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위짐과 채워짐의 순환
빈 방 안에 고치가 있었다. 며칠 집을 비우고 돌아왔는데 방 가운데 빈 고치가 있었다. 이미 무언가 빠져나가고 사람 몸만 한 껍데기만 남아있었다. 그 빈 것이 안쓰러워 나는 내 물건을 차곡차곡 거기에 넣어두었다. 이번 명절은 유난히 길었다. 나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나의 달력을 보았다. 참으로 길고 빈 고치 같은 시간들. 조금 추워져서 고치에 넣어둔 겉옷을 꺼내려고 보니 안에 물건들이 감쪽 같이 사라져 있었다. 당황함보다는 신기한 마음에 마시던 물도 한 번 따라보았다. 처음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가 고치가 살아있는 것처럼 꿀떡하더니 없어지고 말았다. 아무것도 채우지 않고 비어있으려고만 하는 게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분통이 터졌다. 나는 집 안에 있는 모든 잡동사니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고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고집스러운 고치 영감처럼 꿀떡꿀떡 잘도 삼켰다. 책도 편지도 달력도 사진도 다 사라지고 마침내 집 안에는 고치와 나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쯤에는 나도 더 물러설 수가 없었다. 저렇게 비워진 채로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네가 이래도 버티나 보자! 하고 내 몸을 고치 속으로 꾸역꾸역 집어넣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인간 혼자서는 빈 껍데기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혼자서 잘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혼자만으로는 늘 어딘가 모자란 부분이 생긴다. 단순히 결혼이나 독신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다. 성직자는 독신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혼자는 아니다. 그들에게는 신자가 있다. 일을 봐주는 직원도, 마음에 병이 든 사람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비어있지 않다. 오히려 가득 차 있어서 그 가득 참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깨달음은 외부에서 내부로 온다. 갓난아이가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다. 늘 그렇다. 깨달음은 외부의 자극으로 온다. 그것이 타인이다. 타인에 의해 우리는 변화할 수 있다. 자극이 없다면 늘 정체되어 있는 법이다. 물론, 책이나 명상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런 이들은 극히 제한적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타인으로 인해 채워진다. 다른 사람은 필요 없어. 혼자면 돼.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은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부분 도피성 발언이기 때문이다.
소풍날, 늦잠 때문에 나만 빠진 것 같은 기분. 나 혼자만 방치되어 있는 기분. 나 혼자서 소풍을 떠나서 도시락을 먹고 돌아오는 것도 가끔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런 날이 계속된다면 마음이 텅 빈 방처럼 될 수밖에 없다. 자극 없이 매일 같은 하루의 연속. 그런 나날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과는 같다.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다는 것. 그런 것을 단순히 평화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누군가 있어야 한다. 싸워도 보고 사랑도 하고 용서도 하고 부딪히고 깨지고 넘어지고 일어서고 울고 웃고 모든 해봐야 한다. 고치 속에만 있어봐야 날 수가 없다. 자신에게 어떤 날개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자기 자신조차 모른다. 나는 고통을 숭배하지 않지만 고통 없이는 평화도 없다고 믿는다. 아니 고통 없이는 그게 평화인지도 모른다.
텅 빈 방 안에서 안위하고 안도하고 감정의 기복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호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어쩌면 너무 상처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타인을, 세상을 포기하는 삶에 천국은 없다. 그저 덜 지옥스러운 나날일 뿐이다. 조금 쉬어가는 건 괜찮다. 많이 먹고, 늦잠도 자고, 세상의 한 발자국 뒤에서 쉬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삶이 종착지는 아닐 것이다. 고치고 싶은 건 고치면 된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한 번에 하나씩. 그러다 보면 가득 채워지는 순간이 올 거라고 믿는다.
우리는 스스로 채워질 수 없는 존재들이다.
미워하지 말고 서로를 동정할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하다.