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이 서 있는 자리

상처의 윤곽을 공유하는 자들

by 슴도치

늑대는 간신히 숨이 붙어있었다.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입김이 그들의 이름표처럼 보였다. 총알이 다 떨어진 빈 총을 늑대에게 겨누며 남자는 한 손으로 몸을 일으켰다. 늑대도 낮게 울며 일어섰다. 늑대무리의 죽은 시체가 사방에 누워있었다. 흰 눈 위로 피가 또 후드득 떨어지고 남자는 배를 움켜잡았다. 출혈이 심했다. 늑대도 비틀거리며 노란 눈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불행은 늘 가까이 서 있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푹푹 찔러댔다. 멀리서 들리는 소리가 늑대 울음소리인지, 남자를 찾는 일행의 목소리인지 아득해질 때쯤 늑대가 달려들었다. 남자도 빈 총을 버리고 마지막 숨을 붙잡듯 늑대를 붙잡았다. 둘은 뒤엉켜서 한 번은 늑대가 되고 한 번은 사람이 되고 결국에는 동등한 불행이 되기로 작정을 하였다. 핏자국이 눈밭 위에 흩어졌다. 그것은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초상화처럼 보였다. 모든 것이 끝났을 적에는 그곳에 남자도 늑대도 없게 되었다.








상처를 주고받는다. 거기서 피해자, 가해자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게다가 싸움의 원인을 따지기도 너무 오래되어서 알아낼 수도 없다면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가 중요할까. 무작정 비난할 수 있을까. 눈밭에 숨겨놓은 물건을 찾는 것처럼. 싸움이 길어지면 분명히 표시를 해둔 것 같은데 방향조차 알 수 없을 때가 온다. 그러나 시작은 했으니 끝은 봐야 한다. 으르렁 거리며 달려드는 친애하는 나의 적.


싸우고 싸우다 보면 이상하게도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그것이 화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싸움 초기에는 내 고통에만 집중을 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상대에게 찾는다. 나는 완벽한 피해자, 그는 가해자.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그에게 남긴 상처를 보게 된다. 나와 똑같은 상처. 어? 그 순간 우리는 동일한 아픔을 공유하는 한 쌍이 된다. 영원히 화해할 수는 없어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알게 될 때는 그 아픔의 농도에 교감할 때다.



우리는 결국 불행이라는 우연의 연속성 위에 올라탄 피해자들이다. 불행은 항상 가까이 있다. 언제 어디서 나를 찔러댈지 모른다. 그런데 거기 미움까지 끼어있을 필요는 없다. 나도, 그도 똑같이 생긴 상처의 윤곽을 한 피해자일 뿐이다. 미움과 증오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상처 위에 뿌려대는 소금 같은 것처럼. 지독하게 아프더라도 우리는 상대를 연민, 그 비슷한 감정 위에 올려둬야 한다. 싸움을 끝내고 그다음으로 넘어가고 싶다면.



불행은 가까이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위로를 하자면, 행복도 가까이 있다.

상처 위에 새살이 돋듯이 불행이 지나간 자리에는 늘 행복이 다가온다.


나는 이제 덜 아프고 싶다. 그리고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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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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