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 않음으로 내리지 않는 세계
이틀째 비가 왔다. 배수로로 흙탕물이 매섭게 소용돌이쳤다. 나는 버스정류장에 있었다. 지나다니는 차들이 모터보트처럼 보였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도 비가 와서 소식이 없었다. 어디 있는지 퉁퉁 불은 내 손가락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거리의 행인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는 이재민 같았다. 비 사이로 단절되고 흠뻑 젖은 채였다. 미안하다고 사과하지도, 사과받지도 못하는 하늘이 차창에 얼룩처럼 뭉개졌다. 그 비친 풍경 속에서도 비가 내리고 당신이 버스에서 내리고 우리가 만나고 그러나 와이퍼에 간단히 닦여 사라질 세계였다. 멀리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그것은 여객선처럼 물을 가르며 달려왔다. 나는 이제 집으로 가자고 결심을 했다. 하지만 나는 내 집이 어딘지 가물가물하였다.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잊었던 것 같기도 하고 멈춘 버스에 오르지도 못하고. 버스 기사가 잔뜩 잠긴 목소리로 탈거요. 말 거요. 물으면 나는 어디 흙탕물처럼 소용돌이쳐서 빨려 들어가는 중이었다.
요즘은 꼭 한 여름의 장마 같다. 10월에 비가 이렇게 자주 내렸나 싶다. 비가 오면 옆에 사람이 있어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그 빈 공간에 가득 물이 채워져서 무슨 소리를 해도 단절되고 막힐 것 같다. 그리고 그 막아섬은 알게 모르게 상처받는 성질의 것이다. 세차게 비가 내리면 다른 것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자신의 독립된 세계만이 전부가 되어버린다. 닦아내도 계속해서 물이 흘러내리는 축축하게 젖은 세계 말이다.
누구나 손해 보는 걸 싫어한다. 내가 투자한 감정만큼은 최소한 원금이라도 보장받고 싶은 게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들 간의 감정거래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꼭 둘 중 한 명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주식에서 돈을 절대 잃지 않는 방법은 아예 투자하지 않는 거라고 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수없이 상처를 받았다. 그 말은 나도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주었다는 말이다. 비가 오는 어느 날. 나는 타지 않음으로 내리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웅덩이에 처박혀 내리는 빗물을 모두 온몸으로 받아내고 싶었다. 결국 모든 걸 망칠 거라는 생각이 나를 소용돌이치게 만들었다. 저 배수구 아래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그것은 수위가 높아져서 방류하는 댐의 물처럼. 나를 익사시키고 뭉개고 잔뜩 지치게 만들었다. 며칠 씩 나를 괴롭히는 그 망할 빗소리와 한데 묶여 떠내려가고 싶었다. 그렇게 질리도록 어둠 속에서 며칠이 지나고 나는 넌덜머리가 나고 말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생각들을 마주 앉아 똑바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우울하거나 화가 치밀면 대부분 그 상태를 외면하려고 한다. 그 본질과 원인이 무엇인지 회피하고 묻어두려고 한다. 하지만 진짜 지겹도록 그 생각들과 마주 하다 보면 한 번쯤은 근데 도대체 뭐가 날 아프게 하는 거지? 하고 만져보게 된다. 마치 손가락에 박힌 작은 가시를 발견한 것처럼. 사실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감정 하나가 턱! 하고 막혀있던 것뿐이다. 배수구에 막힌 쓰레기 때문에 빗물이 역류하는 것처럼. 그것들만 치우면 모든 것은 다시 순환하게 되어 있다.
내가 손해 본 감정들도. 사실은 손해 본 게 아니다. 그것들로 인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면 수익이 되는 투자였던 것이다. 주식으로 돈을 버는 방법은 투자를 한 뒤에 수면제를 하나 먹고 10년 동안 잠을 자는 것이라고 한다. 급히 손절하거나 반짝 테마주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신뢰하는 우량주에 투자하고 투자한 것 자체도 잊으라는 말이다. 투자한 마음 하나하나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내 진심은 어떻게든 다시 나에게 돌아오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준 마음을 돌려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겠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지금까지 잃은 마음이 이자까지 붙어서 돌아올 날이 있다.
’아, 이 사람을 만나려고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 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