 웃으며 떠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냄비에 둘러섰다. 겉옷은 벗은 지 오래였다. 이제는 배가 고픈 것보다 물이 끓는 순간이 궁금했다. 창밖으로 기포 같은 눈이 하나, 둘 생겼다.
마시멜로우는 사실 식감이라고는 없다. 그것은 달콤하지만 간단하고, 편한 만큼 허무하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인정과 만족이지만 깊이는 없다. 따지자면 그것은 나 혼자만의 만족이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고 그 합당한 기준에 도달한다면 보상을 받는 식도 마찬가지다. 그 노력과 인내를 폄하하는 건 아니다. 문제는 그 보상에만 함몰되는 심리다. 타인의 인정과 평가는 필요하다. 어쨌든 그것은 하나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기준이 옳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각자의 끓는점은 다르다.
우리는 종종 그 둘 사이에서 머문다. 마시멜로우의 달콤함은 금방 사라지고, 기다림의 보상은 생각보다 별것 아닌 경우도 많다. 어느 쪽도 삶을 완전히 바꾸지는 않는다. 하나는 너무 빠르고, 다른 하나는 너무 오래 붙잡고 있을 뿐이다. 정상은 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다에도, 들에도 정상은 있다. 너무 오래 한 곳에만 머물다 보면 계속 거기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산은 올라가는 길 뿐만 아니라, 내려가는 길도 존재한다.
산 밑에는 백숙도 팔고, 막걸리에 파전도 판다. 집에 가면 따뜻한 집밥도 있다. 몇 가지 보상에만 집착하고 부당한 기다림에 지칠 필요도 없다. 그럴 때 물이 아니라 세상이 부글부글 끓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중요한 건 무엇을 얻느냐보다, 언제 떠날 수 있느냐 일지도 모른다. 꿇어서 얻어낸 것은 내 것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